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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 도시와 회화

이선영

도시와 회화

 

이선영(미술평론가)

 


정재호의 작품은 그의 동선과 관련된 평범한 풍경들을 소재로 한다. 작업실이 있는 능곡도 집이 있는 곳인 일산도, 강의를 나가는 서울도, 또 그곳들을 통과하는 길도 모두 도시에 속하기 때문에 도시풍경이다. 도시가 그렇듯이 직선적 질서가 지배하면서도 이면의 무질서를 부각하는 그의 풍경은 공사장이나 낡은 건물,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 등 대부분 어수선하고 누추한 구석도 있다. 어디인지 모를 후미진 곳의 포착은 풍경화가 주는 기대치인, 멋지고 특이한 곳에 대한 욕심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누추하게 그린다기보다는, 발길이 닿는 도시 자체가 비개성적이다. 도시를 가득 매운 건물들은 심미적인 것도 기능적인 것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하는 일종의 리얼리즘이지만, 그가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서사가 아니어도 익명적 도시의 특성을 제대로 잡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둘러싼 일상을 의미있게 표현할 수 있다. 




 Early night,Oil on linen, 157x135cm , 2023



정재호의 선택이 있다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점이다. 이번 전시에도 능곡의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부터 재건축 현장까지 여러 모습이 담겨있다. 이러한 시점은 초월까지는 아니어도, 현실적 구조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또 하나는 실제 대상과 관계없는 기하학적 각면의 등장인데, 이러한 요소는 장면의 임의성을 강조한다. 그것들은 화면 안으로 들어갈 수도 밖으로도 나올 수 있을 듯하며 서로 자리를 바꿀 수도 있다. 장면은 큐브를 돌리듯이 가변적일 수 있다. 도시를 이루는 기본형태가 사각형이다 보니 사각형과 건물은 잠재성과 현실성의 관계에 있다. 멋진 풍경이나 그럴듯한 이야기는 그림의 방해 요소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정제된 형식미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추상과 구상, 현실과 언어, 질서와 무질서, 회화와 사진, 지각과 기억 등등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면서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회화만의 영역을 찾고자 분투 중이다. 


굳이 도시가 아니어도 회화적 실험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도시적 현실과 회화적 현실이 수렴되는 부분이 있다면 보다 흥미롭지 않을까. 근현대 미술이 미술만의 자율적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고양시켰지만, 그저 미술의 언어로 현실을 환원하는 것은 손쉬운 선택이며, 바람직 한 것도 아니다. 실재에 대한 감각은 정재호가 완전히 추상에 기울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상 또한 관념적일 때 재현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차이와 반복]에서 재현주의의 먼 선조를 플라톤주의로 본다. 저자들에 의하면 플라톤은 원형을 강조하는데, 원형은 오로지 같음의 본질에 해당하는 어떤 자기동일성을 설정할 때만 정의될 수 있다. 정재호는 원형의 재현이 아닌 차이를 드러내려 한다. 그는 풍경을 이루는 건물과 유사한 사각형을 첨가한다. 기하학적인 규칙성을 가지지 않은 얼기설기한 사각형들은 원형이 아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듯이 ‘차이는 모든 사물들의 배후에 있다. 그러나 차이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Neon cube,Oil on linen, 157x135cm, 2023



 Concrete cube,Oil, Flashe on linen, 157x135cm , 2023



정재호의 작품은 기하학적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계획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의 도형, 또는 형상에서 접붙이듯이 확장된다. 그린 것을 지우고 새로 그리는 과정의 연속인데, 어디까지가 완성으로 간주 될지는 불확정적이다. 작품 하나를 끝내고 다른 작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작업실에 걸어 놓고 계속 손을 본다. 끝나기 힘든 게임이다. 그냥 드로잉도 아니고 유화로 그렇게 하는 것은 비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수시로 사진을 찍고 매일 열심히 작업하니 사진만 그려도 멋진 풍경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도달하려는 곳이 어디일지 모르나 화가는 명확한 코드를 피해 간다. 이 전시에서 기하학적 형태로 가득한 두 작품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어디선가 내려다본 도시풍경이라는 구조를 다른 작품들과 공유한다. 네온과 콘크리트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작품 [Neon cube](2023)는 24시간 돌아가는 도시의 밤이 또 다른 빛으로 가득함을 보여준다. 


요즘은 네온사인보다는 좀 더 눈을 강하게 찔러오는 LED가 대세이긴 하지만, ‘네온’은 아직 도시의 빛을 상징하는 기표로 남아있다. 도시는 건물로 가득하고 건물은 최대한의 용적률을 위해 사각형을 기본으로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계획되고 있는 신도시처럼 한날한시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면, 체계와 체계 사이에는 빈틈이 있다. 정재호는 이 빈틈을 자신의 회화적 형식을 통해 더욱 벌린다. 스코트 래쉬와 존 어리의 공저 [기호와 공간의 경제]는 ‘시간이 연속의 질서이듯이 공간은 공존의 질서’라고 주장한 라이프니츠를 인용하면서, 이런 관계론적 견해가 우주는 다양한 실체들로 이루어진 질료의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질료 조각들은 서로 간의 그리고 그 자신의 구성 부분들 간의 시간적 관계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한국같은 (재)개발 공화국에서는 틈과 균열은 더욱 많다. 빠른 시간 동안에 물질적 성장을 이뤄낸 한국은 곳곳에 개발의 시차를 남겼다. 이러한 틈들은 찢어진 봉투처럼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게 한다. 줄줄 새거나 예기치 않은 것이 틈입한다. 




Green box, Oil on linen, 140x120cm, 2023



Plastic sky,Oil on linen, 170x200cm, 2023



 Chocolate roof,Oil on canvas mounted on panel, 120x120cm, 2023



정재호의 작품에서도 틈과 틈 사이는 무엇인가 생겨나고 사라진다. 총체적 계획이 아니라, 계속 덧붙여가면서 화면을 만들어가면서 정지된 화면 속에 시간을 접어 넣는다. 접힌 시간들이 풀려나오는 순서는 관객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얼마 전에 구축된 듯한 것들에도 얼룩과 흔적이 선명하다. 그의 작품은 생명처럼 생성 소멸하는 도시적 과정을 닮았다. 기하학적 형태들의 빈틈으로 보이는 저편의 것들은 무엇으로 변모할지 모를 잠재적 형태들로 남아있다. [Neon cube]와 같은 크기로 그려진 [Concrete cube](2023)는 네온 대신에 콘트리트가 더 잘 보이는 낮의 풍경이다. 견고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각기 다른 크기와 각면으로 인해 동적이다. 무너짐과 세워짐의 반복인 도시의 건물들은 결국 콘크리트의 순환이다. 순수한 자연과 달리 완벽한 순환이 아니라 잔여물들이 어딘가에 쌓인다. 한 작품에 시간의 흐름이 내재된 정재호의 작품에는 작품 간에도 시간적 관계가 유추된다. 가령 허물어지기 전과 후의 풍경이 포착된 경우가 그렇다. 


작품 [Green box](2023)는 장충동 소재의 유명 호텔의 모습을 담았다. 하늘과 주변 풍경을 되비치고 있는 박스형 건물은 근대건축의 이상에 충실하다. 하지만 새로움의 신화인 근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가며, 현대의 시간에서 가속도는 더욱 크다. 철근, 콘크리트, 유리로 이루어진 근대건축 또한 그것이 무너뜨린 전통의 길을 따른다. 이 전시의 한 작품은 이 박스형 건물이 이미 사라졌음을 암시한다. 전경에 무성한 식물들은 이듬해 다시 생을 시작하지만, 직선적으로 진보하는 문명은 그렇지 않다. 작품 [Plastic sky](2023)는 위에서 내려다본 공사 현장과 그 인근의 풍경인데,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레고 블록 놀이를 하는 듯하다. 도시를 이루는 원래의 건축적 요소 위에 둥 떠 있는 듯이 표현한 다면체들은 이합집산하는 중이다. 기존의 건물이 해체된 빈공간의 바닥에도 사각형들이 밝은 표면 아래에 비춰 보인다. 마치 배아 안에 접혀진 어린잎들처럼 이 잠재적인 것들도 펼쳐져 현실화 될 것이다.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잠시의 소강상태다. 




 Drive, Oil on linen, 157x135cm , 2023



Floor A, Oil on linen, 91x91cm, 2023



정재호의 작품은 회화이기에 정지되어 있지만 그 내부엔 움직임이 내재한다. 정중동이다. 동적인 부분은 도시계획가들이 의도치 않은 틈들에서 활성화된다. 작품 [Blue](2023)에 보이는 전면 반사유리로 된 건물은 낡은 상태여서인지 투명성이라는 이상을 상실한다. 그 앞의 나무가 색 띠의 조합으로 변화 중임을 드러낼 때 인공물 또한 마찬가지다. 나뭇가지들은 건물 전면 유리의 금을 내지만, 그 또한 재개발의 계획 속에 함께 사라질 것이다. 위에서 본 풍경인 [Small sky](2023)는 아래의 대상을 더욱 장난감같이 보이게 한다. 하늘이라는 거대한 캔버스만큼이나 지상의 풍경도 가변적이다. 작품 [Chocolate roof](2023)에서 마치 잘 포장된 초콜릿 상자들처럼 보이는 지붕들은 한낮의 햇빛만이 어지러운 주택가 풍경을 통일감 있게 조율한다. 길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밀집되어 보인다. 서울 인근에 최근 재개발된 주택가들은 반듯반듯한 길을 확보하지 않는가. 오래되면 오래된 만큼의 존재감이 아니라, 곧 개발이 될(또는 되어야할) 과도기적인 풍경으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학습 효과이다. 


쌓이고 기억되기 보다는 새로움이 야기할 프리미엄은 한국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낳았고, 풍경을 관찰하는 화가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것은 견실한 삶의 자리이기보다는 까먹고 버리는 초콜릿 포장같은 소비재로서의 공간, 또는 언제라도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을 과도적 공간이다. 작품 [PM6](2023)에서 시커먼 시멘트 건물 위의 밝은 사각형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에서 잠재적 움직임이 있다. 어느 장면이든 부분을 선택하면 더욱 취약하다. 작품 [Untitled](2023)에서 유리 반사면이 장착된 건물의 반영상은 대상의 진상을 혼돈에 빠트린다. 아무 상징성 없이 마구잡이로 지어진 큰 건물들은 폐기물의 기념비처럼 다가오며 삭막한 현실을 위한 최적의 무대다. 정중동을 넘어서 실제 이동 시점이 드러난 작품도 있다. 밤 시간대에 적막해지는 구도심을 산책하는 시점이 있는가 하면, 운전 중의 장면도 보인다. 작품 [Drive](2023)는 운전하는 시점으로 포착된 도로 풍경으로, 구름이 떠 있는 하늘에 난데없는 사각형들은 마치 이 화면이 수신 불량한 상태의 디스플레이같은 느낌이다. 




 Blue,Oil on linen, 91x73cm , 2023



 Small sky,Oil on linen, 91x73cm , 2023



 PM6,Oil on linen, 73x61cm, 2023



대중의 시선을 빼앗기 위한 스마트기기는 차량의 창문을 포함해 모든 창을 점령해가고 있다. 그런 만큼 그 안의 인간들에 대한 정보들도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다. 장면이 이어진 듯한 면이 보이는 전방의 시야는 사진, 영상 등으로 포위된 미디어 생태계는 현실 및 현실에 대한 감각을 변화시킴을 알려준다. 대개 도시는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인구집중은 생산력 발전의 조건이자 결과이다. 하지만 정재호의 작품 속 삶의 무대는 텅 비어 있다. 분업이 극단화된 현대는 구도심/신도심, 다운타운, 베드타운...등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가 즐겨하는 산책길이 적막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적 요소가 있다. 하지만 작품은 현실 그자체가 아니라 선택이다. 풍경에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정재호의 작품이 서사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에 인간은 등장 그자체로 서사를 추동한다. 작품 속 인간들은 익명적이다. 사람이 등장해도 개인보다는 무리로 나타난다. 무리 역시 어떤 시간대가 되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보이지 않는 규칙에 의해 조정되는 대상이다. 


작품 [Floor A](2023)은 도심 외곽에 위치한 쇼핑몰 속 인파로 번화한 풍경이다. 사람들 형태는 그 위의 파라솔만큼의 견고성도 없다. [Floor B](2023) [Floor A]에 비해 형상들이 또렷하지만 개인으로서의 특성은 배제되어 있으며, 마케팅 구조의 흐름에 배치된 익명적 소비자의 흐름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풍경에 잘 사용하지 않는 정사각형 프레임은 한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작품 [Early night](2023)에서 초저녁 풍경 속 사람들은 유령처럼 흐릿하다. 그들이 서 있는 지면도 세로 방향의 붓질이 그대로 남아 허공에 붕 떠 있는 듯이 보인다. 인간은 그러한 시공간의 산물이다. 인간은 구조를 만들지만 구조 또한 인간을 만든다. 하지만 양자의 균형은 무너지고 있으며, 인간은 구조에 비해 취약하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서 현대사회에서 일어난 시공간 압축의 강도는 사회의 전 영역에서 과도한 순간성과 분절화를 낳았다고 분석하며, 이것이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Untitled, Oil on linen, 73x61cm, 2023



앞서 인용한 [기호와 공간의 경제]의 사회학자들 또한 시공간 압축의 한 결과인 주체와 객체의 가속화가 객체와 주체 모두의 비워짐을 낳는다는 데이비드 하비의 비관적 조망에 동조한다. 그 결과 사회관계는 공허하고 무의미하며, 장기적인 약속을 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업실 풍경은 그림을 포함한 중층적 현실을 집약한다. 2개의 패널이 이어진 작품 [Another room](2023)은 작가의 기억과 오래된 영화 속 장면이 복합되어 있다. 외삼촌이 그림을 그렸는데, 어릴 때 그의 작업실에 갔던 기억을 바탕으로 했으며, 1940년대의 실내 풍경도 참고했다. 기억에서 촉발되었지만 외삼촌의 자료를 사용한 것은 아니며, 현재 그의 작업실이 들어갔다. 거기에는 오래된 시차를 압축할 때의 복합적 시점이 있다. 기억은 연대기적인 시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어서 상상과 비슷해진다. 기억은 상상을 통해 재생된다. 기억과 상상이 수렴되어 색과 면으로 표현된다. 


불연속적인 간극들은 불안정성을 낳지만, 그에 의해 회화는 역동적이 된다. 그 점에서 정재호가 소재로 한 도시의 구조와 회화의 구조는 동형적이다. 작업실답게 많은 작품이 걸려 있지만 그 위로 떠 있는 빈 사각형들은 벽면의 물리적 실체감을 약화시킨다. 어떤 시기 어디의 누구의 공간이든 그것이 작업실인 한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고 고쳐졌고 사라졌을 것이다. 조각 천을 이어붙인 듯한 테이블보는 어떤가. 보다 긴 주기를 놓고 볼 때 조금씩 변화하는 현실은 결국 전체를 다 바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리적 환경 또한 유기체처럼 갱신되는 과정 중에 있다. 작가에게 가장 안정된 공간이어야 할 작업실 또한 현실처럼 매 순간 변화한다. 여러 현실이 뒤섞여 있지만 초현실주의는 아니며, 추상과 구상의 어법이 공존한다. 작가는 현실을 그대로 베끼는 것만큼이나 자기 유희 및 장식에 치우칠 수 있는 추상을 지양한다. 그것은 기하적 요소가 있으면서도 체계적으로 화면을 구성하지는 않는 방법론에 잘 나타나 있다. 




Another room,Oil on linen, 162x260(Diptych), 2023



어딘가 시작은 있지만, 계속 얹으면서 덮으면서 진행한다. 명확한 계획이 없는 만큼 결과도 확신할 수 없다. 순간적인 판단의 연속적 과정으로서의 회화다. 작가에게는 이전부터 평소에 낙서를 하듯이 큐브를 그리던 버릇이 있었다, 무의식적인 이어 붙임에는 단절과 간격이 있다. 그는 이 차이들을 굳이 매끈하게 봉합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간격은 작품 제작 시에 참고하는 사진의 영향일 수도 있다. 사진이야말로 육안과는 이질적인 시공간의 절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 및 사진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영상은 현실을 대체하고 있다. 즉시적인 시간성의 지배다. 스코트 래쉬와 존 어리는 현대사회의 경제가 기호에 기초하게 됨에 따라 이 기호들의 회전시간, 따라서 이 생산물들의 회전시간은 엄청나게 빠르며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즉시적이라고 본다. 즉시적인 시간은 공간에 영향을 준다. 사회학자들은 즉시적 시간성이 무장소성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실제의 도시에도 그림에도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이상한 공간들이 편재한다. 정보사회는 초공간(hyper-space)을 향해 치닫는다. 하지만 정재호에게 사진은 자료에 불과하다. 그는 ‘사진이 찰칵 이라면 회화는 찰~~~~칵’이라고 위트있게 비교한다. ‘찰’과 ‘칵’ 사이에는 매우 많은 프로세스가 있을 수 있다. 적어도 정재호에게는 그렇다. 정작 그림은 주변화되어 있는 스펙터클의 시대를 살아가는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우연찮게 사진을 찍는다. 다시 선택된 사진과 빠르게 시작한다...사진의 역할은 다 되어 가고 기억에 의존한다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억이라기 보다는 바라보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고 감각에 남긴 영향은 어땠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그 무의식적인 동기가 그림이 되어간다. 끊어지고 찢어진 순간들을 우연처럼 이으면서...’라고 말한다. 작품화될 때는 현실에서 느낀 감각적인 분위기를 가장 중시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서사는 부차적이다. 그에게 회화는 감각을 쫒아가는 직관적 선택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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