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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숙 / 전통과 현대 북촌에서 만나다

이선영

전통과 현대 북촌에서 만나다


이선영(미술평론가)

 


[북촌 한옥 마을에서]라는 전시 부제로 열린 개인전(201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이 있을 만큼, 나성숙은 한옥에 대한 사랑을 견지해 왔다. 작품 제목에서도 북촌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보인다. 작가가 한옥에서 태어난 세대이기도 하지만, 그 세대가 다 한옥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끈 세대는 대체로 개발에 대해 우호적이다. 하지만 이제는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세대를 불문하고 공유되고 있다. 전통을 포함하여 발전주의에 의해 간과된 것들이 하나둘 기억되고 있다. 작가는 ‘이조 600년을 지켜온 북촌 한옥 마을, 그곳에서 만나는 기와지붕과 그려지는 민화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작품 [북촌]에서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기단 위에 분출하듯이 칠해진 형상들은 나무나 사람처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서 있을 수 있는 존재를 말한다. 한옥같이 오래된 집이나 그 근처에 있을 법한 나무들은 진정한 진보라기보다는 변화를 위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현대적 삶에서 안정적인 좌표를 제시한다. 




북촌향연 1502 Bukchon festival 1502 1200x1200mm



반면 전형적인 현대적 환경인 빌딩 숲은 얼마 전에 정해진 계층적 구조다. 전자가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상징한다면, 후자는 추상적인 공간을 말한다. 현대의 예술가는 자신의 구체적인 자리를 만드는 자로, 추상적 좌표계에 매달려 있는 현대인들의 귀감이 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집은 많은 것을 품고 있다. 사기 힘든 비싼 상품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집은 양식이자 문화다. 나성숙의 작품에서 한옥에 있었을 법한 다양한 기물에 대한 사랑도 같이 나타나는 이유다. 2015년 개인전 포스터로 사용한 대표작품 [푸른 바다]는 바다에 섬들이 구름처럼 떠 있는 풍경이다. 섬 또한 일종의 대지지만 대지의 육중하고 고정적인 모습에서 자유롭다. 거리를 두고 보면 절대적인 것은 상대화된다. 나성숙에게 한옥이나 한옥이 담고 있는 다양한 민속적 소재들, 그리고 옻칠 같은 전통적 기법 또한 그러하다. 전통은 고정될 수 없다. 한옥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북촌과 어울릴 법한 꽃, 나무, 산, 달과 별 등은 전통적 기법이 가미된 회화로 재탄생한다. 


전통적 기물에 활용된 기술이나 기법과 달리, 회화는 근대의 산물이며 나성숙의 작품에서도 지시 대상으로부터 자율적인 색과 형태 등으로 나타난다. 작품 [북촌의 산]에 나타나는 바처럼 오래된 동네의 산 또한 녹색 평면으로 칠해졌다. 모란꽃은 붉은색의 덩어리나 색 점으로 표현했다, 작품 [북촌 모란꽃]에서 오래된 동네의 모란꽃은 붉은색의 무리로 나타난다. 작품 [모란꽃 마당]에서 모란은 우리의 전통에서 사랑받는 소재다. 하지만 작가는 전통적 도상에서 풍요의 의미만을 추출한다. 화면에 자유롭게 툭툭 찍힌 듯한 붉은 색 점들은 동시에 꽃의 무리가 된다. 어두운 배경색은 꽃의 색에 빛을 돌게 한다. 작품 [별밤 북촌]의 제목은 밤처럼 어두운 바탕에 자유로이 떠도는 색의 궤적들이 별빛임을 암시한다. 작품 [푸른 바람 북촌]에서 푸른 바탕에 섬이 떠 있는 풍경에서 형태는 빛을 품은 색으로 채워진다. 작품 [할패산]에서 광물질 재료로 붙인 산의 실루엣은 재료의 기원을 알려준다. 

할패산1904 Halpae Mt.1904 300x300mm



작품 [회귀]에서 정사각형의 안정적 구도 안에 안치된 풍경은 산과 달 사이에 지붕이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한옥의 지붕만으로 전체를 포괄한다. 작가는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한옥의 기와지붕에 대해 ‘내가 1977년 한국일보에 근무할 때 목판으로 만들어 X-Mas 카드로 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시절부터 나타난 기와지붕은 계속 내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고 회고하면서, 그 매력에 빠져 아예 북촌에서 들어와 살고 있다고 말한다.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은 마치 메아리처럼 울린다. 북촌의 여러 풍경에서 ‘본질로 회귀하는 힘’을 본다. 작품 [북촌 향연]에서 화면 하단의 잔잔한 수평선과 화면 상단의 속도감 있는 형상을 대조하는 작가는 전통과 현대의 관계를 고민해 왔다. 대학의 디자인학과 교수이기도 했던 작가의 전공 부문은 양자의 관계를 실험하는 장이다. 나성숙이 관심 있는 민예품들은 이전의 대중문화였다. 현대 문화의 우세종 또한 대중문화다.


나성숙은 자신의 관심사를 ‘겸재의 한양진경에 기본을 둔 산수도, 한옥 지붕의 선, 모란, 국화, 민화의 십장생 등’으로 밝힌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작가는 한옥을 지붕만으로 표현하는 식으로,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건너뛸 수 있는 연상의 세계를 제시’하고자 했다. 단순함과 강렬한 표현을 결합한다. 작가가 활용하는 전통 기법 중의 하나인 옻칠은 기존의 유형화로부터 벗어나 회화로 확장된다. 작가는 ‘옻칠만이 갖고있는 검은 흑칠의 매력, 정제 칠의 품위 있는 브라운, 골회와 삼베의 중후한 재질감’을 지적한다. 새로우면서도 오래된 뿌리와 단절하고자 하지 않는 현대의 작가들은 현대와 전통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다. 미술가들은 양자 간의 추상적인 대조보다는, 그들이 생산하는 독특한 사물로 비교할 만하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사물의 체계]에서 전통적 사물과 현대적 사물을 대조한 바 있다. 




북촌의산2012 Bukchon Mt.2012  300x300mm



푸른바람북촌2009 Blue Wind Bukchon2009 2400x1200mm



보드리야르는 사물이 오래되면 될수록, 사물은 우리를 이전 시대에, 신성에, 자연에, 근원적인 인식에 접근시킨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전통적 사물은 우리 존재의 증인이자 우리 신체 기관의 정태적 상징이다. 보드리야르는 전통적 사물이 몸의 확장이라면 상품으로 대표되는 현대적 사물은 신체와의 모든 연결을 없애버린다고 대조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사물들은 더 이상 특이한 존재를 갖지 않으며, 최상의 경우에는 코드의 요소로서의 단순화와 그 관계들의 계산으로 이루어진 통일된 일관성을 가진다고 평가한다. 보드리야르는 기호의 문화적 체계가 갖는 일관성. 체계의 논리, 즉 기호들의 결합 관계의 논리를 지적하면서, 전통적 가정의 인간화된 세계가 기술의 기능적 환경으로 변형된다고 본다. ‘현대의 산업사회를 총체적으로 통합하기에 적합한 문화적 체계’(보드리야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량생산과 소비의 사회는 그것을 전제로 가동된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날 정보화로 대변되는 전면적인 체계화의 기준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체계는 체계의 유지와 증식만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생산력의 획기적인 증가가 애초에 기대한 바의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고, 더 많은 경쟁과 전쟁을 낳는다. 현대인은 더 많은 물건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만족은 없다. 이에 대한 사회학자의 해석은 인간의 욕망이 사물 자체가 아닌 차이에의 욕구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차이를 부여하는 것이 기호인데, 기호는 동질적인 공간을 가정하기에 억압적이라는 것이다. 시각예술에서 그러한 동질적인 공간은 재현주의를 낳았다. 재현과 생산은 연동된다. 예술은 기호체계로의 사회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전통, 자연, 인간은 여전히 손쉬운 코드화로부터 저항한다. 작업하는 삶은 코드화 될 수 없는 특성으로 주변화되어 왔지만, 이제 이전 시대의 자연 속 생활의 터전, 그 안의 작은 기물들이 가지는 상징적 가치가 복귀한다. 나성숙은 오래된 가치에서 빛을 보며 작품의 형식에 적극 도입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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