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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발 킴 / 가면 쓴 무리들, 거리 극장을 활보하다

이선영

가면 쓴 무리들, 거리 극장을 활보하다


이선영(미술평론가)

 


화이트큐브같은 정제된 시공간이 아닌, 거리에서의 미디어아트 상영은 주변의 스펙터클과 경쟁하는 상황에 놓인다. 소비자이기도 한 대중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경쟁이다. 여기에 걸으면서도 보는 스마트폰까지 가세하면 교란적 요소는 더 많아진다. 이러한 시각이미지의 인플레 속에서 현대인은 눈에 띄는 것만 주목하는 ‘팝콘 브레인’이 되어 간다. 그 점에서 본다면 다발 킴의 작품은 관객의 시선을 끄는 신기한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그저 눈요깃거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화려한 스펙터클에 필요한 것은 메시지로 이어질 서사다. 다발 킴은 고풍스러운 소재를 활용하지만, 서사의 방식에서 역사보다는 신화에 주목한다. 세세한 사실의 재현에 충실한 역사는 문자성(literacy)에 바탕하지만, 신화의 어법은 구술적(orality)이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 말로 전해진 이야기가 신화다. 현대 대중문화가 신화의 어법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쉽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기억되지 않으면 선택되지 않고, 소통의 기회 또한 줄어든다.





눈물을 마시는 새1(Dreaming Club 드리밍 클럽,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10:00, 2023) 



드리밍 클럽-2



물론 다발 킴은 특정 신화를 재현하는 것은 아니고, 신화를 만든다. 작품 [돋아난 돌기 신화-드리밍 클럽]은 방독면 같이 생긴 마스크와 재미있게 변형된 한복을 착용하고 퍼포먼스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배경은 그러한 방독면이 필요 없었을 이전 시대의 자연이다. 또 다른 영상작품 [헤르마디토스 돌기 신화-드리밍 클럽]의 주요 배경도 들판이나 바다 같은 자연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전운이 감돌며, 이는 등장 인물들에게도 피드백된다. 고풍스러운 산수화는 무대 앞의 배우를 더욱 튀게 한다. 붉은 스타킹은 다발 킴의 작가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표다. 오래된 색감의 산수풍경과 대조되는 배우의 방독면, 또는 가면 같은 형태는 자연을 함부로 다룬 나머지, 반격당하는 인간을 떠올린다. 팬데믹이 이제는 극복되는 중이라, 이러한 대조법은 심각한 경고보다는 즐길만한 유희로 다가온다. 디자인을 비롯해 기획자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온 작가는 순도 높은 예술적 형식과 내용에 대중성을 접목한다. 


여러 분야의 경계 넘기를 시도하는 작가는 가장 근본적인 범주인 성(性)의 구분에도 도전한다. 양성(androgyny) 신화를 소재로 한 [헤르마디토스 돌기 신화-드리밍 클럽]은 한복을 변형시킨 다양한 조형 의상과 그것을 착용한 배우의 연극적 동작이 특징이다. 한국처럼 전통의상을 입지 않는 민족도 없다고 한다. 우리 역사지만 이제는 우리에게도 매우 낯선 복식의 선택, 그리고 이를 변주하는 방식에서 작가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변형 한복과 어울리는 모자나 마스크는 현실보다는 환타지에 친근한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다. 하위문화의 코드이기도 한 메탈 장식을 박은 갓이나 모자가 된 버선 등이 그것이다. 여러 계 사이를 이동하는 샤머니즘에서 차용된 코드도 보인다. 작품 속 등장인물은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지만, 가면은 얼굴을 익명화한다. 몸매가 많이 드러나지 않는 한복 디자인 또한 그렇다. 성은 얼굴을 선택하는 마스크처럼 선택적일 따름이다. 성은 존재를 자연이라는 운명에 묶어 놓는 변치 않는 본질이 아니다. 




신의 가면



신의 가면들 여전사_3



여전사의 행렬_3



[드리밍 클럽]에서도 마스크와 의상은 그 모델이었던 여성 한복의 다소곳함과는 거리가 멀고, 무형의 위협에 대한 경계 태세와 춤이 복합되어 있다. 배경도 현대적인 문화공간부터 바닷가와 동굴까지 다양하다. 무용과 무협을 아우르는 배우의 결기 있는 동작은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극도로 위축된 몸의 감각을 자극한다. 가면을 쓴 무리들의 행렬은 시공간을 옮겨가며 진행된다. 유희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가운데도, 신화에 빠지지 않는 희생제의의 메시지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철 가면을 떠올리는 번쩍거리는 소재의 마스크, 천을 칭칭 둘러쓴 채 바닷가에 서 있는 이들은 희생양을 떠올린다. 사회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을 요구한다. 희생물은 대부분 타자다. 예술가 또한 그러한 타자에 속한다. 여성-작가의 경우 더욱 그렇다. 작가는 동서고금에 편재하는 양성 신화를 현대로 불러들여 성의 구분을 비롯한 다양한 대립 항을 담론 위에 올린다. 동일자와 타자의 경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만 지속적인 도전과 응전이 중요하다. 


출전; 2023년 서울로미디어캔버스(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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