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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실 / 각자 작동하는 것들의 공존

이선영

각자 작동하는 것들의 공존

 

이선영(미술평론가)

 


148아트스퀘어에서의 프리뷰 전을 포함해, 김명실이 발표한 최근 작품에는 각도기나 물감통 같이 작업과 관련된 물건은 물론, 작은 십자가같이 작가의 삶과 관련된 대상들이 자주 보인다. 언뜻 왜 함께하는지 알기 힘든 대상들은 마치 그것을 그대로 붙여 놓은 듯한 자세한 묘사가 특징이다. 물론 각 대상의 스케일의 문제가 있지만 그 또한 융통성이 있다. 화면을 구획하는 것들은 원색으로 칠해진 나무틀처럼 보이고, 그 주변의 이런저런 대상들은 그 위나 옆에 자리하는 듯하다. 하지만 구획들을 포함해 화면 안의 모든 것은 그려진 것이다. 각각의 사물의 형태는 물론, 그에 고유한 촉각도 정확히 재현되어 있어 마치 손으로 집어 들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화면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곤 하는 얼룩같이 비정형적인 것은 무엇인지 불확실하다. 그 부분은 광학적 정확성에 충실한 다른 부분과 달리, 미약하게나마 회화적이다. 요컨대 원색의 배경이 생략된 밝은 부분에는 작가의 싸인이라고 할 만한 붓질 자국이 보다 선명하게 남아있다. 




Vision _ haptic 202105~07, 162.2×130.3cm each,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1



Vision_haptic 202101, 91.0×116.8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1



최근 작품 제목 속에도 포함된 ‘haptic’은 질 들뢰즈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분석하면서 코드화와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회화적 범주로 ‘광학적/촉각적’이라고 나눈 범주와도 겹쳐진다. 보다 직관적 표현으로는 ‘눈과 손의 관계’다. 질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코드적인 모습은 눈에 대한 손의 극대의 종속을 표시한다’고 하면서, 이때 손은 ‘순수한 시각적 형태에 상응하는 단위들을 선택하기 위해서만 개입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질 들뢰즈에 의하면 손이 종속되면 종속될수록 시각은 이상적인 광학적 공간을 발전시킨다. 질 들뢰즈가 염려하는 ‘광학적 코드’는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더 보편화 되었지만, 회화나 사진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화가의 기교가 뛰어나서 눈속임 기법이 자연스러울수록 그렇다. 김명실의 작품에서는 회화적 촉각성과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함으로 가능한 촉각성이 있지만, 양자의 비중이 같지는 않다. 정확성을 요구하는 대상조차 사진은 물론 직접 보고 그리지 않는다.


일기를 쓰듯이 늘 드로잉하고 그리는 작가는 요즘의 대세인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의 어법에 친숙하며, 질 들뢰즈가 중요시한 범주인 ‘손적인 것’에 충실하다. 손적인 것은 손가락적인 것 보다 촉각적이라는 점에서, 제목으로 같이 쓰곤 하는 또 다른 키워드인 ‘Vision’과 균형을 이룬다. 작가는 ‘Vision’ 시리즈에 대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를 가시화하기 위해 출발한 작업’이라고 하면서, ‘그 안에는 추상과 구상, 평면과 입체, 익숙함과 낯섦, 이미와 아직, 현실과 현실 너머의 세계가 상호공존하고 있으며 그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전이 담겨있다’고 밝힌다. 김명실의 작품 목록을 보면, [비전] 시리즈가 먼저고, 최근 작품에서 ‘햅틱’이 추가된 상황이다. 작가는 ‘비전’을 ‘바라는 것에 대한 리얼리티’라고 말한다. 붓질이든 색면이든 그런 조형언어로 만들어진 환영이든 모두 저만의 자리를 잡고 있다. 시각적 강약은 있지만 서로 간섭함 없이 각자의 존재감을 살린다. 



Vision _ mutual 202302, 30.0×30.0cm, Oil on Canvas, 2023



Vision _ mutual 202301, 90.9×72.7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3



Vision _ renewal 202302, 162.2×112.1cm, Oil on Canvas, 2023



작가는 ‘내 그림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고 말한다. 무엇을 그려도 각각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조형적 강도도 비슷하다. 배경처럼 들어간 밝은 색면 또한 작가의 감성이나 태도를 보여준다. 작가는 ‘명실’이라는 이름이 ‘밝은 열매’라는 점을 환기시키며, ‘내 작품은 밝고 긍정적’이라고 한다. [비전] 시리즈를 포함한 최근 작품의 색면은 블루 뿐 아니라 레드, 옐로우 계열의 순도 높은 환한 색이 화면을 차지한다. 김명실의 작품에서는 회색조차도 칙칙하지 않다. 화면에 대상, 또는 영역으로 나뉜 것들은 상호 이질적이면서도 대화와 공존을 지향한다. 삶에서 만나는 많은 것들이 등장하지만, 중심과 주변을 나누지 않는다. 작가만으로 살 수 없는 삶 속 수많은 역할에 충실하려다 보니 생긴 태도이다. 계속 이사하며 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자들과 섞일 수 있는 유연성이 필수였던 것이다. 공존과 대화는 서로 다른 차원의 것들도 포함된다. 


심지어 질료조차도 아크릴, 리퀸, 오일 등을 같이 쓴다. 강렬한 색면인가 섬세한 그림자인가 그럴듯한 입체감인가에 따라 각각이 사용되어야 하는 층이 달리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법 상으로 칠하기 뿐 아니라 긁어내기도 가세한다. 작품 속 입체감이 보다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붓 외에 가위나 자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조각적’인 처리를 거친 것이다. 소재와 기법을 융통성 있게 운용하면서 추상과 구상, 회화와 부조 같은 표현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한다. 논문 제목이 [상호 공존의 존재 방식에 관한 표현 연구]일 정도로, 김명실에게는 공존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으로의 환원이나 양자택일은 없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그리고’로 이어지는 열린 서사를 추구한다. 그러면서도 작품이 혼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김명실의 작품에 보이는 질서감은 절제, 그리고 각자 작동하는 것들의 공존으로부터 온다. 각도기나 타일처럼 그자체로 확실한 것이 있는가 하면 비정형적인 것들도 있다. 




Vision _ renewal 202301, 90.0×90.0cm, Oil on Canvas, 2023



(참고-프리뷰 전시작품) Vision_haptic 202005, 100.0×100.0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0



(참고-프리뷰 전시작품)Object_haptic 202001, 90.9×72.7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0



선명한 색채와 분명한 형태의 세계에 불쑥 끼어든 수수께끼 같은 형상은 ‘알 것 같지만, 모르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명료하게 그려진 화면에는 미지의 몫을 남겨둔 영역이 있다. 김명실의 작품에서 ‘haptic’에 속하는 미지의 영역은 질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돌발흔적’이라고 표현한 개념을 연상시킨다. 질 들뢰즈는 ‘돌발흔적을 완화해서 사용하는 중용적인 길’을 생각한다. ‘이때 돌발흔적은 코드의 상태로 축소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전체 그림을 다 차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재현주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현대미술가에게 고전주의적 중용은 답이 될 수 없기에, 프란시스 베이컨이 선택하기도 했던 전략은 코드와 혼란을 동시에 피하려는 김명실의 조형적 선택과도 만난다. [Vision_haptic] 시리즈에서 화면 안에 그려 넣은 집게로도 잡힐 것 같지 않은 허연 덩어리는 붓질의 흔적을 보여준다. 물론 배경처럼 연출한 화면 또한 붓질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문, 틀, 창문 등을 연상시키는 입체감 있게 처리된 구조물들에 남겨진 붓질은 칠해진 대상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화면에 남겨진 붓질은 재현이자 현존이다. 타일과 그 위에 자리한 십자가, 물감통, 각도기, 여기에 콘센트까지 실제의 사물 같은 눈속임과 그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시각성과 촉각성의 공존이다. 하지만 각도기처럼 명확한 대상 역시 맥락의 변조로 인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각도기는 모교의 캠퍼스에 가상으로 설치한 예에서 나타나듯, 학창 시절부터 나타난 소재로 최근 작품까지 꾸준하게 등장한다. 각도기의 정체성인 정확성은 맥락의 변화에 더 민감한 결과를 야기한다. 미술사에서 형이상학파 화가로 분류되고 있는 데 키리코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익숙하면서 낯선 사물들이 자주 나타난다. 작가와 관련되어 있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그림이라는 장기판 위에서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자유롭게 유희한다. 일상적 맥락으로부터 탈주한 대상들은 그림이라는 대안의 세계에서 이미 있는 것의 다시 나타남이 아니라 일회적인 모습, 즉 존재가 된다. 


출전; 148아트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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