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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미 / 시각과 촉각의 상호작용

이선영

시각과 촉각의 상호작용

 

이선영(미술평론가)

  


오경미의 작품은 평평하고 중성적이어야 할 화면을 구기거나 접어서 사용한다. 변형된 화면은 무엇인가를 반영하는 투명한 역할을 상실한다. 전통과 현대의 관계를 고민하는 한국화에서 표현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실험의 결과다. 오경미의 경우, 여러 매체를 혼합적으로 사용하지만, 종이와 먹이라는 기본 재료는 유지한다. 재현에 대한 규범이 확립된 르네상스 이래로, 투명성은 거울이나 창문과도 비교된 화면에 대한 이상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모더니즘 이후 재현주의가 도전받으면서 화면의 촉각성은 그 비중을 늘려나간다. 모더니즘 초기만 해도 화면의 자율성과 세상을 보는 창이라는 모순이 화가의 조율을 거쳐 공존했지만, 미술의 자율화 경향과 더불어 화면은 점차 자기지시적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는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선언이기도 했지만, 대중과 멀어지는 분기점도 된다. 관객은 여전히 화면 속에서 현실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찾고, 그것을 작품의 의미와 동일시한다. 




Gesture, sound place 70×50㎝ mixed media 2022



Gesture, sound place 80×50㎝ mixed media 2022 



Gesture, sound place 80×50㎝ mixed media 2022



하지만 이러한 역할은 모더니즘 시기에 회화와 경쟁 매체였던 사진, 그리고 사진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영상이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열심히 보지만, 그것이 그림은 아니다. 설사 그것이 그림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실물보다는 전자매체의 매개를 통해서 더 많이 보는 실정이다. 실제 관람을 대신하여 정보로 소비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는 다시 그림을 의미의 덫에 빠지게 한다. 스펙터클의 시대가 회화의 시대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오경미의 최근작인 [Gesture, sound place](2022) 시리즈에서 울퉁불퉁한 종이에 추상적 형상이 더해지는 화면은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자체의 존재를 강조한다. 무의미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의미가 된다. 현대미술은 무엇인가를 지시함으로서 의미를 대신하는 이전의 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무엇을 그렸는가가 작품의 의미가 되는 것은 예술가들이 진짜 고민하는 형식의 문제를 간과한다. 형식은 내용을 결정할 만큼의 중요성을 가지면서 형식주의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내용에서 형식으로 방점이 이동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은 모든 이항 대립의 난점이다. 중요한 것은 양자의 공존과 상호작용, 즉 대화이다. 형식이 내용을 바꿀 가능성, 내용이 형식을 바꿀 가능성이 중요하다. 오경미의 작품에서 관객은 산수풍경같은 장면으로 시선이 빠져 가면서도 화면의 자율성에도 주목하게 된다. 물감이 만든 어두운 색상에 더해 구겨진 종이에서 만들어진 물리적인 그림자도 가세한다. 그림자는 거울이나 창문과 더불어 회화의 기원에 자리한다. 빅토르 스토이치타는 [그림자의 짧은 역사]에서 고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를 인용하면서, 회화가 선으로 윤곽을 그린 인간의 그림자에서 최초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회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체의 부재와 그 투영된 형상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저자는 그림자와 재현 이미지 둘 다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닮아있고, 또 그사람에게 속해 있음을 말한다. 그림자는 사진의 특징인 인덱스처럼 있음의 증거가 된다. 




HOLE IN THE ROAD 1 100호 mixed media 2021



HOLE IN THE ROAD 2 100호 mixed media 2021



HOLE IN THE ROAD 3 100호 mixed media 2021



그렇지만 오경미의 작품처럼 지시 대상이 없거나 불확실한 추상 화면에서 그림자는 어떤 위상을 가지는가. 화면을 이루는 종이 자체가 만들어내는 실제의 그림자는 추상회화의 자기지시적인 속성을 부연한다. 이리저리 굴곡진 평면과 그려진 형상은 한데 엉켜 존재한다. 푸른 색감은 흐르는 느낌도 있다. 오경미의 작품에서 주요한 조형 언어인 번짐 또한 흐름의 일종이다. 종이의 물성을 안고 가는 흐름이다. 제목에 포함되어 있듯, 작가의 행위의 궤적과도 일치한다.  또 다른 키워드인 ‘sound place’는 재현을 의미와 동일시하는 시각중심주의를 넘어서 소리를 끌어들인다. 현대미술사에서 초창기 추상화가들에게 소리나 음악의 역할을 지대했다. 오경미의 작품에서 번짐에 의한 형상은 소리를 연상시킨다. 다른 시리즈에서는 메아리와도 비교된다. 좋은 소리도 소음도 스며들기 마련이다. ‘space’가 아닌 ‘place’라는 키워드도 막연한 추상을 배제한다. 공간보다 장소는 보다 구체적이다. 혼합매체로 화면에 물성을 부여하면서도 물질 그자체로 환원되지 않는 것은 붓질에 의한 환영 때문이다. 


일종의 풍경, 산수화인데 작가는 산은 먹으로 그렸지만, 그 아래의 물은 푸른색 안료를 구겨진 화면 안에 담았다. 화면의 물리적 변형은 임의적이지 않다. 환영은 관객의 시선을 저 뒤로 가게 하지만, 물성은 앞으로 확 당긴다. 환영은 관념이지만, 물성은 보다 직접적이다. 현대는 무엇이든 가까이 당겨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화면의 물성을 강조하게 한다. 작가는 시각성과 촉각성으로 귀결되는, 다소간 구별되는 두 범주를 한 작품에 담고 상호작용을 꾀한다. 종이의 주름과 그리기를 종합한 작품은 작품 속 산과 물을 연상시키는 것들 또한 주름으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일렁이는 물살, 먼 옛날 부드러운 판이 힘을 받아 생긴 산은 일종의 주름이다. 들뢰즈의 [주름]이 말하듯이, 세계는 주름의 접힘과 펼침에 의해서 다양한 양태가 되는 하나이다. 하나와 여럿의 상호관계는 이항 대립보다 풍부하다. 이항 대립은 당면한 현실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보수적 관념이다. 




響향_ echo1 70×50㎝ mixed media 2022



響향_ echo3 90×50㎝ mixed media 2022



響향_ echo2 50×70㎝ mixed media 2022



반면 주름은 되기와 연결되며, 최종 목표는 불확정적이다. 오경미의 작품이 머금고 있는 물처럼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주름으로서의 형상들은 재현을 벗어나 생성하는 자연이다. 그림은 자연을 표현하기보다는 자연을 닮고자 한다. 이때 자연은 현재로 굳어진 대상이 아닌 과정이다. [HOLE IN THE ROAD](2021) 시리즈에서 번짐에 의한 외곽선이 만들어내는 모호한 형상은 한 송이 꽃부터 우주적 풍경까지 이른다. 선형적 사고에 난 구멍들은 변화와 도약에 열려있다. 오경미의 작품에서 번짐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대상이나 형태가 아니라 그것이 되어가는 과정, 또는 그것이 해체되는 과정을 떠올린다. 그것은 개인의 무의식이나 꿈처럼 불확정적이다. 예술은 쉽게 코드화 될 수 있는 의식의 층위가 아닌, 모호한 영역에 뿌리를 대고자 한다. 그것이 새로움의 원천은 아니다. 무의식은 근대성의 이데올로기와 달리, 새로움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된 것이다. 개인의 유년기를 넘어서 더 먼 시간대에 걸쳐 있다. 


무의식과 꿈은 사사롭다기 보다는 진정한 공통감각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집단 무의식’이라는 원형적 개념도 생겼을 것이다. 무의식을 끌어들이는 것은 정지된 매체인 회화에 잠재적 움직임을 부여하는 화가의 방식이다.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진 3개로 이루어진 시리즈라는 형식도 그렇다. 크기가 같은 작품들이 포함된 [響향_echo](2022) 시리즈도 마찬가지의 동감이 내재한다. 여기에서도 묵은 스며들면서 형상을 만들지만, 그 외의 혼합매체는 화면에 얹혀지면서 물성이 강조된다. 다른 작품에서 물을 표현한 푸른 안료는 마치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호수 같은 균열들이 산재한다. 무채색 바탕의 푸른색 균열은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무채색과 유채색은 위치와 크기를 달리하면서 밀고 당긴다. 시각적이 아닌 촉각적인 부분은 그리기가 아닌 만들기의 산물이다. 오경미의 작품은 형식적으로도 공(共)감각적이다. 회화가 빠져들기 쉬운 시각중심주의를 벗어나면, 작품을 풍요롭게 할 더 많은 타자들을 만날 수 있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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