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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숙 / 실재와 기억의 원천인 자연

이선영

실재와 기억의 원천인 자연

 

이선영(미술평론가)

 


작품 50여 점이 걸린 손희숙 전의 주제는 자연이다. 이 오래된 주제를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표현할 것인가. 얼마 전 충북문화관 숲속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의 부제가 ‘봄, 피어나다’였고, 이번 21번째 개인전도 그 연속 상에 있다. 2013년 ‘내 마음속 풍경’ 전과 2020년 ‘나무 이야기’ 전부터 그랬듯이, 자연은 오랫동안 그녀의 주제였다. 이번 전시에 자연과 함께 키워드로 들어온 ‘기억’은 2008년 개인전의 부제이기도 하다. 기억은 인간적이지만, 손희숙의 작품에서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심리적인 차원은 자연이라는 대상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자연에 속하지만, 근대 이후 과대 평가된 인간 주체는 자연으로부터의 ‘자율성’을 선언했고, 예술 또한 자율화되면서 손희숙이 주로 그리는 추상화 또는 반(半) 추상화에서 자취를 감춘다. 인간과 관련된 전시로는 2010년 ‘인간의 굴레’ 전이었는데, 그 또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와 관련되었다. 미술사적으로도 자연이 망가지기 시작하자 자연을 찾게 된 예가 있다. 



Memory-nature 120x120cm acrylic on canvas 2024


굴뚝산업 중심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낭만주의 풍경화나 인상파를 필두로 한 모더니즘에서 자연의 신선함을 모델로 하는 그림이 시작됐다. 한편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 이후의 선택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자연은 두려움과 경외감의 대상이었다. 근대 이후 시간은 가속도를 붙이고, 압축 성장을 한 한국에서 변화는 더욱 빨랐다. 자연은 급속도로 멀어지고, 일상이 아닌 여가에서나 향유 할 수 있게 되었다. 손희숙에게 영감의 근원이 되는 자연은 이런 극적인 변모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지금의 자연도 있지만, 작가에게는 기억된 자연이 더 현실감 있는 이유이다. 예술에 대한 갈증으로 고뇌했지만, 푸릇한 젊음의 시기에 자연은 예술을 대신한 실재의 원천으로 작가의 몸에 차곡차곡 쌓여서 마르지 않는 영감이 되어주었다. 필자도 종종 가는 청주의 어떤 지역은 가도 가도 끝없는 아파트 숲이 있는데, 작가는 그곳이 논밭길이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예전에 시골이었던 대전 근처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작가에게 자연은 기억의 곳간을 가득 채운다. 작품 속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작업 이력에서 사진을 먼저 시작해서인지 재현에 연연하지 않는다. 무엇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그린다. 미술사적으로는 이러한 선택이 사실주의, 인상파에서 상징주의, 표현주의로의 변화를 야기했다. 단순한 시각적 인상을 넘어서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이 기억이다. 노랑, 빨강, 파랑으로 가득한 작품 [Memory-nature](2024)에는 원색의 순수함을 기억된 자연이 있다. 이 시리즈의 작품은 붓질이 그대로 드러난 드로잉같은 회화로, 변화하는 자연을 내포한다. 자연은 고정되어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생성과 소멸에 대한 상징이다. 선은 시간이고 이야기다. 하지만 단선적 연결은 아니다. 형태보다 붓질이 중시되는 그림 속 어떤 선들은 그리기보다는 지우기에 가깝다. 지워졌음에도 남아있는 것, 그것이 기억이다. 작품 [Memory-nature](2023)는 화면 상단부와 하단부는 색상이 대조된다. 손희숙의 작품에서 시간성은 드로잉같은 조형언어 뿐 아니라, 색감으로도 나타난다. 화면 상단부는 신록이 생성되는 시기를, 하단부는 꽃이 피거나 열매가 익거나 단풍이 지는 색감과 연동되는 것이다. 



Memory-nature 46x74cm acrylic on canvas 2023



Memory-nature 46x33cm acrylic on canvas 2023


계절로 치면 봄과 가을의 대조이다. 봄 부분의 필촉은 더욱 세밀하고 나머지 부분은 더 성글다. 밤/낮의 길이가 고정되어 있지 않듯, 계절의 변화는 빛과 어둠의 비율을 달리하면서 서서히 이루어진다. 작품 [Memory-nature](2023)는 피어나는 느낌의 꽃을 표현한다. 화면 위로 갈수록 폭발적인 느낌을 주는 형상은 땅속 깊이 박힌 뿌리만큼이나 빛을 향하는 식물의 특성이 반영된다. 만개하는 꽃의 환희는 묵직한 삶의 중력을 딛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춤동작처럼 나타난다. 불꽃놀이 같은 화려한 모습이지만, 꽃이 피고 지는 극적인 순간의 소리는 없다. 꽃만큼 화려할 수 있지만, 소리 없는 매체인 회화와 조응하는 부분이 아닐까. 관습적으로 의미와 직결된다고 믿어지는 재현적 형태와 거리를 두는 손희숙의 작품은 거의 추상에 가깝다. 재현적 대상이 부재하는 추상어법과 자연의 관계라는 미묘한 모순이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초기 추상화가들에게 자연과 추상은 대립 관계가 아니었다. 


칸딘스키의 전기를 쓴 안젤름 리들에 의하면, 추상화의 선구자 칸딘스키는 ‘추상적인 미술이 자연과의 연결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와는 반대로 이 연결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크고 더 강하다’고 말하면서, 가장 좋은 이름은 ‘실재적(real) 미술’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 미술은 ‘외부 세계와 나란히 하나의 미술의 세계, 정신적인 성격의 세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로지 미술에 의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요, 실재하는 세계’이다. 칸딘스키는 그의 저서 [점 선 면]에서 예술과 자연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추상예술은 자연형태 없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자연의 법칙 아래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추상과 사실성의 대립은 변증법적으로 종합된다. ‘추상화가들은 자극들을 미지의 자연이나 자의적 일부 자연에서가 아니라, 자연 전체로부터 얻으며, 이러한 표현들은 작가 내부에서 종합된다’(칸딘스키) 초기 추상화가들에게 추상은 조형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위해 지시대상을 괄호치는 경향이었을 뿐, 자연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Memory-nature 32x32cm oil on canvas 2023



Memory-nature 45x38cm oil on canvas 2024


모네가 그린 짚가리를 처음 본 칸딘스키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거꾸로 걸린 짚가리 이미지에 대해 칸딘스키는 ‘나는 처음으로 하나의 그림을 보았다’고 하였다. 자신의 거꾸로 된 회화를 보고 ‘갑자기 형용하기 어려운, 내적으로 타오르는 빛으로 가득 찬 어떤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신비로운 그림에서 형태들과 색채들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고백하였다. 알랭 봉팡은 [추상미술]에서 칸딘스키는 이러한 현상학적 체험을 통해, 추상을 세상에서 유래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유한 어떤 것의 출현, 여기에서는 한 작품의 출발을 이끄는 찬란함의 출현을 보았다고 지적한다. 이후 추상은 자율적인 언어를 향해 ‘진보’했지만, 손희숙의 작품은 지시대상인 자연과의 긴장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에서 자연은 다양성의 모델로 선호된다. 자연의 녹색은 매우 다양한 계열을 이룬다. 신록(新綠)부터 녹음(綠陰)에 이르는 녹색의 계열이 추상화법으로 펼쳐진다. 점처럼 수평으로 찍힌 선과 상승기류를 타는 좀 더 긴 선은 시간의 축에 따라 생성소멸하는 식물적 존재를 추상적으로 표현한다. 


마치 점이 자라 선이 되듯이, 점과 선이라는 조형언어는 특정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자체의 서사를 내포한다. 이러한 어법은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된다. 식물에게 1년은 평생과 비유된다. 여러 번 칠해진 두툼한 화면은 자연에 버금하는 실재감을 그림에서도 실현하고자 한다. 작가는 ‘나무의 초록은 휴식과 편안함’을 상징한다면서, 어릴 때 나무 밑에서 놀던 기억을 말한다. 꽃이나 열매, 풀 보다는 나무같이 실재감 있는 자연을 선호하는 작가에게 초록은 유년의 평화를 상징한다. 예술은 유년기의 행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독특한 기억의 방식이다. 식물을 기준으로 할 때, 성숙을 알리는 것은 붉은 색감이다. 작품 [Memory-nature](2024)에서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려 하는 것은 한 송이 꽃이나 열매일 것이다. 그것은 특정 꽃이나 열매가 아니라 농익은 식물의 단면이다. 회화는 시간의 흐름에서 어느 한 순간을 택할 수 밖에 없지만, 붓질을 살리는 방식으로 시간은 화면에 기록된다. 



Memory-nature 61x73cm acrylic on canvas 2024


중심부의 수술을 꽁꽁 싸매고 있었던 여러 겹의 꽃잎들은 자신의 순서가 되자 하나하나 펼쳐진다. 이후에는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접힐 것이다. 접기와 펼치기라는 주름 운동의 양태는 식물뿐 아니라 모든 유기체에 해당된다. 기억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작품 [Memory-nature](2024)는 마치 작가의 팔렛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지만 사전 드로잉 없이 진행되는 손희숙 그림은 화면에서 색이 섞여 만들어지기에 팔렛트와 유사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기억이지만 그것은 모년모일 어디서 본 무엇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그림보다 먼저 시작하고 발표하기도 했던 사진이라는 형식에서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작업실 한켠에는 사진 작업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다. 하지만 2016년 개인전 이후 사진 전시는 하지 않고 있다. 작가에게 사진은 회화만으로 할 수 있는 무엇에 더 집중하게 하는 그림자같은 역할로 남아있다. 구상에서 벗어나 직관적 느낌을 더 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도 자연에 집중했던 태도는 회화에도 그 흔적을 남긴다. 꼴라주의 경우 이물감을 줄 수 있어서 보다 신중하게 선택한다. 작업실 바닥에 있던 작업 중의 한 작품에는 나뭇가지가 꼴라주된 것이 있었는데, 사진보다는 차라리 실물이 회화와 잘 섞일 수 있는 것 같았다. 작가가 그림에 활용하곤 하는 골판지 박스, 신문지, 한지 같은 소재는 사진보다는 나무에 가까운 소재다. 작가는 붓질이 최대한 드러나는 즉흥적 어법으로 자연에 대한 기억을 호출한다. 작품 [Memory-nature](2024)는 초록빛 자연의 배경을 이룰 푸른 색감으로 가득하다. 초록보다는 푸른색이 지배적이며, 화면 아랫부분은 마치 짙푸른 새벽, 동터오는 하늘을 연상시키는 빛의 느낌이 남아있다. 한밤중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짙푸른 새벽하늘은 고뇌로 가득한 채 잠 못 이루는 관점일 수 있다. 매 순간 다시 시작하는 예술 놀이의 특성상 고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렘도 있다. 작가 말대로 ‘시작은 설렘’이다. 



Memory-nature 91x73cm acrylic on canvas 2024


어릴 때부터 꿈은 화가였지만, ‘공식적으로는’ 다소 늦게 시작했기에 더 열심히 그렸던 회화의 길이다.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밤낮없이’ 그려왔던 기억을 말한다. 자연에 대한 기억은 동시에 그것과 하나가 된 작업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작가가 채택한 추상 어법이 대상과 과정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다. 청주의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 벽과 바닥에 가득 놓여있었던 작품들은 방문객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계속 바라보면서 완성해나가는 작업 방식을 알려준다. 자연과 기억이라는 화두는 일필휘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계속 쌓이면서 변주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예 주제가 없다면 그림은 더 쉬울 수도 있다. 미술사에서는 모더니즘적 추상이 그러한 선택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것은 회화의 뿌리를 잘라내는 행위이다. 그렇게 붕 뜬 그림이 장식이나 관념으로 귀결되는 일은 흔하다, 실제로 손희숙의 작품 속 색감은 자연과 밀접하다. 가령 작품 속 핑크는 학교에 오가던 길에 가득 피어있었던 벗꽃이나 복사꽃에 대한 기억과 관련된다. 초록은 나무와 파랑은 물이나 하늘 같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대와도 관련이 있는 색이다. 


하지만 그러한 색들이 소위 ‘예쁘게’ 칠해진 것은 아니다. 손희숙의 작품 속 자연을 잘 익은 과일과 비교하자면, 그것은 먹음직스럽게 생산된 대상이 아니라, 터져버린 상태와 더 가깝다. 자연은 기억이라는 화두와 함께 시간성을 내장하게 하는데, 시간성은 멜랑콜리를 자아내는 요소다. 삶 속에서 무엇인가 변한다는 느낌은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많지 않은가. 설사 변화할 게 없어도 변화가 촉구되는 예술은 그러한 변화를 긍정으로 전환시킨 예라고 할 수 있다. 손희숙은 2023년 작가 노트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은 언제나 자연이다. 풍족하면서도 황량한 자연, 황홀하게 피어났다가도 비극적으로 저무는 자연은 색색들이, 장면마다 아름답다.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충만한 에너지를 마음 깊이 담아 놓았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숙성된 기억과 힘, 감정을 끌어내어 작품으로 표현한다. 자연의 형태와 색깔을 내가 감각하고 느끼는 바대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나는 항상 고뇌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한다’고 말한다. 


출전; 충북문화재단, 충북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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