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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숙/ 무한 공간을 향한 변주

이선영

무한 공간을 향한 변주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원숙의 작품은 일견 기하추상으로 보이기도 하고,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도시 공간의 일부를 묘사한 것처럼도 보인다. 추상미술이 탄생한 최초의 의도와 달리, 추상은 재현주의와 모순되지 않고 수렴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추상적 경향은 이후 국제양식이라 불리웠던 근대적 건축 스타일에 의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화면이나 도면에만 있던 것들이 현대도시가 구축되는 장소 어디에서건 현실화되는 과정의 반영이다. 추상미술 이후의 구성주의나 구체예술로의 추이는 자연으로부터 ‘추상’ 되는 것을 넘어서, 제 2의 자연인 문화생태계를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 이후의 정보혁명은 그러한 추상화를 더욱 촘촘히 실행하면서, 자연이나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고 있다. 정보는 물질도 정신도 아니지만, 비물질화의 영역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김원숙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선이다. 선은 공간에 머물면서 서서히 퍼져나가는 색과 달리, 방향성을 보다 확실히 한다. 형식에도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 방향성은 예술뿐 아니라 일상적 삶과도 관련된다. 




김원숙_INFINITY-2201_72.7 x 60.6cm_Acrylic on canvas_2022



김원숙_INFINITY-2202_53 x 45.5cm_Acrylic on canvas_2022



김원숙_INFINITY-2203_53x45.5cm_ Mixed media on canvas_2022



김원숙의 작품에서 선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합되어 공간을 표현하며, 화면이라는 작은 공간을 넘어서 그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INFINITY-일련번호]로 붙여진 제목들은 작품을 무한을 향한 변주로 간주한다. 무한을 르네상스적 재현 공간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소실점이 될 것이다. 남은 개발지가 더 이상 없는 현대에 그렇게 뻥 뚫린 시야를 확보하기는 힘들다. 대신에 작가는 계단 같은 구조를 떠올렸다. 계단의 중간 토막을 형상화한 듯한 화면에서 그것이 위아래로 몇 층이 될지는 모른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163층(부르즈 칼리파, 두바이)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최고 기록은 깨지라고 존재한다. 시공사가 한국의 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에서 주거 공간 또한 이러한 세계적인 랜드마크의 추세를 따라간다. 작품 [INFINITY-2201](2022)은 영화 [큐브]에서의 밀폐된 공간을 떠올린다. 푸르른 배경 색만이 폐소공포증 같은 느낌을 완화한다. 김원숙의 작품에서 주요 요소인 선은 완벽한 직선은 아니다. 붓으로 칠해서도 그렇겠지만, 죽 가다가 살짝 출령이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도 공간의 망을 짜는 색감이 다르다. 반듯한 공간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반영한다. 작가는 ‘공간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에 대해, ‘선(Line)은 방향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굵기에 따라 힘의 세기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 작품뿐 아니라, 여러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계단을 떠올리는 공간은, 구체적인 장소의 묘사라기보다는 현대의 추상적 공간에 대한 상징이다. 층층이 올라가는 구조인데, 마치 에셔의 판화처럼 가도가도 끝없을 것같은 구조가 특징이다. 김원숙의 작품에서 어딘가로 올라가는 길은 정방형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촘촘하게 코드화된 시스템을 통과해야 하는 현대적 삶을 상징한다. 여기에도 도약이 있고 추락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계별로 이루어진 과정 그 자체를 누가 설계했는가, 인간인가 구조 자체인가의 문제는 남아있다. 시스템화에서 점차 인간의 역할을 줄어든다. 그러나 그 또한 어떤 인간과 다른 인간의 차이 내지는 차별을 낳는 것은 분명하다. 구조는 인간이 만들고 인간은 구조의 산물이다. 




김원숙_INFINITY-2204_72,7 x 90.9cm_Acrylic on canvas_2022



김원숙_지금여기-2102



그것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역사의 방향이며, 합리적인 부분도 없지는 않다. 익명적 다수가 공존하기 위한 규칙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김원숙의 끝없는 과정을 상징하는 구조는 다층적인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작품 [지금 여기2109](2021)에도 올라가는 시점으로 보이는 계단이 등장한다. 이 추상적 구조를 계단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선과 색의 미세한 변주들이다. 추상적 공간이 구체적 자리가 될 때 시간의 흔적은 어딘가에 쌓인다. 작품 [INFINITY-2202](2022)는 기하적 추상화를 떠올리는 구조지만, 동시에 현대적 공간의 특징을 갖춘다. 타일이 붙은 벽같은 장소에 부착된 노란 구조물은 마치 빌트인 가전 제품처럼도 보이지 않는가. 물론 작가는 여기에도 튀어나온 구조인지 들어가 있는 구조인지 모호한 시각적 게임을 한다. 작품 [INFINITY-2208](2022)에서도 튀어나와 있는지 들어가 있는지 모호한 입방체가 등장한다. 작품 [INFINITY-2202](2022)에서 타일 붙은 벽처럼 보이는 평면도 색이나 선의 처리를 통해 현실감을 주었다. 


김원숙의 작품은 기하학과 현실이 수렴되는 시공간을 다룬다. 근대 건축가들이 그 내부의 가구까지도 설계했듯이, 환경은 점차 총체적으로 디자인되는 흐름이 있어 왔다. 이제는 벽에 기하학적인 작품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벽을 포함한 모든 구조를 기하학적으로 꾸며진다. 기하학은 현실적 응용을 통해서 심미화된다. 회화의 자의식적인 선언인 평면성은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하기보다는, 총체적으로 디자인화된 환경과 경쟁하게 되었다. 기하추상은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지만, 김원숙의 작품에서는 원근감이 배제되지 않는다. 시각만이 아니라 몸도 머물 수 있을 듯 바닥과 벽이 느껴진다. 타일의 선을 불규칙적으로 만들어갔을 만큼의 어떤 시간이 내재한다. 어느 순간부터 환경은 기하학화 되었기 때문에, 기하적 추상은 만물이 코드화되는 시점에서 더욱 현실적이다. 작품 [INFINITY-2204](2022)에서 내려가는 시점으로 본 계단구조는 실제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 같은 원근감을 가지며, 작품 [INFINITY2205]는 정면에 입구가 뚫려 있는 듯한 건물 외관의 모습이다. 




김원숙_INFINITY2205_116.8 x 91cm_Mixed media on canvas_2022



김원숙_INFINITY2208_72,7 x 60,6cm_Acrylic on canvas_2022



김원숙_지금여기2109_Acrylic on canvas_90.9x65.1_2021



작품 [지금여기-2102](2021)는 현대적 주거의 대표적인 공간인 아파트처럼 전면에 뚫린 창을 중심으로 공간이 구획된다. 공간의 설계 단계부터 적용되는 기하학은 코드화된 삶의 무대가 된다. 최대한 모여 살아야 경쟁력이 생기는 현대적 삶에서 사각형은 좁은 공간을 최대한 경제적으로 활용하게 한다. 그래서 남용되기도 한다. 작품 [INFINITY-2203](2022)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어진 선들이 만든 공간감이 특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각형은 건물이나 문을 떠올리면서도 바닥의 느낌을 제거한다. 그것들은 공중에 둥 떠 있다. 수직 수평으로 이루어진 추상적 좌표에서 현실적 중력감은 사라진다. 이제는 자를 수 없는 것을 잘라내고, 담을 수 없는 것을 담고, 옮길 수 없는 것을 옮길 수 있으며, 그것은 모두 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결과다. 김원숙이 암시하는 공간은 물리적인 것을 넘어서 코드를 전제한다. 작가는 ‘무한하게 뻗어 나가는 선의 방향성과 굵기, 간격을 달리한 비율, 컬러의 다양성 등을 이용한 작업은 선형 공간은 물론 비선형 공간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사물인터넷이나 증강현실 같은 새로운 기술은 건축의 물리적 구조를 급속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콜린 엘러드의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마음을 지배하는 공간의 비밀 places of the heart]은 정보혁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공간에 주목한다. 그는 도시의 대형 전광판부터 단말기와 노트북, 태블릿과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모든 화면 중심의 기술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인지 자원인 집중력을 끌어내서 잡아두도록 설계된 기술의 결과물이라고 보면서, 벽도 세계의 특정 요소를 감추거나 드러내는 식으로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는 MIT 시각미디어 연구소의 말을 인용하면서 ‘무엇이든 디스플레이가 될 수 있다. 광자가 곧바로 망막에 맺혀서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보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광자로 만들어진 벽은 석벽과 달리 가변적이다. 김원숙의 작품 속 모듈처럼 코드화된 공간은 수시로 다른 풍경으로 변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며, 이는 이미 급속하게 다가온 미래의 기술과도 겹쳐진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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