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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 /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염원

이선영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염원

강익중 전(2022. 11. 4 – 12.11, 갤러리현대 & 갤러리현대 두가헌)

 

이선영(미술평론가)


다(多)중심적 우주

12년 만에 열린 강익중의 국내 개인전 [달이 뜬다]는 픽셀 같은 형식의 작업 외에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거 선보여서 두 도상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의 작품은 작은 정사각형 안에 제각각 자리잡은 소우주같은 모습으로, 소우주가 모여 대우주가 되고, 손안의 작품들이 모여 공공적 차원으로 확대되는 등의 양상을 보였다. 사각형은 도시적이다. 대도시에서 한 평 땅의 가치는 얼마나 큰가. 문자, 기호, 그림 등이 담긴, 작은 사각형들이 가득 모여 있는 작품은 작은 가게들이나 아파트 등이 촘촘히 서 있는 도시를 연상시킨다. 하나의 사각형 안에 들어있는 문자가 단어와 문장을 이루는 작품은 문자성(literacy)과 인쇄문화의 관계 또한 말한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에서 문자성은 구술성의 문화를 마감하고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문자가 활자처럼 한 칸에 하나씩 자리한 인쇄와 결합했을 때 폭발적인 정보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큐브 구조는 풍경이 되기도 한다.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1층 , 갤러리현대, 2022 (이하 모든 사진에 대한 출전은 갤러리 현대에 있음)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1층 , 갤러리현대, 2022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2022, 린넨에 아크릴릭, 60 x 60 x 4 cm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2022, 린넨에 아크릴릭, 60 x 60 x 4 cm 



작품 [산] 연작은 48x 48cm의 작은 큐브에 산 이미지를 집어넣은 것으로, 그을려 만든 색감은 진풍경을 이룬다. 작가가 창안한 규칙에 충실한 작품들은 호환성이 크다. 손바닥 안의 소품같은 면모부터 환경의 차원에 이른다. 가령 2020년 광화문에 설치한 [광화문 아리랑]을 보면 마치 거대한 큐브가 돌아가는 듯 연출되어 있다. 큐브를 돌리는 동인은 합(合)이다. 일찍이 다문화의 중심에서 타자였던 작가에게 공존은 단순한 가치를 넘어서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큐브와 달리, 달은 도시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자연이다. 마침 달의 기본 형태는 둥글다. 원은 끝과 끝이 이어져 있다. 사각형 보다도 더 원형적으로 연결을 상징한다. 네모와 원은 마치 만다라처럼 마음의 중심을 잡아준다. 달그림자의 여러 국면들이 역동적으로 표현된 [the moon is rising] 시리즈가 보여주듯이, 완전한 대칭을 이루지 않는 달항아리는 조금씩 중심을 달리하면서 회귀한다. 작은 조각들에 대한 감수성은 달에 투사된다. 


달은 태양에 비한다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태양이 한결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달은 변화한다. 양자는 변함없는 중심과 가변적인 주변으로 대조된다. 과학의 역사에서는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금기의 과학자가 되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하나의 중심에 대한 뿌리깊은 선호가 있다. 특히 그 신성시된 중심을 세속의 권력이 자기화하려 할 때, 흩어지는 중심에 대한 사상은 불경한 것이 된다. 다중심적인 것을 하나의 중심으로 배치하고 계급적인 서열을 만드는 과정은 겉으로 보기의 질서 및 통일과 달리 깊은 분열이 내재한다. 연결과 공존은 역설적으로 분열을 출발점으로 한다. 알파벳이 하나씩 자리한 작은 단위가 모여 문장을 만들고, 여기에 달의 도상도 가세하는데, 여기에서 달의 시각적 역할은 휴지와 관련된다. 작가는 달이 지구와 관련한 인력의 중심체로 물의 역동적 흐름 또한 강조했다.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2층 , 갤러리현대, 2022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2022, 종이에 먹, 오일스틱, 76 x 57 cm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2022, 종이에 먹, 오일스틱, 76 x 57 cm



달은 뉴턴이 고전주의 과학의 기초를 정립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구상할 때 염두에 둔 천체다. 제임스 글릭은 뉴턴의 평전 [아이작 뉴턴]에서 뉴턴은 중력(gravity)이라는 단어에서 이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개념인 ‘무거움’보다는 끌리다(gravitate)의 의미를 강조했다고 지적한다. 달이 지구를 향해 끌리는 것이 중력이다. 우주상에 존재하는 행성들은 모두 자기 나름의 무게를 가지며 그 무게를 통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뉴턴은 중력을 보편적인 우주의 법칙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자연의 순리에 의해 서로 다른 것들 간의 조화가 가능하다. 강익중의 작품의 메시지인 연결과 공존의 필요조건은 각각의 세계에 대한 인정이다. 이 지점에서 예술가는 정치경제학과 갈라선다. 예술가는 늘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아왔다. 강익중의 싯귀에서 발견되는 ‘달을 보면 이루어진다’는 잇기라는 작업에 내재된 희망 사항을 반영한다. 

  

달을 보면 이루어진다

전시장 한 켠에 500개의 밥그릇을 쌓아놓은 설치 작품 [우리는 한 식구]는 작가가 꿈꾸는 공존이라는 이상을 분단 문제와 연관시킨다. DMZ 지역에서 녹취한 새 소리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의 희망을 담는다. 같은 크기의 단위를 즐겨 사용하는 강익중의 작품은 자유보다는 평등에 더 근접한다. 자유 또한 평등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태양이 지배하는 낮과 달리 밤은 일면의 현실을 전체로 강제하는 변질된 이성중심주의를 약화시킨다. 달빛 아래서 사람들은 낭만적, 요컨대 보다 통합적이 된다. 강익중과 함께 작품을 하기도 한 백남준은 일찍이 오래된 달의 미래적 가치를 예견하지 않았나. 이번 전시에서 알파벳이 문장을 이루는 작품에는 백남준의 언명도 기록된다. [멀티플/다이얼로그; 백남준과 강익중](1994, 휘트니미술관) 전의 자료를 보면, 백남준의 텔레비전 모니터들과 타일처럼 벽을 가득 메운 강익중의 작품은 다양성의 공존과 대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2층 , 갤러리현대, 2022



[갤러리현대] 강익중, Black Mountains, 2019, 나무에 혼합재료, 123 x 123 x 8 cm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2층 , 갤러리현대, 2022



다다익선(多多益善), 즉 많아서 더 좋은 그들의 작품은 하나이자 전체인 단자(單子), 다중(多衆) 등의 철학이나 사회사상을 함께한다. 강익중의 작품에서 하나하나의 단편은 전체의 유기적 일부가 아니다. 독재자들은 대규모 군중들을 동원하는 카드섹션 같은 행사를 좋아한다. 자신이 지휘자 역할을 맡는 이 극은 중심의 권력을 재현한다. 강익중은 자신이 정한 단위 구조로 어떤 큰 전체 이미지를 만들지 않는다. 그는 [내가 아는 것]으로 붙여진 제목의 시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까지 하면서, 전체주의를 낳는 유기적 기능주의의 도그마를 거부한다. 달 또한 지구의 관찰자 입장에서 보자면 그 위상이 낮지 않다. 지구 어디서나 보이는 달은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달항아리 안팎을 휘몰아치는 액체성 붓의 흐름은 달이 지구의 물을 지배하는 천체임도 부연한다. 달 또한 태양 못지않게 속속들이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것이다. 


[달이 뜬다] 전은 단순히 어떤 자연 현상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달로 대변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말한다. 예술은 자연에 가까워지기 위한 유력한 어법이긴 하지만, 자연은 아니다. 작가가 선택한 달항아리는 달을 품은 듯한 인공물이다. 강익중은 달항아리를 직접 빚지도 않았고 그것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화면은 도자기 표면처럼 반들거린다. 그에게 만물을 담을 수 있는 것(器)은 여전히 그림이다. 달이 여려 단계를 거쳐 평면 속에 들어와서 문자들과 어울린다. 알파벳 문자들이 있는 작품 속에 달항아리 또한 자리한다. 글자 하나하나가 단어나 문장으로 생성되는 가운데 달항아리 이미지는 띄어쓰기 칸에 자리한다. 그것은 쉬어가거나 국면을 전환하는 마침표가 된다. 입자로 이루어진 원자적 우주에서, 공백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띄어쓰기가 안되면 문장으로 읽기 힘들다. 반면 현대사회를 이루는 단위 구조들은 도미노처럼 빽빽하게 배열되면서 위험을 키우고 있을 뿐, 의미의 소통을 위해 진짜 필요한 공백이 부족하다.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지하층 , 갤러리현대, 2022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지하층 , 갤러리현대, 2022



[갤러리현대] 강익중, The sweetest sound to me is raindrops falling on leaves, 2003-2022, 나무에 혼합재료, 48.3 x 109.2 cm



공백은 일종의 여유이고 안전장치다. 공백은 소통 뿐 아니라 새로운 생성의 자리가 된다.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어떤 문장은 그저 무엇인가를 지칭하는 기능으로 소진되고, 어떤 문장은 시가 된다. 일상어는 그저 소통하지만, 시어는 소통과 동시에 존재한다. 문자를 조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면 가독성은 떨어지고 언어의 존재성이 부각된다. 지하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손글씨로 쓴 작은 작품들은 그림과 색연필 등으로 소중하게 개인적인 기록을 하는 다이어리나 비망록 같은 모습이다. 그는 ‘가장 좋은 냄새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방금 산 책받침 냄새다’라고 말한다. [달이 뜬다] 연작은 산수화의 형식을 빌어 산과 들, 달과 물, 새와 개, 사람과 집 사이를 여러 색의 오일 파스텔로 자유롭게 칠한 작품들로, 아이들의 천진한 화법을 떠올린다. 자신이 마련한 게임의 장에서 만큼은 맘껏 자유롭다. 


어눌한 화법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그러한 자유가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의 공공미술은 대중들의 참여를 고무하는 프로젝트가 많다. 전시와 함께 제시된 아카이브는 1990년대 이후 세계 여러 곳을 무대로 한 공공 프로젝트의 밑그림들이다. 이 미공개 자료들 또한 뜯어낸 공책같은 종이 위에 구상되었다. 강익중의 작품은 아나로그적 감성에 깊이 뿌리내린다. 그가 바라는 공존과 조화 중의 뺄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은 아나로그와 디지털 문화의 관계일 것이다. 작은 것을 모아 큰 작품을 만드는 강익중의 스타일은 1980년대의 뉴욕에서 학업과 아르바이트 때문에 조각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나왔다. 그는 작은 캔버스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짬짬이 작업했다. 그를 있게 한 작은 작품들의 의미를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한다. 작은 작품들은 맥락을 달리하면서 새롭게 읽힌다.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갤러리현대 두가헌, 갤러리현대, 2022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갤러리현대 두가헌, 갤러리현대, 2022



마침 알파벳이나 한글 모두가 조합이 쉬운 과학적인 언어였기에 그의 말놀이는 소통과 조형을 동시에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알파벳과 한글이 속한 표음문자가 아닌 표의문자면 자유로운 조합은 힘들다. 달항아리는 일필휘지로 쓴 상형문자와 잘 어울릴법한데, 그조차도 모자이크같은 단위 구조와 결합시켰다. 두가헌에 따로 전시된 달항아리 그림의 배경이 그것이다. 픽셀 형식의 작품에서 알파벳 사이에서 빈칸 역할을 했던 달항아리가 전면에 나서고 픽셀이 뒤로 빠지는 형국이다. 이때 달항아리는 가운데가 뻥 뚤린듯한 여백으로 다가온다. 문명의 진보를 이루긴 했지만 삶을 빽빽하게 하는 사각형들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지도로 친다면 달항아리 실루엣은 마치 도시의 거대한 공원처럼 보인다. 강익중의 그림 속에서 달항아리는 집과 인간을 간단한 기표로 표시한 자유분방한 도상들의 무대가 된다. 통상적으로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은 하늘과 풍경을 품곤 하는데,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달항아리는 인간과 자연이 뛰어노는 장이 된다.


출전; 아트인컬쳐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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