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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 난반사되는 표면의 세계

이선영

난반사되는 표면의 세계

 

이선영(미술평론가)

  


시골길을 가다가 ‘유해 조수’를 쫒기 위해 농부들이 전답(田畓) 가장자리에 둘러친 셀로판 재질의 띠들을 본적이 있다. 빨랫줄처럼 양쪽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미풍에도 마구 흔들리면서 꼬이는 평평한 띠들이 난반사하는 빛이 마치 광선총 발사되는 듯 신기했다. 농촌 들녘에 허수아비 인형을 대신하는 반짝이 띠들이 얼마나 새들을 잘 속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각적 효과는 확실한 듯했다. 자연스러운 풍경에 난입한 기하적 형태에 대한 발상을 자연을 주제로 한 야외 설치작품으로도 본 기억이 난다. 벼이삭들을 지키기 위해 허수아비 인형을 만들어 세우는 수고에 비한다면, 공산품으로 생산된 띠를 설치하기 위한 비용이나 노력은 가벼울 것이다. 가성비 갑이다. 최소한의 준비 과정으로 최대한의 다양성과 동감을 주고 싶은 작가에게도 이 소재는 효율적이다. 임정은이 2017년부터 소재로 사용하는 이 재료는 폭죽이 터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보다 통상적으로는 선물 포장의 악세사리로 흔히 사용하는 비닐 띠다. 




Firecracker38_oil on canvas_65.1x100cm_2020



최근에는 보다 미묘한 반사 효과가 있는 홀로그램 띠도 활용한다. 2017년부터 작업의 소재로 사용하는 라인 테이프는 종류도 다양하다. 작가는 그것들을 유화로 옮기기 전에 회색 상자 안에 적절하게 배열하지만, 만질수록 공간적 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띠들 자체의 복잡성에 반사면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전시된 작품을 각각의 세계로 본다면 온통 띠로 가득한 공간의 위상학(topology)은 띠로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도 연상시킨다. 우주를 이루는 소립자들 간에 작용하는 힘들을 끈으로 보는 모델(superstring theory)이 그것이다. 임정은의 작품에서도 만물의 기본인 입자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끈이다. 아직 가설인 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끈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매개로 한 은유는 뉴턴으로 대변되는 고전적 시공간과 아인슈타인으로 대변되는 현대적 시공간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마가렛 버트하임은 [공간의 역사]에서 뉴턴은 공간을 우주의 배경이 되는 형식, 즉 모든 운동의 절대적인 틀로 생각했다. 


뉴턴의 공간은 그 자체의 본래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단지 무형적이고 특색이 없는 공간, 즉 단순히 물질 운동의 배경일 뿐이다. 뉴턴의 공간 관에서 공간은 단순히 물체가 놓여있는 수동적인 영역이다. 마치 회색 상자 안에 놓인 물건들처럼 말이다. 임정은의 상자 안에는 수집된 끈들이 있고, 이것이 회화라는 공간으로 옮겨진 순간 차원은 변주된다. 뉴턴의 공간을 투명하게 규정하는 3개의 좌표축은 사라지고, 현대 물리학의 시공간 모델과 비교될 수 있는 변화무쌍하게 출렁거리는 표면들의 우주가 펼쳐진다. 작가가 대상의 입체감을 최대한 배제하는 거리와 각도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공간의 역사]에 의하면, 뉴턴의 세계상에서 공간은 본질적으로 텅 비어있는 상자, 영원히 뻗어나가는 3차원의 무한한 공간이다. 이에 반해 일반 상대성의 공간은 광대한 얇은 막과도 같다. 공간은 물질에 의해 형태가 만들어진 얇은 조직이기 때문에 물질의 분포가 변화하면 공간의 외형도 변하게 된다. 




Firecracker63_oil on canvas_80.3x80.3cm_2021



Firecracker64_oil on canvas_80.3x80.3cm_2022



상자 안에 무엇인가 들어있는 듯이 재현하는 것이 유클리드 기하학에 바탕한 사실주의의 방식이다. 특히 회화가 벽화라는 전통적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캔버스에 그려졌을 때, 보이는 것을 담아 옮길 수 있는 상자와의 비유는 명확해졌다. 미술사는 상업자본주의가 번성하기 시작한 북유럽에서 캔버스 위에 그려진 유화가 ‘보는 것을 통한 소유’(존 버거)라는 그 시대의 패러다임과 조응함을 말한다. 그것은 아는 것이 힘이고 앎을 통한 지배라는 계몽주의적 사고와도 연관된다. 현대미술이 재현주의로부터 벗어났을 때 상자는 점차 비(非)유클리트 공간을 대변하는 장(場)으로 확장 되었다. 임정은은 캔버스에 유화로 정밀하게 그려졌지만, 회화를 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캔버스는 상자같은 사각형이지만, 어떤 원근법적인 거리를 가진 재현이 아니라 표면들 그자체로 연출한다. 상자같은 중성적 기능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형상들이 출몰하는 사건의 장이 되었다. 잭슨 폴록이 흩뿌려지는 물감 자국으로 이 장을 채웠다면, 임정은은 띠다. 


[공간의 역사]도 우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것은 거대한 ‘우주의 끈’과 ‘얇은 판’이라라는 가설을 소개한다. 초끈 이론에서 줄과 판들은 거대한 중력의 응축이면서 공간구조를 변화시킨다. ‘해양처럼 상대론적 공간은 파동, 기류, 그리고 소용돌이, 즉 별과 별 사이의 바다와 같은 공간에서 거세게 굽이치고 물결치는 거대하고 유동적인 4차원 곡면에 의해 부단히 변형되는’(마가렛 버트하임) 풍경은 임정은의 작품이 결과물과 비교된다. 작가는 ‘색과 면이 엉키고 설키면서 서로를 반사하여 우연히 연출된 화면은 일종의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고 하면서, 2021년 개인전 [엉킨 빛] 이후의 작업들은 ‘어떠한 오브제들이(그것이 우주의 쓰레기일수도, 해저 생물의 모습일 수도, 산속의 나무일 수도 있는) 한데 모여 숲을 이루는 상상을 하며 이미지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현대적 우주의 모델에서 시간은 공간의 또 다른 차원이기에 매우 유연하다. 




Firecracker69_oil on linen_112x162.2cm_2022



공간은 ‘물체가 항해할 수 있는 바다일 뿐 아니라 복잡한 구조물들을 형성할 수 있는 매우 유연한 토대’(마가렛 버트하임)가 되기도 한다. 자연광으로도 찍지만 후레쉬를 터트려야 하는 사진은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번쩍거리며, 조명도 있어서 반사면이 더 활성화된다. 강한 반사면은 날카롭다. 임정은의 작품은 가시적이지만 깊이가 없고, 얇지만 가려진 듯한 모습이다. 모든 것이 명명백백한 듯하지만 수수께끼다. 작가는 [Firecracker] 시리즈의 작업 과정을 ‘리본들은 무작위로 뒤엉킨 후 다시 정돈되어 사진으로 찍고 이 부분을 확대하여 디지털 작업을 거쳐 캔버스에 재현된다. 다양한 모양의 면과 경계선, 색이 접합하는 순간의 흥미로움을 우선으로 이미지를 선택하는데, 이때 우연히 출현한 도상을 중요시한다’고 밝힌다. [Firecracker 일련번호]로 제목을 붙인 작품은 띠의 배열이 폭죽 터지듯이 무작위적임을 말한다. 폭죽은 레오나드 쉴레인이 [미술과 물리의 만남](Art & Physics)에서 서술한 빅뱅같은 이미지다.


‘물리학자들의 우주론적 모형인 빛, 공간, 시간, 에너지, 물질을 담고 있는 불덩이가 급속히 확산되어 산산히 흩어지는 것’(레오나드 쉴레인)과 비교된다. 별들이 죽을 때도 비슷하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초신성(supernovas) 폭발의 예를 든다. 이 격렬한 폭발은 거대한 별이 갈갈이 찢어지고 부수어져서 그 조각조각이 하늘에 두루 흩뿌려지는 대격동의 우주의 사건이다. 임정은의 작품에서 반짝이는 띠들의 복잡한 엉킴은 명확한 대상을 해체시키는 빛의 역할을 강조한다. 빛의 산란은 때로 예기치 못한 율동을 표현하기도 한다. 2021년 개인전 제목인 [엉킨 빛]처럼 무작위로 배열된 셀로판 띠를 회화로 옮기는 것은 빛의 유희를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조명과 카메라 조명까지 가세한다. 띠들에 떨어지는 광원은 많다. 난반사되는 빛 때문에 경계면들이 불확실해져서 관객은 길을 잃는다. 분명히 여기에서 저기로 가고 있던 띠가 빛줄기와 뒤섞여 중간에 사라져 버리고 또 다른 공간이 파생된다. 




Firecracker70_oil on canvas_80.3x80.3cm_2023



Firecracker73_oil on canvas_80.3x80.3cm_2023



앞서 예를 든 3차원 설치물과 달리, 회화는 2차원에 재현하는 문제이기에, 사진이 찍힐 당시의 반사면들은 그림 표면에 배열되고 더 모호한 공간이 되며, 결국은 추상화된다. 작가는 작품에 따라 배경을 남기기도 하면서 형상들이 단지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닌 실제를 재현한 것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화면 안에는 재현이 가능하기 위한 원근법적 거리감이 대폭 생략되어 있다. 회화라는 평면적 형식은 시야에 따라 실제를 압착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띠는 대개 비슷한 두께지만 접히고 휘어지고 엉키면서 무작위적인 배열에 의한 반사면이 형성된다. 그것은 띠 안에 또 다른 색, 형태, 폭, 길이의 띠들을 배열하게 한다. 특히 얇은 띠의 속성상 꼬이는 경우가 많고 꼬임과 꼬임이 무작위적으로 연결되는 평면은 뫼비우스띠같은 공간적 위상을 가지게 한다. 그림 속의 소재는 띠라는 물리적 속성이 최소화되고 다양한 공간관계의 유희가 벌어지는 장이 된다.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화면의 중심은 사라진다. 


그것이 음악이면 다성음악이고, 문학이라면 기승전결이 해체된 서술이다. 특히 이런 종류의 띠가 일상에서는 장식용으로 쓰이곤 하기 때문에, 화면도 더불어 화려하다. 요컨대 ‘화려함’을 추상화시킨다면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 임정은은 색채를 조율할지언정, 형태는 대개 그대로 ‘묘사’한다. 형태 자체가 절묘하기 때문에, 굳이 또다른 첨삭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작품 스케치를 보면 띠의 엉킴 내부를 채우는 또 다른 형태들이 빼곡하게 옮겨져 있고 색은 한쪽부터 덮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상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거리두기는 배제되고, 무작위적인 결합에 따라 철저히 표면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임정은의 작품은 굳이 폭죽이 아니어도 폭죽같은 색채의 폭발이 있다. 빛의 반사 면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형태, 형태 안의 형태들은 계속 이어진다. 시선에 따라 공간은 계속 열린다.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인 캔버스에 무한을 담는 화가의 방식이다. 




Firecracker76_oil on canvas_72.7x116.8cm_2023



Firecracker78_oil on canvas_112.1x162.2cm_2023



작품 [Firecracker70]에서 띠 하나가 온전히 수직 방향으로 늘어진 작품 또한 그 내부에 수많은 또 다른 형태와 색이 자리한다. 특히 날카로운 선 들 사이에 유동하는 액체같이 무작위적 형태들이 절묘하다. 최초의 시각적인 덫은 작가가 놓지만, 그 결과는 생각지 못한 우연들의 축제다. 작가는 이 우연을 최대한 살리고자 한다. 선택의 연속인 작품은 자신이 시작한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작품 [Firecracker73]처럼 화면 가로 방향으로 배열된 띠들은 주된 흐름을 차단하는 반사면들로 가득하다. [Firecracker69]처럼 띠의 방향이 상대적으로 질서감이 있는 작품도 있다. 그것은 좀 더 거리감을 둔 위치일 경우 그렇게 보인다. 작품 [Firecracker74]은 띠의 굴곡 면이 입체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좀 더 근접한 거리에서 포착된 작품들이 중력의 방향을 초월한다면 배경이 있는 작품, 즉 화면에 빈공간이 있는 것은 띠들이 쌓여 엉켜 있는 상황이 감지된다. 


작품 [Firecracker76]에서 띠들이 멀리서 포착된 경우 재현적인 속성이 강해진다. 관객은 여기에서 푸른색, 노란색, 분홍색 띠를 구별할 수 있다. 화면 위에 남겨둔 여백은 엉킨 띠들의 놓인 3차원적 좌표를 가늠하게 한다. 작품 [Firecracker78]에서 띠들의 엉킴 속에 여백같이 하얗게 나온 은색 띠는 형태와 배경의 관계를 교란한다. 전시 부제 [surface surface]는 단어를 두 개 겹칠 뿐 아니라, 단어 아래로 반사되는 효과를 주어 반짝이는 표면을 강조한다. 작가는 ‘뒤엉킨 폭죽 끈들은 과실재적 소비사회 속에 인간의 자기 현존 방식을 형상화한 것’으로, ‘끊임없이 서로 반사하는 표면의 물성이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혼동되는 하이퍼리얼한 세계와 시각적으로 닮아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면의 위상은 높아진다. 물건이 파손되지 않을 만큼의 얇고 가벼운 포장재는 그자체가 경제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사이버 세계의 코드 또한 물질과 육체를 저 뒤로 하고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가상의 위상은 커지고 본질화된다. 




Firecracker74_oil on canvas_72.7x60.6cm_2023



다양한 표면들이 뒤엉켜 또 다른 표면의 세계를 연출하는 임정은의 작품에서 표면들 뒤에 가려진 본질이 있을까. 쟝 보드리야르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한 저서 [시뮬라시옹]에서 예를 든 보르헤스의 우화 속 지도처럼, 제국 전체를 다 덮는 지도를 상상할 수 있다. 실제를 정확히 베껴낸 1;1 지도는 재현적 거리를 상실하면서 제국을 뒤덮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다. 보드리야르는 이 지도를 하이퍼리얼한 사회에 대한 비유로 사용했다. 실제로부터 출발했겠지만 이제 실제의 무게로부터 자율화되어 자신들만의 궤도를 돌고 있는 코드화된 세계는 어떠한가? 코드화된 세계에 대한 전망은 우화 속 멸망된 제국처럼 묵시록적인 비전이 깔려있다. 하지만 문명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자연은 종종 재난을 통해 자신의 실재성을 확인시킬 따름이다. 가면 뒤의 얼굴 대신에 계속 가면이 이어지는 듯한 시뮬라크르의 시대, 임정은의 그림은 피상적인 것을 더욱 극단화한다. 작가는 평면으로 환원된 모더니즘 어법을 가속화하면서 시대의 미감을 중립적으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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