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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 생산과 파괴의 악순환

이선영

생산과 파괴의 악순환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지은의 [화성 N 지구에서]라는 전시의 부제는 다양한 차원을 내포한다. 화성은 작가가 살고 있는 장소이며, ‘N 지구’는 그곳이 신도시로 계속 개발, 확장되고 있음에서 출발한다. 화성시의 택지지구라는 의미는 동음이의어 유희에 의해 화성이나 지구라는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N’ 또한 ‘&’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미시적 차원부터 거시적 차원에 이르는 우리 삶의 터전을 속속들이 분석하고 탐구한다. 벽에 거는 장식용 그림부터 모델하우스, 택지개발지도, 우주의 광경까지 여러 관점이 동원된다. 몇 년을 그곳에 살았지만, 지구 근처의 무인 행성인 화성(Mars) 같은 낯설음은 예술 특유의 거리 두기와 겹쳐진다. 전시 작품인 듯 아닌 듯 높이 걸린 [분양성](2020)은 욕망으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다. 높이 띄워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든 둥근 선전물 같은 작품은 서울 인근의 택지지구가 GTX 연결로 호재를 맞은 실제 상황을 전달한다. 우주적 차원은 실내 풍경 또한 우주선 같은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우민아트센터 전시전경(이하 모든 사진출전은 우민아트센터)




작품 [모델하우스-터널](2023)은 전형적인 모델하우스의 실내 창밖으로 실제 존재하는 무지개 모양의 터널을 결합시켰다. 마치 웜홀을 통과하는 듯한 우주선 같은 실내에서 우리는 시공간을 단축시키는 신기한 통로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 기대된다. 모델하우스 안의 대형 텔레비전과 맞은편의 그림 또한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집은 정착의 장소이기보다는 어딘가로 계속 이동 중인 비행체, 또는 플랫폼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뒤섞이는 도시에서 작가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한다. 혹성이나 우주선 이미지는 김지은이 수년간 관심을 가져온 ‘비장소’(마르크 오제)와도 연관된다. 검은 우주에는 구체적인 삶의 좌표가 부재한 것이다. 좌표의 사라짐은 발 딛고 선 땅 위에서도 일어났다. 그것은 근대 이래의 추세이기도 했다. 스콧 래쉬와 조나단 프리드먼은 [현대성과 정체성]에서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유럽 주요 도시에서 대로의 건설을 시간에 의한 공간의 파괴로 파악한다. 


즉 현대화와 더불어 공간은 그 안에서 살기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a에서부터 b로 나아가기 위한 장소가 되었다. 장소는 특징을 잃어버린다. 공간이 시간과 관련되어 있기에 비장소의 문제는 또다른 시간을 전제한다. 그것은 현대의 생산과 소비가 즉시적인 시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점과 관련된다. [기호와 공간의 경제]에 의하면 경제가 기호에 기초하게 됨에 따라, 이 기호들의 회전 시간은 매우 빠르며,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즉시적이다. 무장소성은 즉시적인 시간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그 결과가 주체와 객체의 의미의 비우게 한다고 말한다.  계속 변화하는 풍경은 작가로 하여금 역사적인 감각을 고양시켰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이 처음 보게 되는 작품 [화성 풍경-가림막](2021)은 작가가 화성으로 이사 왔을 때의 근처 역과 집 사이의 풍경이다. 오랫동안 국내외에서 유목 생활을 했던 작가가 드디어 집에 정착했을 즈음 본 차만 다니는 풍경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노란 길과는 거리가 먼 황량한 길이다. 



화성 정자_캔버스에 유채_97x193.9(cm)_2022



화성 놀이터_캔버스에 유채_97x193.9(cm)_2022


오랫동안 개발이 지체되어 가림막은 다 낡았지만, 길가의 나무들은 나름대로 운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꽉 들어찬 아파트들로 인해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남은 풍경이 되었다. 역사적 감각을 자극하는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지속적인 것은 개발하는 시스템이다. 논밭이었을 장소를 빠른 시간 동안 대도시로 성장시킨 동력은 무엇일까. 작가는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가 공간의 상품화를 전지구적으로 가속화하였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은 우리가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전통적 의미의 장소성을 잃어버린 실존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자연과의 게임은 인간과의 게임으로 급격하게 전환되며, 이전의 맥락은 흔적도 없이 지워지지만 새로운 맥락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다음에 걸린 두 점의 작품은 행성 화성을 배경으로 한 화성의 풍경이다. [화성 정자]와 [화성 놀이터](2022)는 작가의 집 앞에 실제 있는 것들이다. 아파트의 구성원일 노인과 아이를 위한 장소라고 할 수 있지만, 상자처럼 지어진 아파트는 시늉으로만 전통이나 이국적 코드를 심어놓는다. 


집-학교-상가의 학원 사이를 컨베이어벨트 돌 듯 도는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 시간이 없고, 노인들은 유령화 된다. 무인지경의 배경은 초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 속의 일부가 복사되어 설치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작품 속 도로 방호벽을 인쇄하고 접지 형태로 만들어 죽 연결했다. 작가가 현실에서 본 초현실적 광경은 회화에 담기고 그것은 다시 현실화된다. 이러한 거듭되는 복제는 일명 ‘복붙(복사해 붙여넣기)’의 현실을 표현한다. 아파트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거주 형태는 ‘복붙’이 현실적 구조로 체감되는 장이다. 획일성은 발전의 산물이지만, 또 다른 발전을 위해서는 지양되어야 한다. 찰스 테일러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서 근대 관료제 국가의 확산, 시장경제, 과학, 그리고 기술 등과 같은 어떤 제도적 변화에 의해 근대성을 규정한다면, 그것은 어느 곳에서든 동일한 형태로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단일한 과정으로 간주된다고 말한다. 



모델하우스-터널_리넨에 아크릴채색__130.3x193.9(cm)_2023



모델하우스 화성시1_리넨에 유채_130.3x193.9(cm)_2020


근대화가 어느 인간 사회도 필수적으로 거처야 하는 과정이라면 획일성이 아닌 ‘다원적 근대성’(찰스 테일러)이 필요하며, ‘단일한 언어게임’(리오타르)을 거부해야 한다. 모듈화된 건축으로 전통적 형식을 대체하려던 근대의 기획은 ‘아파트공화국’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에서는 지배적으로 관철되었다. 또 다른 설치작품 [아파트 컬러 트렌드 vs 르 코르뷔지에(뒷면)](2023)는 골판지에 여러 가지 색의 시트지를 붙여 근대의 양면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포장용 골판지를 거의 그대로 재활용한 것으로, 병풍같이 거죽만 있는 아파트 밀집 풍경을 연결된 장막같이 표현했다. 기성품이며 쉽게 접고 펼칠 수 있는 구조는 한국의 대표적 주거 양식인 아파트에 대한 개념을 전달한다. 설치물 뒷면의 색상은 근대건축의 대가 작품에서 온 것이고, 앞면은 늘 새로운 상품으로 재포장되기 위해 주기적으로 외벽이 칠해지는 아파트의 대표적인 색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뒤처져도 빠져도 안 되는 경쟁심이 나름의 평준화를 이룬다. 


양극화 사회가 추동하는 하향 평준화는 평등과는 다르다. 생성기 모더니즘의 날카로움과 새로움은 이런저런 상업적, 대중적 고려로 인해 밋밋한 죽탕같이 변한 평균치의 미학과 대조된다. 모던이 무던으로 변조되는 순간이다. 작가의 평가에 의하면 초창기 모더니즘 건축은 색다르지만, 이후의 시뮬라크럼은 색다름이 없다. 김지은의 작품에서 우리 환경에 대한 획일성의 문제는 단지 심미적 취향에 의해 판단되기보다는, 정치경제학적 맥락을 가진다. 작가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도시는 일련의 분절화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획일성에 대한 모델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서 근대의 계몽주의 프로젝트는 계획적 조정을 통해 공간을 분절화한다고 한다. 이는 시간에도 적용된다. 가령 포드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생산라인의 설계에 시간을 공간화했다. 이를 통해 생산력을 증대시켰다. 이러한 시스템이 보편화되면서 세계는 갈수록 동질적이면서도 분절화되어 간다. 



쇼륨 #2_리넨에 콜라주, 아크릴채색_162.1x227.3(cm)_2023



쇼륨 #1_리넨에 콜라주, 아크릴채색_181.8x227.3(cm)_2023


데이비드 하비는 공간을 통제하고 조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분쇄와 분절화를 통한 것이라고 말한다. 근대건축의 논리는 형태가 기능뿐 아니라 이윤을 따른다는 법칙이라는 점은 한국의 아파트 공화국에서 확인된다. 장소의 고유성이 사라지고 동질화되는 점은 장소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스코트 래쉬와 존 어리의 [기호와 공간의 경제]에 의하면 ‘교환가치는 사용가치의 가장simulacrum’(보드리야르)이라고 인용한다. 여기에서 가장은 원본 없는 사본이다. 집이라는 객체는 구체적 의미를 잃은 것이다. 집마저도 상표화 과정을 통해 기호적 속성을 띠게 될 때, 상품이 이윤을 낳듯이 계획된 폐기를 위한 생산의 회로에 진입한다. 그것은 근대화 내내 이루어졌던 과정이며 더 가속화된다. 작품 [옆집](2021)은 6개가 시리즈로 베란다 창을 열면 매일 보이는 옆집의 벽을 소재로 한 것으로, 무난한 색으로 도색된 벽을 인상파 스타일로 각색했다. 


평범한 벽도 작가의 눈으로 보니 날씨와 계절, 시간대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흥미로운 표면이 된다. 같은 벽의 다른 뉘앙스들은 마치 기하 추상화처럼 보이며, 프랙털 도형처럼 아파트라는 사각형 안에 또 다른 사각형이 자리한다. 자연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사각형들은 최초의 추상화가들에게는 추상이었지만, 그것이 환경이 된 세대에게는 재현적 요소가 될 수 있다. 한편 모더니즘 또한 중산층 실내의 장식물로 변해왔던 역사가 있다. 특히 작가가 주목한 기하추상 스타일의 이미지들은 실제로 가구 관련 상품 카탈로그 및 분양 홍보관의 이미지를 인터넷 등에서 수집한 것들에서 발췌한 것이다. 8개가 시리즈를 이루는 작품 [쇼우하우스](2023)는 빌딩 숲으로 대변되는 현대적 건물에 어울릴 법한 기하학적 그림들이 장식처럼 붙어있다. 어디서 떨어져 나온지 알 수 없는 단편들은 그 자체로 추상적이다. 그러한 이미지들의 출전은 기하적 추상화가 장식일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준다. 



화성 풍경-모델하우스_리넨에 유채_227.3x363.6(cm)_2021



화성 풍경-흙_리넨에 유채_181.8x454.6(cm)_2021


스콧 래쉬와 조나단 프리드먼의 [현대성과 정체성]에 의하면 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추상적인 모델이다. 이러한 특징은 ‘데카르트의 나의 특징이고, 칸트의 이성의 특징이고, 도시 도로망의 특징이고 르 코르뷔지에의 실기위한 기계의 특징이며, 하버마스의 이상적인 화술 상황의 특징’(스콧 래쉬, 조나단 프리드먼)이다. 작품 [쇼륨 #2](2023)은 작가가 살고 있는 아파트 풍경이 보이는 실내로, 카탈로그에서 수집한 실내 풍경 사진이 콜라주로 포함되어 있다. 밀집도 높은 대단지 아파트는 어떤 각도에서 다 붙어 보인다. 작가는 그 모습에서 바코드를 연상한다. 콜라주 부분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상표는 상징적이다. 살고 있는 집의 시세를 수시로 확인하는 삶, 집 주소를 입력하면 현재 시세가 딱 뜨는 아파트에서의 삶에 대해 작가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가판대에 나와 있는 것 같다’고 비유한다. 대지에 뿌리박은 집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주식처럼 요동치는 그래프 위의 집이다. 


한 작품에도 호명된 근대의 건축가에게는 무겁고 어둡고 칙칙한 전통을 벗어나 태양을 한가득 들여놓으려던 날렵한 경량 구조에 대한 유토피아적 비전이 있었다. 하지만 이성이 더 이상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후 상시화된 전쟁이나 경쟁으로 확인된다. 생산력의 발전은 민주주의나 대중사회도 가능하게 했지만, 더 많은 빈곤과 더 많은 쓰레기들 또한 생산했다. 김지은의 풍경이 황량한 폐허를 넘어서 무정부주의적 무질서가 되면서 근대주의의 또 다른 측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품 [Suburban Rural Complex](2023)은 뒤로는 말끔한 아파트지만 그것의 이면은 쓰레기통이다. 투명한 합리주의 내부에 도사려 있는 무정부주의적 무질서다. 대체로 집단 주택은 쓰레기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편이지만, 나오는 쓰레기의 양 자체가 많다. 이 풍경 또한 빌라촌으로 바뀌었다지만, 쓰레기가 어디로 가든, 발생한 쓰레기 자체가 정화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재활용수거일_캔버스에 유채, 콜라주_227.3x363.6(cm)_2022



Suburban Rural Complex_리넨에 아크릴채색_181.8x227.3(cm)_2023


작품 [화성 풍경-흙](2021) 또한 지금은 완전히 개발된 곳으로, 빈 캔들이 널려있는 개발지 풍경이다. 파헤쳐지고 방치된 땅이 우리의 시작이자 몸통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지만, 작가는 그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을 놓았던 신화적 좌표는 사라진다. 주택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번듯하게 세워졌던 모델하우스는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전체가 다 쓰레기가 된다. 김지은의 작품에서 모델하우스나 쇼룸은 쓰레기를 기념비적인 차원의 풍경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택지개발자의 도시에 사는 작가의 일상적 경험이 반영된 것이지만, 건축적 규모의 설치미술도 열심히 했던 이전의 이력을 염두에 둔다면, 작품 발표 이후의 심란한 상황 또한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 자신이 유목하던 시절에 보관할 장소가 없던 작업을 계속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적, 미학적 체험은 회화작업에 녹아있으며, 다시 설치작업으로 파생되기도 한다. 


작가는 결코 꺼져서는 안 되는 근대적 성장의 엔진이 만드는 부산물을 주목한다. 얼마 전에 새것이었다가 쓰레기가 되는 모델하우스나 쇼룸은 성장의 명암을 보여주는 소재로, 계획된 폐기만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현대의 단면이다. 작품 [쇼륨 #1](2023)에서 건축적 규모로 세워지지만, 어느 날 사라지는 1회용 ‘집’은 이후 그것을 모델로 한 집들의 운명을 미리 보여준다. 그런 집에 어울리는 맞춤형 가구들의 광고 이미지를 콜라주로 삽입했다. 유화의 공간에 끼어든 이질적 단편은 김지은의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버무려진다. 작가는 콜라주의 출처에 대해 ‘콜라주에 사용되는 이미지는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뿐만 아니라 화성 탐사 로봇이 전해준 화성의 이미지나 거리뷰, 위성사진과 같은 기계적인 프로세스에 의해 찍혀진 사진들을 포함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주변 공간뿐만 아니라 전세계와 우주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밝힌다. 



12.아파트 컬러 트렌드 vs 르 코르뷔지에(뒷면)_골판지에 시트지_가변크기_2023



전시전경


작품 [화성 풍경-모델하우스](2021)는 작가의 집 앞에 있던 모델하우스 철거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지금은 모두 아파트가 된 그곳은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 물신적 상품이자 소비재로 간주되는 집은 빠른 파괴의 주기를 통해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현대인은 간이 무대 같은 곳에서 연극적인 삶을 산다. 아파트는 보고 보여지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을 소비와 연계시키며, 정보화 사회가 펼쳐지자 코드의 순환은 더욱 빨라진다. 작품 [모델하우스 화성시1](2020)는 모델하우스의 실내를 비워놓아 색칠 공부처럼 구매를 통해 채우기를 권유한다. 이 깔끔한 실내가 다 채워지고, (유행에 따라)지속적으로 다시 채워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올 것인가. 칠하기 놀이 형태로 제시된 실내는 소비 욕망의 구조가 이미 체계적으로 결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정면은 창밖 같지만 측면의 사각형은 모니터, 거울, 그림으로 보여진다. 파괴든 건설이든 서로를 반사하는 구조 속에서 증폭, 가속화된다. 


작품 [재활용 수거일](2022)은 아파트에서 재활용품이 모이는 날, 수위가 쌓아 놓은 종이박스 더미를 표현한 것으로, 배경은 화성이다. 하루 이틀 안 치워간 쓰레기 더미만 봐도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과도한 소비의 산물인 쓰레기들은 지구를 척박한 화성 같은 곳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한편 사람 사는 곳의 특징은 쓰레기의 발생이라는 인류학적 발견을 확인시켜 준다. 우리의 일상은 미지의 땅을 배경으로 낯설어진다. 작가는 그리기와 콜라주를 병행한다. 상표가 붙은 포장박스는 그대로 쓰레기가 된다. 노동에서의 소외가 여가의 소외를 낳고 그것은 광란의 소비로 이어진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과도한 소비를 한다. 많은 쓰레기를 최소한의 부피로 보관하는 것은 쌓기일 것이다. 밀집을 통해 생산력을 높이는 사회에서 아파트 또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상자가 쌓인 것이다. 작가는 상자에서 집을, 집에서 상자를 본다. 



옆집 #1-#6._리넨에 유채_100x80.3(cm)_2021



쇼우하우스 #1-#8,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8x72(cm)_2023







전시전경


우연히 개발이 한창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장소에 살게 된 작가는 도시가 탄생하는 모델을 보게 된다. 이러한 모델이 보편적이기에 제자리에 앉아서도 세계화의 양상을 체감한다. 작가가 관찰한 바로는 화성 아닌 곳도 개발의 양상은 복사해서 붙인 듯이 거의 비슷하다. 동네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기시감을 느껴 그린 [주차장](2022)은 작가가 한동안 머물렀던 미국의 쇼핑몰과 유사한 시스템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에 대해 ‘경기 남부의 신도시로의 이주는 미국 유학 시절 디트로이트와 그 외곽지역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했던 서버비아의 한국형 버전을 경험하게 했다’고 밝힌다. 공부와 작업을 위해 머물렀던 미국의 개발지 풍경을 한국에서 다시 본 작가는 자식들이 자라나는 환경을 반추한다. 작가는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그 인근지역에서 사막 같은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된 택지개발자의 도시를 인상 깊게 관찰하고 당시 작품에 표현하기도 했다. 


논과 밭이 있는 시골 마을이 개발되면서 신축/구축, 구도심/신도심이 나뉘고 후자가 공동화되는 과정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세계 어디에서나 자본과 시장의 논리는 비슷하다. 작가는 자신과 아이들이 한국형 서버비아에서 살고 있음을 체감한다. 지금은 저층 건물에 지상 주차장도 널찍하게 있지만 이 또한 변화의 기로에 있다. 일찍이 공룡 유통망으로 자리 잡은 대형마트가 저물어 가면서 사라지고 있다. 마트 주변은 마트 때문에 밀집 아파트가 들어서고, 마트는 그사이에 땅값이 올라서 유통시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있는 노동보다는 부동산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물신주의 사회에서 풍경 속 아이들의 삶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몇 가지 지도형식의 작품은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도시를 바라본다. 지도는 시스템이 공간을 어떻게 조직하고 규제하는지 알려주며, 일찍이 ‘제도화된 공간’에 관심을 가져왔던 김지은에게 중요한 소재가 된다. 



땅이 기억하는 이야기_캔버스에 유채_181.8x227.3(cm)_2016



중첩규제지도_캔버스에 유채_181.8x227.3(cm)_2022



그린벨트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모형용 조경재료, 폼폼_72.7x60.6(cm)_2022


[기호와 공간의 경제]에 의하면 노동, 자본, 기호가 흐르는 특정한 시간들과 공간들은 일련의 제도들에 의해 결정된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 의하면 세계의 지도화는 공간을 사적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도화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공간조직과 공간이동의 효율성은 중요한 쟁점이 된다. 데이비드 하비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회전 시간을 단축하면서 사회적 과정들을 가속화 한다. 김지은이 차용하는 지도는 사회적 권력을 담는 공간이라는 상징을 가진다. 조나단 프리드먼은 처음에는 폭력적으로 중심부가 팽창된다고 본다. 교역, 전쟁, 약탈 등은 부의 원시적 축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시스템은 경쟁과 팽창이라는 본질을 유지한다. 도시가 확장하는 과정은 현대화나 세계화의 과정과 비슷하다.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의 생산]에서 어디선가로부터 기획되는 공간의 재편에 비판적이다. 


그에 의하면 기술 관료들이 고안한 공간 기획은 국가의 영토를 합리적으로 가공하고 빚는 것으로, 대대적이며 마구잡이로 이루어지고 이익의 극대화만 생각하는 도시계획과 건설 붐을 비판한다. 우주선처럼도 보이는 김지은의 실내 풍경은 마치 ‘공상과학 같은 기술지향적인 이상향’으로 나타나며, 이는 ‘건축 공간, 도시 공간, 계획화 공간 등 공간과 관련된 모든 기획에서 발견’(앙리 르페브르)된다. 김지은의 작품은 ‘거대한 도시 풍경의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제도와 법규들을 평면이나 설치작업으로 다루며 현대사회의 제도화된 풍경’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도시 공간이 수많은 법규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시작’ 된 것이다. 작품 [땅이 기억하는 이야기](2016)는 작가가 살던 당시에도 한참 (재)개발이 이루어지던 고양시의 항공사진을 참고로 택지개발 또는 도시계획이 펼쳐지는 방식을 표현한다. 지도는 서서히 바뀌기 마련이지만 근대성을 가속화 시켜온 한국은 예외다. 



분양성_캔버스에 유채_지름 60(cm)_2020



주차장1_캔버스에 유채_100x72.7(cm)_2022


오래된 모습과 새로운 모습이 공존하는 지도는 점령군처럼 다가오는 새로움의 파워다. 무너지는 과정과 지어지는 과정은 구별하기 힘들다. 요즘 세계적으로 여기저기에서 전쟁과 지진 같은 인위적, 자연적 재앙에 관련된 이미지가 자주 나오는데 그런 모습과 유사하다. 작가는 뜨거운 사건의 장이 아니라 차가운 일상에서 꾸준히 쌓이고 있는 위험을 진단한다. ‘멋진 신세계’의 생산은 항시적인 파괴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조나단 프리드먼은 [현대성과 정체성]에서 ‘과거를 파괴하고 미래를 통제하는 인간의 자기 의식적 의지’라고 말한 사회학자 다니엘 벨을 인용하면서 근대주의와 발전주의의 관련을 말한다. 오직 발견, 성장, 자연에 대한 점진적인 통제, 다시 말해서 발전만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필요한 것은 무한한 축적을 위해서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장, 무한한 우주라는 우주관이다. 이 우주는 자기 통제된 에고가 마치 자본처럼 스스로를 실현하는 팽창공간이다. 


작품 [그린벨트](2022)는 지도에 모형용 조경 재료를 붙여서 서울이라는 중심을 둘러싼 욕망의 양상을 표현한다. 지도를 바탕으로 해서 색색의 알갱이들이 폭발해서 바깥으로 터져 나온 모습은 중심에 과도하게 집중된 관심에 대한 기표이다. 싸구려 모형물이 무한히 복제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선거를 앞둔 득표전략으로 채택된 ‘메가시티’ 계획은 너도나도 서울이 되겠다는 희망 고문으로 들썩이는 중이다. 경기도에서 발행하는 행정 지도를 참고한 작품 [중첩규제 지도](2022)는 택지개발자의 시선으로 본 서울과 그 인근 도시의 모습이다. 여기에서는 법적 한계치가 중요한 정보다. 군사지역이나 상수도 보호지역 등 규제가 많은 지역은 색이 진해지고, 규제가 없을수록 파스텔톤이다. 규제가 별로 없던 작가네 동네는 택지개발자들이 맘껏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빈 바탕이었다. 김지은의 ‘화성 같은 화성’ 풍경은 택지개발의 정치경제학을 동어적으로 반복하면서 그것의 빈틈을 노출시키고 차이를 보여주고자 한다. 

 

출전; 우민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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