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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라 / 우주의 원소를 쓸어 담다

이선영

우주의 원소를 쓸어 담다

 

이선영(미술평론가)



강보라가 최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는 먼지는 보이는 것 중에 가장 작은 것에 속하며 다양한 차원으로 변주된다. 자기 항상성을 가지는 개체의 방어벽을 넘나들 수 있을 만큼 미세한 존재들을 대변하는 먼지는 양가적으로 다가온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윌리엄 블레이크)고 노래했던 낭만주의적 감성은 유한과 무한, 순간과 영원을 상상으로 연결시켰지만, 재난 또한 세계적 수준인 현대에도 그럴 수 있을까. 바닷가의 모래가 아닌 먼지는 일상과 더욱 가까이 있으며,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해 보인다. 먼지는 우선 청소와 제거의 대상 아닌가. 삶 속에 파고들고 있는 미립자는 얼마 전 전세계 인구 80억명 가까이 다같이 겪었던 재난을 통해 잊혀져 있던 자연의 힘을 다시 각인시켰다. 재난은 경계를 넘나드는 미시적 존재에 대해 더욱 방어적 태도를 가지게 했다. 위기 상황에서 동일성을 위협하는 타자에 대한 경계는 더욱 강해진다. 



디지털 고물상, 가변설치, 웹 사이트, 2023



Bora Bot, 가변설치, Unreal 5 제작, 2023


일상에서 발견되는 먼지로부터 출발한 작가의 상상은 가상현실까지 이어진다. 관객이 웹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작품 [디지털 고물상]에는 우주 같은 검은 공간 속에 쓰레기들이 정처 없이 떠돈다. 잠시 기능이라는 질서를 유지하다가 다시 원래의 무질서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우주는 먼지로부터 이루어졌고, 먼지로부터 만들어진 별이나 그 별에 사는 자연 또한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먼지가 되는 시간은 너무나 길고, 먼지가 되는 과정 중에 있는 쓰레기들의 쇄도는 묵시론적으로 다가온다. 한 기술이 탄생하고 폐기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혁명적 기술일수록 인간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고, 그만큼 많은 부산물도 생산되었을 터이다. [디지털 고물상]은 얼마 전에 서비스가 종료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영감 받았다.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난 기술은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이룰 만큼 지배적이다. 잘못 유포된 개인 정보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도 있는 만큼, 디지털 고물상 또한 개연성이 있다. 


시스템이야말로 한, 두 군데가 아닌 전면적으로 바뀌는 것이기에, 가상현실을 떠도는 ‘고물’들 또한 유적지에 남은 유물 같은 분위기를 가질 수도 있다. 구식 스마트폰이나 MP3같은 기기에 저장되어 있던 게임이나 음악을 다시 플레이하게 할 때의 색다른 감흥도 있다. 지난 1990년대에 ‘비디오아트’ 같은 ‘첨단’ 분야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작품들을 일제히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는데 소요된 노력이나, 그 이후 가속화된 코드의 전환에 따른 적응의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웹상에서 존재하며, 미디어 기기를 필요로 하는 강보라의 작품 또한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필요로 할 것이다. 지배적 기술과의 신속한 공조는 경쟁력이 되었다. 가상현실은 그 비중이 높아지곤 있지만, 철저히 현실과 연동되어 있다. 광부의 노동이 아니면 기계를 만들 광석을 어디서 채취하겠는가. 누구 말대로 가상현실에 문제가 생기면 전기코드를 뽑아 버리면 그만일지 모른다. 



Scrap paper, 설치 전경,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3



Scrap paper, 100x70cm(each), Collagraph, 2023



인천국제공항 제 1,2 여객터미널, 228x735cm, Collagraph, 2022


작품 속 먼지는 현실에 편재하고 변형된 판화라는 매체에 담겨졌으며, 현실만큼이나 강력하게 다가와 있는 현실에도 적용된다. 강보라의 작품에서 먼지는 생산력 있는 씨앗으로 여러 차원을 토양 삼아 발아하고 생각지 못한 영역에도 가지를 뻗는다. 먼지는 입자로 이루어진 우주에 대한 고대로부터의 상상이나 레고 블록 같이 기본 단위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적 세계에 대한 상상과 닿아있다. 구성은 해체를 동시에 의미한다. 2023년에 청주창작 스튜디오 전시실에서 열린 ‘Scrap paper' 전에서 폐지 조각들을 모아 ‘밤하늘의 별들을 수놓고자’ 했다. 작가의 탐구에 의하면 우주먼지 없이는 밤하늘의 별도 관찰할 수 없다. 이전 작업에서는 낙엽으로 만든 벽돌집을 선보이기도 했다. 수집한 낙엽을 레진으로 굳혀 만든 벽돌로 설치된 작품 [당신이 사는 곳](2021)을 연출한다. 그때 강보라는 다나 해러웨이가 ‘인간(human)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부엽토(humus)로 본 것’을 인용하면서, ‘결국 우리는 미세한 입자의 형태로 돌아가 나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팝송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바람에 나부끼는 먼지’같은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기원과 종말을 먼지를 통해 사유한다. [Scrap paper] 전에서 둥글거나 타원형, 또는 사각형 등의 형태로 벽에 설치된 작품들은 콜라그래프로, 다양한 곳에서 수집된 먼지들을 고착시키는 방식이란 점에서 판화적이다. 먼지는 점, 선, 얼룩 등의 다양한 조형 언어와 중첩된다. 수집된 먼지들은 우연과 필연이 복합된 형상을 이룬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때 같은 우주가 일상의 구석구석도 편재함을 암시한다. 작가가 수집한 먼지들은 그 자체를 주목하게끔 고안된 조형적 장치에 의해 다시 보여지는데, 마치 성운성단이 탄생하는 듯한 우주적 장면과도 겹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 자체가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물리적 가설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의 메인 공간에 붙은 타원형 주변의 원형 작품들은 크기와 밀도가 달라 가상의 원근감을 형성한다. 먼지는 가까이서 또 멀리에도 편재한다. 



Untitled, 50×50cm(each), 먼지, 묻은 걸레, 젯소, 핸디코트, 2020



20190404-강원도 고성 산불, 150×154cm, 재, 물티슈, 천 위에 바느질, 2019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곡실평길 330(디테일컷), 156×1478cm, 먼지, 물티슈, 천 위에 바느질, 2019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곡실평길 330, 156×1478cm, 먼지, 물티슈, 천 위에 바느질, 2019


타원형 안은 그리드처럼 구획되어 있다. 마치 여러 장소를 보는 화면이 집합된 것 같은 모습은 눈앞의 것들이 더 많은 표본 중의 일부에 불과함을 말한다. 설치적인 방식으로 배치된 평면들은 화이트 큐브를 여백, 또는 고대 원자론자들이 가정한 빈 공간으로 사용한다. 고대의 원자론자들에게 빈 공간이 가정된 것은 만물의 근본입자들이 이합집산의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보라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재현 또는 재연되는 먼지는 고정된 경계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안팎을 넘나들면서 사건을 만든다. 미립자들은 단지 신기한 형태가 아니라 서사의 물꼬가 된다. 2022년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Cosmic Dust] 전에는 어둑한 공간에 먼지 형상을 확대해서 보는 장치들을 추가하여, 거대우주를 이루는 미시입자들을 관찰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증강현실로 나타난 작품에서 화면에 먼지 뭉치들이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볼 수 있으며, 이는 관객에게 사진 이미지로 전송될 수도 있다. 


밀도 있는 작품의 경우, 확대라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미시세계를 관찰하는 장치들은 복제 매체로서 판화의 정체성과도 관련된다. 2022년 전시에서는 모바일 기반 증강현실 장치가 첨가되기도 했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연상시키는 광학적 장치들은 일상적 세계의 중심을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미술사적으로도 추상미술의 탄생에 이러한 시각 환경의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확대의 시점은 창조보다는 발견의 가치를 말한다. 요컨대 그것들은 자연에 이미 있던 것이다. 하지만 먼지는 보여서는 안되는 오물로 간주된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먼지는 더욱 불청객이 되었다. 그것은 개체의 방어벽을 뚫고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무엇을 옮기는 매개체로 의심된다. 강보라가 낙엽으로 만든 벽돌집은 코로나 시기에 콘크리트 아파트를 뚫고 들어온 바이러스를 비유한 것으로, 만물의 본질이 입자임을 말한다. 



Cosmic Dust, 설치 전경, 탈영역우정국, 2022



내 컴퓨터, 가변 설치, 모바일 기반 증강현실, 2022



내 컴퓨터, 스크린샷, 모바일 기반 증강현실, 2022



뮤(μ), 설치 전경, 공간일리, 2021


작가는 이러한 ‘입자들의 여정’을 단편소설로도 썼다. 소우주와 대우주의 공통요소인 먼지에 대한 상상력은 인류가 외계로 이주하면서 생길 법한 감염이나 돌연변이 같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이상 반응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영상작품의 기반이 되는 SF 풍의 소설은 작가가 평소에 써 왔던 것이다. 여기에서도 먼지, 즉 더러운 것들은 경계의 감각을 고조시킨다. 그것은 원천 봉쇄되거나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은 타자에 대한 민감도를 더 드높였다. 원래 ‘개인’이라는 단어의 어원에는 마치 원자처럼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개체(in-dividuum )’라는 의미가 있지만,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는 견고하지 않다. 다나 해러웨이는 [유인원, 사이보그, 여자-자연의 재발명]에서 무엇이 단위로, 즉 하나로 간주되느냐의 문제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고도로 의문시된다고 말한다. 개체의 통일성이나 순수성에서 억압을 간파하는 다나 해러웨이는 경계조건과 공유영역 경계를 가로지르는 흐름의 속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강보라의 주요 소재인 먼지는 미립자를 대변하는 것으로, 바이러스 뿐 아니라 매체계의 불안정성도 말한다. 펠릭스 가타리는 [카오스모제]에서 과학기술, 생물학, 컴퓨터 기술, 정보통신, 매체의 세계는 매일 우리의 정신적 좌표들을 한층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강보라가 쓴 SF 풍의 소설에는 유전자의 변형 및 변조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결국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해독되면서 높아진 편집 가능성이 도래하게 할 극도의 통제 사회를 낳는 단초이다. 그것은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에서 묘사한 미래의 인간 공학이 인간의 유전자 설계까지 밀고 나갈 것이라는 예견과도 맞닿아 있다. 동물(타자)에게 일어난 것들이 인간(동일자)에게도 일어난다면, ‘인간농장’은 극소수의 기득권을 위한 선택적 탄생을 추동할 것이다. 인공적인 생명의 설계에 관련된 디스토피아 풍의 이야기에서 먼지, 바이러스, 유전자 등의 미립자는 공조한다. 



인천광역시 중구 연안부두로 70 #1, 70×100cm, collagraph, 2019



인천광역시 중구 연안부두로 70 #2, 76×112cm(each), collagraph, 2019



인천광역시 중구 연안부두로 70, 76×112cm(each), collagraph, 2019


다나 해러웨이는 [유인원, 사이보그, 여자-자연의 재발명]에서 과학은 자연을 재구성해왔으며, 유기적 생명, 본능, 성은 관리 대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다나 해러웨이가 염려하듯이 과학기술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안정된 진화 전략에 기울곤 한다. 몸은 최초이자 최후의 자원이 될 것이다.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인간의 신체는 그 신체를 파헤치고 분해하며 재구성하는 권력 장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말한다. 처벌 중심의 무대를 대신해서 나타난 것이 감옥이라는 획일적인 장치이고, 이후에는 사회화라는 총체적 장치를 통해서 권력의 대상이 된다. 푸코에 의하면 인간의 몸은 과격한 행위나 힘,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광학과 역학의 모든 법칙, 그리고 공간, 선, 막, 다발, 비율 등의 모든 작용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 강보라의 영상작품에 나타나는 SF적인 무대는 완벽하게 닫힌 세계와 관련된다. 권력이 일사분란하게 작동되는 일종의 전체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의 현실은 ‘권력의 특유한 기술’(미셀 푸코)에 의해 제조된다. 인류학자들은 몸은 항상 사회의 이미지로 취급되었음을 말한다. ‘신체통제는 사회통제의 표현이다’(메리 더글라스) 하지만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경계가 침해되는 지대에서 삶과 죽음, 매혹과 공포는 하나가 된다. 강보라의 작품에서 먼지로 대변되는 미립자는 몸이 안팎이 구별되는 완전한 형태가 아니라 ‘뫼비우스 띠처럼’(엘리자베스 그로츠) 가변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작품 [인천국제공항 제 1,2 여객 터미널]은 국가 간 안과 밖의 경계 지대라고 할 수 있는 공항에서 수집된 먼지들로 만든 작품이다. [인천광역시 중구 연안부두로 70](2019) 같이 작품 제목에 장소를 특정하여 인덱스 같은 면모를 강조한다. 작품은 여러 크기와 형태의 바탕으로 먼지가 채집된 장소의 운치를 살리기도 한다. 부드러운 산등성이, 거센 파도, 동글동글한 조약돌, 도시의 상징인 사각형 벽돌 같은 다양한 형태 안치된 동질이상(同質異像)의 것들이 나열된다. 이러한 일련의 것들은 끝이 없을 것이다. 



파주 작업실, 가변 설치, 먼지표본, 현미경, 소설, 2022



Dust(studio) #2, 20×20cm(each), Collagraph, 2017


우주가 유한하지만 인간이 고차원을 정복하지 못한 이상 무한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작품 속 다양한 양태의 입자들은 바로 거기에 있던 것이며, 이는 동시에 작가가 그곳에 있었음을 말한다. 그것들은 단지 상상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맥락은 달라지면서, 마치 사진처럼 확실하면서도 불확실한 것으로 변모한다. 작가는 장거리 여행 중에 열차의 시트 등에 남아 있는 타인의 흔적들을 주목한다. 하얀 시트를 더럽히는 먼지들은 이후 하얀 평면 위에 의미를 담는 언어로 재탄생한다. 강보라의 작품이 보여주는 대/소우주의 비전은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우주가 아니라, 모호한 흔적들의 연속이다.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 역시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가는 운명은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가 노트에서 ‘하늘 위 우리가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태양의 생존 주기는 약 100억년 정도’라고 하며,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원천인 태양이 ‘연료로서 자신의 수소 기체를 다 소모하면’ ‘우주 속의 한 점’이 된다고 말한다. 


‘먼지, 입자, 폐지는 어떤 본체의 부산물이자 조각이고 이것들은 결코 하찮지 않다’ 태양부터 폐지 한 조각까지 ‘우리 삶은 결국 이런 것들로 이뤄져 있다’는 자각이다. 자기 옷부터 시작해서 공항의 발 매트, 서울에서 뉴욕까지 여러 곳에서 먼지를 수집해 왔지만, 작가의 관찰에 의하면 장소에 따른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먼지는 원자처럼 보편적이며, 편재한다. 가상현실 속 먼지는 [디지털 고물상]에서 처치되어야 할 잉여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영상보다 먼저 소설로 서술되었으며, 주인공은 작가의 아바타인 ‘보라I-E’가 지구가 멸망하고 화성으로 이주한 이들이 유리 돔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닫힌 시스템 속, 저장 공간이 정해져 있는데, 어떤 데이터들은 버려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지구에 살던 선조들처럼 고물상을 운용한다는 설정이다. 쓸모없는 정보는 버려져야 새로운 저장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는 애초에 어떤 사회가 어떤 기술 내지 시스템의 선택하는 것처럼 권력의 문제이다. 몸의 경계처럼 유용성의 기준도 있는 것이다. 



Dust(studio) #13, 29.7×42cm(each), cyanotype prints, 2018



Dust-school, 10×10cm(each), Dust, Double-sided tape & paper on panel, 2016


강보라는 자신의 소설 [제 3 염색체]에서 밀폐된 돔에서 모두가 같은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화성을 가정한다. 이 소설에서 지구가 먼지로 뒤덮여 더 이상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자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화성행 티켓은 소수 기득권에게 한정되었다. 이주한 화성 이민자 3세대들이 염색체의 변이를 거쳐 다운증후군 환자 같은 외형을 가지게 된 것은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낯선 행성에서의 전염병에 살아남기 위해 시간에 쫒겨 가며 실행된 졸속의 실험은 많은 희생자를 낳는 등, 팬데믹 시기에 모두가 겪었던 상황과 비교된다.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급격하게 변하고 변한 것들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많은 혐오, 다툼도 존재했다...’는 대목은 위기가 계층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화성 이주 1세대들은 다운증후군 환자처럼 비슷하게 재현된 지구 탈주자이자 화성 정착자들이다. 이들은 염색체 변이나 사고의 여파도 있지만, 그전에 이미 인간은 대중으로서 동질화되었다. 


인간과 시스템이 경쟁하면서 자신의 위상이 더욱 불안정해질 때 비로소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가능해진다. 위험에 대한 대처를 통해 인간사회의 특성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온전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현을 요구한다. 하지만 수전 보르도가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에서 말했듯이, 재현은 동질화를 가져온다. 동질화된 이미지들은 정상화된다. 강보라의 작품 속 동질성을 위협하는 이질성은 재현을 불안정하게 한다. 먼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먼지로 그리는(또는 만드는) 이미지는 이미 재현이 아니다. 미시적 입자를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것은 그것을 완전히 제어하려는 권력에의 의지이다. 먼지는 다소간 중성적인 소재지만, 그것이 바이러스나 유전자 같은 또 다른 미소세계로 확장되면서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적 의미가 강해진다. 작품의 서사는 보다 사회적인 의미로 구체화 된다.


출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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