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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원 / 역사를 품은 자연

이선영

역사를 품은 자연

 

이선영(미술평론가)

 

 

우리나라의 민중미술론의 기초를 다진 고(故) 원동석 선생은 [윤산의 인간과 예술행적]에서 ‘80년대 들어 한국화 전공자들 가운데서 미중미술을 수용한 작가는 윤산 강행원이 유일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원동석은 ‘윤산은 80년대 10월 한국화를 전공하는 젊은(소장)학자들이 동아일보 회의실에 모여 ’전통과 형상‘ 그룹을 결성하고 매달 모임을 가졌다’고 기록한다. ‘전통과 형상’ 그룹은 ‘제도 미술의 허위의식과 시대정신의 부재를 일깨우고 식민잔재의 틀에 매어 있던 갇힌 미술로부터 해방을 얻고자 한 발상에서’ 원동석이 ‘선동하여 결집한 것’이다. 원동석은 ‘민중미술 운동의 출발은 갇힌 미술로부터 해방이며 자유로움이다. 체제 저항이다’라고 정의한다. 1980년대는 민중미술로 대표되지만, 여기에서 한국화의 역할도 컸고, 강행원은 그 맥락에 자리하는 작가다. 80년대는 ‘전통과 현대’라는 한국화의 고민이 시대정신과 만나 자연스럽게 융화된 시대였다. 이때 한국화는 좀 더 다양해질 수 있었고, 다양한 그룹 운동도 시작되었다. 




산방산



일출봉



하지만 한국화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화단에서 민중미술의 ‘주류’ 또한 한국화는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그 주류가 다양한 변신을 꾀할 즈음, 누구보다도 먼저 진보적 문화 운동에 참여했던 강행원의 작품은 보편적 지평에서 민중적 세계관을 그려내고 있다. 정치적 선명성이나 관념에 치중하지 않은, 보다 체화된 작업은 이전 시대의 특징, 또는 한계를 극복하게 했을 것이다. 80년대 민중미술은 역사에 대한 감수성에서 단연 앞섰다. 80년대의 진보주의는 당시 지배계급의 발전주의와 다르게 다 같이 잘사는 세계에 대해 꿈꾸고 실천했다. 80년 광주는 물론 그 이전의 제주 4.3 같은 역사적 사건은 많이 다루어졌다. 최근 강행원의 작품에도 4.3 관련 주제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의 암흑을 이루는 국가폭력 사태가 해당 지역민을 넘어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그것도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어두운 역사가 결코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당시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을 이루어 왔기 때문이다. 작품 [4.3 아직 이름이 없어요]는 제주의 4.3 민중항쟁 운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묻혀있던 사건에 대한 형상화는 역사적 주체에 관심이 깊었던 민중미술의 힘이 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아직 충분치 않다. 올해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제주 4·3의 역사가 빠질 위기에 처하면서 제주 사회가 들끓고 있다.’(매일경제, 12월 9일자 기사)는 소식이 들려온다. 역사는 그자체가 아니라 늘 현재적 맥락에서 재구성되는 것임을 볼 때, 제주 4.3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여전히 중요하다. 1980년대는 이미 ‘포스트 모던’의 물결로 역사에 대한 해체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해체되기 위해서는 구축이 먼저 필요하며, 양자는 동시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주 4.3 항쟁을 표현하는 작가의 방식은 간접적이다. 인간보다 자연을 내세운다. 




한라산



한라영산의 4.3 살풀이 



작품 [4.3 아직 이름이 없어요]는 곧게 뻗지 않은 나무, 가령 분재처럼 기이한 굴곡 면을 가진 나무를 통해 순탄치 않았던 우리의 근대사를 표현한다. 나무는 태양을 향해 가지들을 곧게 펴기 보다는 역사의 진실이 묻혀있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대지를 가리킨다. 나무 앞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묻혀있는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땅과 하늘을 잇는 큰 나무에 대한 종교적 관념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자연적 형태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상징적 형식은 보편적 소통 가능성에 열려있다. 작품 [한라영산의 4.3 살풀이]에서 한라영산 기슭에서 진행되는 4.3 사건 관련 살풀이는 대자연이 접신(接神)의 무대가 되고 있다. 풍경은 살풀이에 호응하는 듯 역동적이며,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낸다. 자연은 역사의 배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조응한다. 작품 [제주의 신목]은 지구 생명체가 가능하기 위한 최초의 조건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지구 생명체 중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수명도 긴 나무의 모습을 신성한 형상으로 담았다. 


보리수 아래의 부처의 깨달음을 비롯해서 종교의 배경에 나무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삼계(三界)를 연결 짓는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원동석은 강행원의 ‘사상적 심층에는 불교 신앙이 자리한 무소유의 자유함으로부터 평화적인 사유가 깃들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뿌리가 깊은 만큼 하늘로도 치솟아 있는 나무의 형태는 질서감과 순리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더 큰 삶의 주기를 가진 나무는 인간 역사의 질곡을 묵묵히 증언한다. 강행원의 작품 속 신목은 어두운 그림자와 밝은 길 부분 사이에 위치한다. ‘6.25 다음 사망자가 많은 사건’(매일경제 신문)으로 평가되는 비극의 역사가 있는 제주의 자연은 고통스러운 인간을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거대한 신목 아래를 오가는 사람의 모습은 자연과 인간의 비중을 가늠케 한다. 작품 [한라산]은 눈이 쌓인 한라산의 풍경에서 출발했지만, 명과 암이 극적으로 대조되며 필획이 드러나는 등, 자유로운 어법이 두드러진다. 




제주의 신목



 4.3 아직 이름이 없어요



그것은 자연의 외적인 풍경임과 동시에 축축하고 차가운 자연적 기운이나 과정을 드러낸다. 추상미술 역시 자연으로부터 추상 된 것임을 말한다. 작품 [일출봉]에서 고기잡이 배나 먹이를 찾아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은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생명을 말해준다. 유명한 자연 경관 앞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가족의 기쁨 또한 인간의 삶에서 자연의 몫을 말해준다. 작가는 큰 나무나 산 뿐 아니라 이름 없는 풀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작품 [억새의 노래]에서 억새는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맡기지만 결코 꺽이지 않는 민중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래 시점에서 잡은 억새는 하늘을 배경으로 영웅적인 모습으로 부각된다. 작품 [산방산]은 전경에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닷가 풍경이다. 이국적인 야자수가 화면을 종횡으로 가로지른다. 산이자 섬인 둥근 봉우리는 해무 또는 구름을 만나서 하늘로 기화하는 듯이 보인다. 강행원의 풍경에는 정지된 가운데 운동이 내재하며, 그 운동은 하늘을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 산이나 나무는 자연스러운 매개가 된다. 


고령의 나이까지 강인한 생활력 유지하는 해녀는 민중의 상징이라 할만하다. 민중은 대개 남성 노동자나 농민으로 전형화되어 왔지만. 생산과 진보를 추동하는 역사적 주체로서의 남성만으로 해방은 충분하지 않다. 생산력의 진보와 함께하는 농사나 노동과 달리 자연에서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는 해녀는 ‘오래된 미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자연과 경쟁하지 않고 그 굴곡 면을 따라 자리한 어촌 마을 또한 순리를 따른다. 순리는 자연의 필연성을 맹목이나 운명이 아니라 자유로 파악하는 좀 더 고차적인 진리를 말한다. 이러한 사유와 관련되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1980년대 진보 이론의 한 축이 된다. 작품 [외돌개]에 표현된 우뚝 선 바위섬은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고 공부하여 민중미술이라는 큰 바다와 만난 작가의 작업/인생 여정을 떠올린다. 수직의 바위는 수평선 위지 솟아있다. 땅과 바다와 하늘을 잇는 매개물인 바위는 창조자보다는 매개자의 역할을 자임하는 현대미술가의 위상과 관련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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