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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라 / 문화와의 대화적 상상력

이선영

문화와의 대화적 상상력

  

이선영(미술평론가)

 


김기라의 작품은 형식뿐 아니라 내용이 다양하다. 아무리 넣어도 들어가고 아무리 빼내도 무언가 더 나올 게 있는 신축성 있는 주머니가 있다면 바로 그, 또는 그의 작품일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 리스트라고 보기 힘들 만큼의 범위는 그가 오랫동안 작업을 했기 때문이거나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니다. 분업화되다 못해 파편화된 현대사회에서 전체를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가 예술이라는 자의식 덕분이다. 예술가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처럼 세상과 담을 쌓는 게 아니라, 예술을 하고 있기에 할 말이 많아지는 경우이다. 마침 그는 청년기에 회화와 조각 외에 문화비평도 전공했다. 그에게 비평적 시각은 낯설지 않다. 작가의 문화비평이기에 말보다는 작품이지만, 그는 기획력도 있어 전시를 통해 개념을 직접 노출하기도 한다. 


동료 작가들과 더불어 자신도 종종 참여하는 기획전은 맥락에 따라 같은 작품도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가령 2018년 예술감독으로도 참여한 여수 국제아트페스티벌의 출품작은 태극기 부대를 풍자한 것 같으면서도 구조를 요청하듯이 계속 깃발을 흔드는 사람, 더 나아가 알려져야 하는 예술가의 모습까지 발견된다. 김기라에게 작품은 물론 세상도 텍스트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이미 짜여있는 문화의 실타래를 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짠다. 작가는 기성 지배체제의 틈은 더 크게 벌리고, 틈 사이에서 생성되는 미지의 것을 소중히 여긴다. 말로만 이뤄지는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구체적으로 생성, 또는 생산된 것으로 관객과 대화한다. 김기라는 고정된 본질보다는 유동적 맥락, 최초의 의도 보다는 거듭되는 해석을 통해 복마전 같은 현상에 접근한다. 작업이나 기획을 통한 발언은 동시대 자본주의 문화에 집중된다. 


그가 작품을 통해 호출한 코드를 읽어 보면, 현대 자본주의가 야만적 시대나 신화와 전설이 지배하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세기 슈퍼 히어로를 다룬 작품이 대표적이다. 원시 목조각이나 바로크 시대의 정물화도 현대미술 작업에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새로움의 기호에만 탐닉하지 않는 그의 작업이 퇴행적인 것이 아니라. 단선적인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상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작품들은 지배 질서가 음으로 양으로 강요하는 절대가치가 침식되는 장이다. 김기라가 자주 시도하는 타 분야와의 협업은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기표현에만 매몰되는 것을 넘어서 공적 확장과 열린 해석을 위한 실험이다. 


동일자와 타자의 문제는 2000년대 초기 발표 작품부터 그의 주요 관심사였으며, 동일자 자체가 타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작품은 나 아닌 다른 영역, 요컨대 바깥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그는 사랑같은 내재적인 주제 또한 자기만의 독백이 아닌 관객과의 대화적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연극같은 종합예술은 작품에 진입하는 통로와 해석을 다양화하면서,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2015년 올해의 작가전에 출품한 작품에도 전문 배우들이 등장하여 표류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다층적으로 보여 주었다. 분단이나 국가 폭력 사태,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 직접적인 정치적 주제 또한 피해 가지 않는다. 그는 다른 전시에서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의 무게’를 재보았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념의 갈등은 물질적 발전을 우선시한 우리 사회의 특수성과 얽혀 점입가경의 차원에 돌입해있는 상황이기에, 향후에도 그의 소재 및 주제는 무궁하다. 현대문화의 지배종은 대중문화인 만큼, 그것에 내재된 욕망의 기호들을 자주 다루어왔다. 2007년 창동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은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페스트 푸드 제국에 대한 사회적 탐구를 진행했고, 2009년 국제 갤러리에서 개인전인 ‘Super Mega Factory’ 전에서는 자본주의 문화의 축약도를 스펙터클하게 연출했다. 사회는 예술가에게 결코 권력을 나누어 주지 않지만, 김기라의 작업은 공기처럼 편재하는 문화에 대응하는 문화 정치학에 가깝다. 다만 그의 정치학은 학연, 지연 등이 복잡하게 얽힌 현실의 화단과는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행되며, 그래서 더욱 지속적이고 강력하다.


출전; 2022 올해의 작가상 10주년 기념도록(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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