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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낭만, 꽃 전 / 상징적 우주의 확장

이선영

상징적 우주의 확장

영원, 낭만, 꽃 전 (6.20—11.5, 전남도립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전남도립미술관의 기획전 ‘영원, 낭만, 꽃’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여행자들의 또 다른 순례지로 연결될 수 있는 전시다. 여러나라의 정원을 재현한 박람회처럼 이 전시도 꽃을 매개로 동서고금의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전시는 크게 ‘연화화생, 재생의 염원’(1장), ‘자유와 역동, 구체적 삶의 복귀’(2장), ‘시대를 넘어서’(3장), ‘미래로부터’(4장)으로 나뉘며, 벽 전체에 투사되는 미디어 작품은 방 하나가 통째로 할애됐다. 정원은 자연과 문명의 중간 지대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예술적이다. 정원은 풍경화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영국식 정원과 낭만주의, 프랑스식 정원과 고전주의 등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식물이 담기곤 하는 풍경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을 즈음에 생겼다. 작품 하나하나를 꽃으로 본다면, 미술관 또한 정원이다. 작품들은 저마다의 소우주를 이루며, 소우주는 단자(monad)처럼 다른 소우주와 연결된다. 전시장이라는 백화쟁명(百花爭鳴)의 장에서 시대와 장르의 파격적 조합이 이루어진다. 




자수 연꽃무늬 태사혜, 19세기 말~20세기 전반, 사직, 17x6x6cm, 서울공예박물관 소장(이하 모든 사진 출전은 전남도립미술관에 있음)



많은 작품들을 꽃이라는 코드로 구슬 서말처럼 꿰어낸 전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The Eternal Recurrence of the Same)처럼, 같음(동일성)은 동어반복이 아니라 다름(차이)을 추동한다. 꼭 필요한 맥락을 위해 여러 경로로 작품을 빌려왔고, 전남도립미술관 만의 소장품도 결정적인 부분에서 빛을 발하는, 공공 미술관만이 할 수 있는 역량이 펼쳐진 전시다. 컬렉션, 기증, 대여 등의 회로에 속하는 작품들은 미술관의 자산이자 전체 미술계의 자산이 되어 적재적소에서 의미화될 수 있다. 전시의 면면을 통해서 새삼 깨달은 바지만, 꽃은 보편적인 주제다. 자연이라는 익명적 존재의 얼굴 같은 꽃은 자연으로부터 자율성을 과신하는 인간의 한계를 지적한다. 보편성의 기반은 생물학에 있다. 꽃은 여분의, 장식적인 존재 같지만, 꽃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최초의 인간은 숲에서 열매를 채취하며 생존했고, 이후 농사를 통해 생산력의 혁명을 이뤄냈을 때도 중요했다. 꽃은 열매의 전조이자 씨앗의 약속이다. 생존이라는 생물학적 운명에서 꽃은 기능면으로도 아름다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동물과 달리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생존의 책략을 통해 향이나 색, 형태의 아름다움을 갖출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듯이 꽃은 짧은 절정을 가지지만, 그렇기에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예술적인 꽃은 더 오래 피어 있을 수 있다. ‘낭만’과 더불어 전시의 키워드에 포함된 ‘영원’이 의미하는 바다. 하지만 그조차도 상대적이다. 예술 또한 영원하지 않다. 다만 영원하고자 하는 욕망을 뛰어난 방식, 즉 형식으로 담을 따름이다. 이러한 욕망이 낭만을 낳았다. 고전주의가 주어진 한계에 충실하다면, 낭만주의는 잡을 수 없는 것, 즉 무한을 추구한다. 고전주의가 이성이나 오성을 중시한다면, 낭만주의는 그러한 기준과 측정 자체를 초월하는 숭고의 감성이 특징이다. 전시는 꽃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음에 있어, 예술이 자율화되기 이전의 전통까지 포괄한다. 장식예술이 그것이다. 순수라는 꽃봉오리만 있을 수 없듯이 예술의 뿌리는 집은 물론 사찰부터 궁전까지, 성(聖)과 속(俗) 영역에 편재한다. 




제니퍼 스타인캠프, 미래로부터, 2023, 단채널 영상, 가변설치,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백화쟁명의 장

이 전시는 아이의 꽃신부터 상여를 장식하는 꽃까지, 인간의 생에 전체에 걸쳐 꽃의 이미지가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객을 처음 맞는 것은 박물관 소장품들로, 현대미술관에서 만나는 고풍스러운 보물들은 꽃의 무게감을 더한다. 불화와 청자, 백자가 다소간 어둑한 조명 속에 자리한다. 비단에 담채로 섬세하게 그려진 [십일면천수관음보살도]와 [준제관음보살도](19세기)는 불교의 중요한 상징인 연꽃을 딛고 있는 보살상이다. [백자청화연화당초문수명병](19세기)은 파초잎과 연꽃잎 무늬는 보물로 각인되는 수많은 도자기를 뒤덮은 형태가 식물임을 알려준다. [청자음각연화문과형주자](12세기)는 참외 형태의 주전자를 받치는 연꽃잎 형태의 청자로, 그릇이라는 실용적인 물건과 합이 딱 맞는 자연의 무늬다. 활짝 피어난 꽃은 무엇인가를 가득 담을 수 있고, 이리저리 엉기는 특성을 가진 덩굴은 손잡이가 되는 식이다. 


연꽃잎이 많이 등장하는 첫 번째 방에서 기획자는 ‘재생의 염원’을 본다. 매해 다시 태어나는 식물은 인류에게 재생이라는 관념을 떠오르게 했으며, 이는 부활, 순환 등 동서를 아우르는 주요한 상징적 체계로 구축된다. 두 번째 방 또한 고풍스러운 작품들이 초입에 배치된다. 백 년이 넘는 아이의 신과 주머니 등에는 연꽃무늬가 섬세하게 수놓아져 있다. 그 시대의 여염집 안방에 놓였을 병풍에는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이 자리한다. 무(無)배경 속에서 단독으로 서 있기를 바라는 순수예술이 아니라, 삶의 맥락 속에 살아 숨 쉰 상징적 우주였다. 전통이 단절된 현대에서 전통은 새로움으로 다가오며, 예술적 역할을 수행한다. 프랑스의 왕립공방에서 제작된 태피스트리인 [앵무새들](1929)은 족자처럼 긴 화면 안에 새와 꽃이 함께 있곤 하는 동양화같은 분위기로, 동서양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준다. 세번째 방은 고풍스러운 유럽의 태피스트리가 회화와 공예의 밀접한 관계를 알려준다. 




샤를  브룅, 사계, 루이 14세 시기, 금실 직조, 318x463cm, 고블랭공방 제작, 모빌리에 나시오날 소장



돔 로베르, 수천개의 들꽃, 1962, 직조, 205x295cm, 오뷔송 아뜰리에, 모빌리에 나시오날 소장



가장 큰 작품은 루이 14세 시대의 궁정화가 샤를 르 브륑의 원작을 태피스트리로 짠 [사계(봄)]으로, 고전주의 시대의 화려한 궁을 장식한 유물이다. 그것은 지금 미술관 벽을 장식해도 될 만큼 보존상태가 우수하다. 신화적 인물을 둘러싼 꽃들은 알레고리로 가득하다. 꽃을 포함한 모든 도상들은 읽히는 텍스트처럼 짜여진다. 폴 세귄 베르토의 [여름](1912)은 유화로 그려진 원작과 태피스트리를 나란히 놓고 두 언어의 근접성을 가늠한다. 그림이 당시의 햇살과 바람까지 전할 듯 생생하다면, 쓰임과 관련된 공예는 보다 견고하다. 세잔을 필두로 하는 근대 화가들이 자연적 생생함과 조형적 견고함을 결합하고자 했을 때, 공예는 새로운 모델로 해석될 수 있었으며, 근대 화가들은 직접 공방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모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태피스트리는 원작자와 번역가의 사인이 나란히 들어가 있다. 번역가란 공방의 기술자들을 말한다. 지시 대상과 완전히 일치될 수 없는 인상주의 붓터치 하나하나를 직물로 되살린 작품은 미술이 추상화면서 생겨난 추세인, 시각성보다 강조된 촉각성을 일깨운다. 


얼마 전 기증받은 이건희 컬렉션 [화혼](1973)의 작가 천경자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바로 그 자리에 피어 있어야 할 확실한 이유를 가진다. 작가의 태생이나 작품 주제, 그리고 미술사적 가치까지, 아마도 이번 꽃 관련 기획에서 미술관 측 의중의 중심에 있었던 ‘꽃’이 아니었을까. 천경자의 작품에서 꽃은 대부분 작가로 추정되는 고혹적 인물과 함께 등장했다. 인물이 빠진, 꽃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은 자기애의 표현을 넘어서 여성적 상상계가 잘 드러난다. 올해 타계한 오승우의 작품 [요정과 연꽃](1967)은 나신의 여성이 요정으로 변신하여 꽃향기로 가득한 우주와 하나가 된다. 꽃의 화가 김종학이 대형 화폭에 담은 [숲](1986)은 작은 꽃들에 기념비적인 위상을 부여한다. 큰 화면 가득 세필로 그려진 김홍주의 ‘꽃’은 도상 아래에 미세한 물감 자국을 남긴다. 그것은 이전 시대의 꽃 이미지가 그러했듯이 예술이 상징적 우주의 절정임을 말한다. 한운성의 꽃은 사진과 공유할 수 있는 극사실주의 어법에 충실하다. 그는 거대한 스케일로 현실의 비현실적인 차원을 드러낸다. 




김상돈, 숲, 2022, 탄소강, 목재,  단청, 가변설치



박기원, 대화, 2022, 혼합재료, 가변크기



네번째 방은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미래로부터](2022)의 디지털 프로젝션으로, 높은 천고의 전시장 벽면 하나를 충만하게 채운다. 벽 저편의 깊숙한 우주로부터 온 듯한 꽃들은 단 채널 영상을 통해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에게 계속 쏟아지는 듯하다. 반복이지만 그 차이를 가늠할 수 없는 움직임은 무한히 재생하는 식물의 생태와 닮았다. 마지막 방은 젊은 작가들이 대거 포함된 동시대성에 방점이 찍혀진다. 남성이나 여성의 성기를 떠올리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작품은 성소수자이자 작가로서의 짧고 강렬한 생을 보여준다. 화병에 꽂힌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예술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을 연장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사회는 생식활동과 무관한 다양한 성적 유희를 도착이라고 규정하지만, 그의 작품은 도착과 독창이 교차되는 지점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 전시에는 메이플소프의 작품처럼 화병에 담긴 꽃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형식은 비슷해도 뉘앙스는 각기 다르다. 가령 손봉채의 [꽃들의 전쟁](2022)은 한 화병에 담긴 여러 국가의 국화를 통해 세계화 시대에 서로가 조여질 수밖에 없는 압박적 상황을 전쟁과 비교했다. 


한 송이 장미가 피고지는 과정을 연작 사진으로 담은 정희승의 작품 제목 [무제, 장미가 장미는 장미인 것](2016)은 독특하다. 언어적 유희가 내포된 그것은 반복하면서 변화하는 생명의 단면을 반영한다. 김상돈의 토템 시리즈는 빈 플라스틱 의자와 함께 배치된 축하 화환의 이미지로, 현대에도 토템의 전통은 면면히 살아있음을 암시한다. 사진 속 부재의 자리와 상여 형식을 참조한 설치작품 속 꽃은 인간의 삶 전체에 편재하는 꽃의 위상을 풍자한다. 구성연의 사탕 시리즈는 달콤하고도 끈적한 대중문화의 화려한 만개(滿開)를 표현한다. 송수민의 탈색된  꽃은 폭발 이미지에 가깝다. 하나의 세계가 또다시 꽃피우기 위해서 기존의 무엇은 소멸했을 것이다. 죽음은 삶의 조건이고 그 역도 진실이다. 공간 전체와 대화하는 박기원의 작품 [대화](2022)는 꽃이나 낙엽이 한꺼번에 지면서 길바닥에 가득 깔려있는 상황이 연상된다. 관객은 작은 금속 파편들을 밟으며 예술로 번역된 자연의 심미적 차원에 동참한다.  



출전; 아트인컬처 202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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