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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주 / 자연과 예술의 결

이선영

자연과 예술의 결


이선영(미술평론가)

 


나무 상자 안에 돌돌 말린 채 켜켜이 쟁여있는 모시 천 같이 연출된 [결](2003)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반복된 [결] 시리즈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천 짜기가 전통적 제작 방식을 넘어서, 공업화되고도 모시만큼은 손으로 짜여져 그 폭도 다른 천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진다. 그자체로도 아름다운 모시에서 작가는 반쯤 비치는 속성을 조형으로 끌어왔다. 아름답다고 여겨진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속성을 모사하려는 추상 어법이다. 큰 붓으로 시원하게 펼친 추상 작품에서도 살려 있는 결이 마치 모시 같은 섬유질 모양새다. 모시 특유의 질감은 베틀에 실을 걸쳐 놓고 손으로 일일이 짜기 때문에 가능하다. 장인의 손길을 하나하나 거치며 짜인 모시는 다른 천보다도 더 자연 친화적으로 다가오며, 의상뿐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다방면으로 사용되었다. 홍순주의 오브제 작품에서 모시는 여러 색으로 염색되어 있고, 비슷한 두께로 말려 있다. 




결_22x64cm_나무 모시_2003



그림틀을 생각나게 하는 나무 사각형은 3차원적 그림, 즉 부조같은 느낌을 준다. 작품 속 모시 천은 다른 색과 함께 말려 있을 때 내비치며 변주되는 색이 절묘하다. 마름모꼴 화면에 그려진 2006년의 작품은 여러 색의 면이 켜켜이 중첩되면서도, 각자의 결을 유지한다. 한복에서 얇은 겉감에 내비치는 안감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이 평면 작품에서 진한 색은 가장자리와 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그 위의 색과 형태를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한지 위에 먹과 호분, 석채로 그린 평면 작품들은 먹 자체에 내장된 수많은 색감으로 환원된 바탕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붓질이 특징이다. 모든 색을 섞어야 나오는 검정에는 모든 색이 내장되어 있으며, 그 자신은 다른 색을 돋보이게 한다. 모시 천의 숨구멍같이 필획에 따라 밀도가 강도가 다르게 펼쳐지는 붓의 궤적 또한 드러나게 한다. 2019년의 작품 [결]은 12개의 화면을 조합하여 상자 속의 상자 같은 구성이다. 


작가는 여러 화면의 조합을 통해 제각각의 방향으로 흘러내리는 물감의 방향을 절도있게 조율했다. 베틀에서 수직/수평의 방식으로 짜여지는 노동의 산물은 작은 화면들 위에서 자유롭게 활주하지만, 그 또한 수직/수평의 틀로 조직된다. 작가가 정한 작품의 단위 구조를 이루는 조각들이 끼워 맞추는 방식은 유희적이다. 그것은 예술에서의 자유로움이 놀이의 규칙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66x66cm 크기의 마름모 모양의 작품 [결](2015)은 4개의 평면을 조합한 것으로, 가운데 작은 정사각형의 구멍이 있다. 한 가운데에 있기에 주목될 수 밖에 없는 빈 구멍은 동양화에서 중시되는 허의 공간을 떠올린다. 중심은 비어있다. 하지만 비어있음으로 인해서 생성이 가능하다. 그 반대인 가득 참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정지 감을 준다면 말이다. 여러 개의 검은 사각형을 연결시킨 이 작품은 검은 바탕에서 돋보이는 필획으로 화가의 실존적 행위를 강조한다. 




결_66x108cm_한지 먹 호분 석채_2019



결_63x96cm_한지 먹 호분_2016



결_63x96cm_한지 먹 호분_2016



결_31.8x40.9cm_한지 먹 채색_2016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인생이지만, 예술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하는 운명 때문이다. 모든 시작에는 자유로움과 두려움, 설렘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작가는 흐르는 물감으로 화면의 평면성 또한 드러낸다. 재현의 대상을 사라졌지만, 조형 언어 그자체를 중시함으로서 현대회화의 자기지시성이 나타난다. 검은 정사각형이라는 형식은 비록 말레비치가 회화의 종말을 선언하기 위해 채택했던 검은 사각형도 떠올린다. 홍순주의 작품은 화면의 틀을 자유롭게 변주한다던가 바탕의 평면성, 붓질의 강조 등을 통해 현대미술의 어법을 구사하고 있기때문에 비교는 가능하다. 줄리언 벨은 [회화란 무엇인가]에서 캔버스 위에 발려있는 물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회화는 무한하고 매혹적인 자연의 일부로, 알다/원하다, 재현하다/표현하다, 신성/인간, 자연적/인공적 등, 상반되는 단어들은 서로 결합을 되풀이하며 수많은 결합 속에서 서로 교차하게 된다고 말한다. 


줄리언 벨은 사람들은 회화를 볼 때 표면에서 자신의 주의를 끄는 어떤 기호를 찾으며, 기호와 표면으로 형성되는 이 평평한 사물을 인간이 만들어낸 특정 유형의 생산물, 즉 회화로 간주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그림으로서 회화는 그저 물감을 발라놓은 표현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하나의 특정한 미술로 생각하게 하는 오브제들을 통합하는 개념이다. 줄리언 벨은 회화란 다른 모든 구조물들이 그렇듯 해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물리적 구조물이라고 본다. 현대화를 거친 회화는 평평한 대상으로 정의되지만, ‘회화의 역사는 나뭇가지 구조라기보다는 수많은 지점들에 초점이 맞춰진 직물 구조’(줄리언 벨)이다. 홍순주의 작품에서 현대회화의 특징이라고 간주된 평면성은 우선 어두운 바탕에서 확인되지만, 붓질 내부에 선명한 ‘결’ 또한 평면성의 기호다. 촉감을 포함하는 결은 단일한 평면이 아니라, 중층적인 평면이다. 자유로운 물감의 흐름을 잘라낸듯한 평면을 조합하는 방식은 지속된다. 




결_84×84cm _한지 먹 석채_2006



결_ 66x66cm_한지 먹 호분_2015



정사각형의 안정성을 마름모의 역동성으로 전환시킨 작품은 여러 대조항을 가진 유희가 결집되어 있다. 홍순주의 [결] 시리즈에서 가장 큰 대조는 역시 어두운 바탕과 밝은 물감의 대조다. 예술은 칠흑같은 심연에서 시작된 어떤 원초적 행위와 비견되는 실존적인 차원에 있다. 밝지만 빛보다는 물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뭔가 걸쭉한 액체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땅과 하늘을 쩍 나누는 신적 행위보다는, 무엇이 발생할지 모르는 원시적 대양이 연상된다. 유기물을 내재한 무기물이라는 비유는 자연을 재현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반복하는 작업에 상응한다. 거기에는 창조에 내재된 관념성 보다는 생성이 강조된다. 자연은 자연적 과정이 되었고, 이는 예술의 몸통이 된다. 홍순주의 [결]은 단번에 나와서 단번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반복과 차이를 각인한다. 하지만 전광석화 같은 일획의 묘미나 흐르는 물감의 자연스러운 우연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결] 시리즈에서 같은 크기의 작품은 짝처럼 보인다. 2016년에 제작된 작품 [결]은 마치 바람 소리가 들릴 것같은 속도감 있는 붓질이다. 중력의 방향은 흘러내린 물감 줄기들이 표시한다. 구름과 바람, 그리고 비 같은 예측 불가능한 기상현상도 떠올린다. 평붓으로 한 번에 내리그은 선이자 면은 결을 그대로 내보인다. 누군가는 하얀 종이에 검정 선을 무수히 그어서 결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홍순주의 결은 다르다. 한지에 붉은색으로 채색한 작품은 단색조지만 그 내부에 수직수평의 구조 및 붓질의 궤적을 감추고 있다. 회화의 본질을 정의하려는 관념적 방식이기보다는 관계성 그자체를 중시한다. 동서양화의 여러 형식이 혼재하는 홍순주의 ‘결’ 시리즈는 검은 바탕에 밝은색 붓질이라는 극적 행위의 과정을 드러내면서 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관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이 체택 한 형식에서 내포적 다양성을 발견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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