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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ese Contemporary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전 / 중국 현대미술의 시대정신

이선영

중국 현대미술의 시대정신

Chinese Contemporary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전 (3. 10—5. 20, 송은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중국 현대미술 작가 35명의 작품 48점이 공개된 이 전시는 스위스 출신의 외교관이자 사업가, 컬렉터인 울리 지그(Uli Sigg)(1946-)의 수집품 중 극히 일부에 해당되지만, 그 자신도 깊이 관여했을 중국 현대미술의 약진을 일별하기에 충분하다. 세계 미술계에서 중국미술의 붐을 야기한 주요 인사 중의 하나인 그는 중국뿐 아니라 몽골과 북한 주재 스위스 대사를 지내면서 남북한을 아우르는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노력 속에서 성사됐다. 2012년에 그가 수집한 작품 중 1,510점을 홍콩의 M+ 뮤지엄에 기증했던 이력에 나타나듯, 소유가 아닌 기증에 목적을 둔 수집은 개인적 의지와 열정을 공공영역으로 끌어낸다. 그가 수집을 시작하던 1970년대 후반은 중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있던 때였다. 계몽주의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문화대혁명(1966-1976)이 끝나고 시장경제가 도입되던 시기다. 



 Li Zhanyang(이하 모든 사진의 출전은 송은미술관에 있음)



 Zhu Jiuyang



 Zang Kunkun



 Ai Weiwei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은 국가 주도의 독선적 체제에 억눌렸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분출시켰다. 서구에서는 탈근대화가 시작되던 무렵, 근대적 변화에 따른 진보는 거대한 희생이 요구됐고 예술가는 그 그늘을 주시한다. 조나단 프리드먼은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에서 근대를 추동하는 발전주의에 대해 ‘과거를 파괴하고 미래를 통제하는 인간의 자기 의식적 의지’(다니엘 벨)라고 평가 한 바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문화예술에 정치적 계몽주의를 관철시키려 했던 흑(黑) 역사마저도 중국 현대미술의 개성을 살리는데 일조했다. 세계화의 파고는 ‘죽의 장막’에도 들이닥쳤고, 중국의 작가들은 체제뿐 아니라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축하고자 했다. 이 전시에서 방 한칸을 차지하는 한멍윈(Han Mengyun)의 [세 개의 거울이 있는 파빌리온]에는 다름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가 잘 나타난다. 


그리스와 중국의 예술 전통을 겨루는 옛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동/서 간의 우열이 아니라,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며 공존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울리 지그는 미술계라는 공적 제도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 이방인 컬렉터의 집요한 의지는 이후에 정착하기 시작한 미술 제도의 자율적 공간 속에서 꽃을 피웠다.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그러하듯이 스스로가 나침반이 되었다. 그가 홀로 간 길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됐다. 울리 지그는 공공기관이 해야 할 수준의 수집을 작가들과 일대일로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수집을 한 그가 그동안 직접 만난 작가가 무려 2천 명이다. 외적인 평판이나 소문이 아니라, 작가들과 직접 접촉했던 교감은 이 전시의 한 작품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작품 [웰컴 룸]에서는 중국의 누구보다도 중국의 현대미술가들을 더 잘 이해했던 컬렉터의 초상화가 그림과 조각, 두루마리 형식의 회화 등 여러 형식으로 모여있다. 



 Young Samson



 Zhu Jiuyang



 Ju Ting



 Xie Molin



 Han Mengyun



 Yan Lei


뛰어난 초상화가로 알려진 쩡판즈(Zeng Fanzhi)가 그린 초상은 컬렉터로서의 날카로운 심미안을 표현하는 눈매가 드러나 있다. 자오반디(Zhao Bandi)의 작품 속 귀여운 복장을 한 울리 지그는 악동같은 모습이다. 수집가라고 해서 갑(甲)이 아니다. 울리 지그의 하루가 묘사된 두루마리 작품이 그 예다. 울리 지그의 컬렉션은 ‘삶과 역사’를 반영하는 작품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기에, 이 작품들이 중국의 현대와 문화예술을 반영한다. 물론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지만 예술은 그 안에 전체가 담긴 단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특히 이 전시의 작품들은 국가의 권위주의적 규칙과의 역학관계에 있었던 현대미술의 특징이 있다. 저항적 메시지는 몸 관련 작품들에서 강렬했다. 권력이 집중되는 곳은 다름 아닌 몸이기 때문이다. 몸을 소재로 한 사진, 설치 작품은 물론, 오브제나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 심지어 추상미술, 그리고 시간적인 진행을 통해서 서사와 밀접한 영상작품에서도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시대의 명과 암이 짜 내려간 무늬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보이는 이상한 물건은 현대미술의 어법 중 하나로 자리잡은 레디 메이드 작품이다. 유럽을 향해 지중해를 건너다 익사한 이주민들을 위한 구명조끼를 만들기도 했던 아이 웨이웨이(Ai Weiwei)는 건축자재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조합한다. 작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미학적 이데올로기 대신에 현실의 규칙을 변형시키려 한다. 옆에 설치된 장쿤쿤(Zang Kunkun)의 반원형 오브제 역시 인터넷에서 구매한 재료들로 만든 것이다. 일상의 물건이 약간의 변형을 통해 작품이 되는 것은 작가의 솜씨보다는 개념을 중시한다. 6주간 함께 한 도끼, 햄스터, 쥐떼들의 흔적을 작품으로 제시한 웡 에이드리언(Wong Adrian) 또한 작업의 주체에서 한 발 물러난 듯한 태도다. 인간의 경험치로서는 잘 파악되지 않는 어떤 힘을 측정하는 도구같은 작품을 보여주는 궈청(Guo Cheng)은 인간적 비유를 벗어나 자율화되고 있는 사물의 세계를 암시한다. 방사선 강도를 측정하는 이 도구는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지질학적인 시간대와 관련된다. 



 Adrian Wong



 Chen Zhe



 Cao Yu



 Cao Yu


이 전시에서 추상회화는 ‘순수회화-추상을 향하여’라는 소제목으로 할당된다. 추상미술은 서양의 미술인가의 문제에 대해 중국의 작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동양의 미술 또한 묘사 대상만큼이나 정신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개념 또한 정신적인 것인데, 기계를 활용한 개념적인 회화 작품들이 꽤 있었다. 시에몰린(Xie Molin)과 얀레이(Yan Lei)의 작품은 인간의 손으로는 만들 수 없는 섬세한 패턴을 통해 손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시각상을 창조했다. 구샤오핑(Gu Xiao Ping)의 작품은 목수들이 작업하기 위해 먹선을 활용하는 것을 체택해서 캔버스 위에 그것을 실연한다. 무수한 수직 수평의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반복적인 수행성을 보여준다. 노랑에 대한 색채 탐구인 허샹위(He Xiangyu)의 [Lemon Project] 연작에서 누군가는 상큼한 레몬 향에 대한 공(共)감각을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2014년 홍콩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의 상징인 노란 우산을 떠올릴 수도 있다. 


‘자연–문화에 동화하다’라고 분류된 전시장에는 예술의 오래된 모델인 자연을 통해서 전통과 현대의 문제를 살펴본다. 중국 전통 회화의 주제인 ‘겨울 숲의 고사목’을 그린 니요우위(Ni Youyu)는 기둥의 열처럼 표현된 또 다른 숲을 통해 동/서양이 자연을 보는 관점을 대조한다. 하나는 연결망을 다른 하나는 독립된 형태를 강조한다. 샨판(Shan Fan)은 오래된 소재인 대나무를 유화로 그렸다. 그리는 방법을 달리함으로서 전통적인 소재를 낯설게 한다. 골격과 피를 떠올리는 지다춘(Ji Dachun)의 붉은 대나무는 전통적 방식을 전복하는 기이한 대나무다. 분재를 소재로 한 차웨이 차이(Charwei Tsai)의 석판화와 쉔 샤오민(Shen Shaomin)의 설치 작품은 누군가의 취향에 맞춰 왜곡된 생명의 잔인한 면모가 드러나 있다. 겉으로는 인민의 평등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약점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러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반응 또는 저항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Hu Yinping



 Ni Youyu



 Shan Fan_Ji Dachun



 Tsang Kin-Wah


‘중국을 노래하라’라는 코너에서 선보인 영상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주지우양(Zhu Jiuyang)의 영상작품은 맹인 이야기꾼의 전통을 활용하여 정권의 선전에 이용당했던 중국 공산당 행태를 패로디 한다. 노래의 내용인 ‘세계인권선언’은 어느 나라에서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홍콩 출신의 영 샘슨(Young Samson)의 [We Are the World]는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던 2017년, 세계가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었던 상황을, 원곡같은 합창이 아닌 속삭임으로 풍자했다. 크게 페미니즘 주제로도 볼 수 있는 ‘몸-여성의 복수’로 분류된 전시장은 여성이 몸으로 간주되어왔고 몸은 (남성적)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대상이자 주변적이며, 이에 대한 저항은 동서양을 망라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코너에서는 80년대, 90년대 태생의 젊은 여성 작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자학적 흔적을 사진으로 남긴 천저(Chen Zhe), 괴로울 때 수평선을 긋던 찬위엔쿠(Chan Yuen Kiu)의 작품에는 자기 치유적 행위가 있다. 


차오위(Cao Yu)는 분홍색 천 아래에서 움직이는 딜도의 모습을 통해 남성성을 풍자하고, 자신의 젖가슴에서 젖을 짜는 행위를 담은 사진 작품을 통해 여성성을 표현한다. 후인핑(Hu Yinping)은 어머니의 뜨개질 솜씨를 이용해서 알록달록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여성의 예술이었던 공예는 순수미술이나 첨단 패션 등으로 맥락화된다. 여성의 몸과 행위들은 삶 뿐 아니라 현대미술의 소재와 주제로도 당당히 자리한다. 창킨와(Tsang Kin-Wah)의 신약의 복음서의 형식인 ‘--째 봉인’을 양식을 따서 투쟁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벽 전체에 흐르는 붉은 글씨는 묵시록적 분위기다. 작가는 텍스트의 내용이 ‘권력과 계급 투쟁’에 대한 것이라고 밝힌다. 허샹위(He Xiangyu)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작품의 형식을 차용하여 체제에 저항했던 진보적 인사의 죽음을 암시한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깔린 고통의 정조는 살아있음의 또 다른 면이며, 아름다움이라는 형식으로 태어난다.   


출전;아트인컬처  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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