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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숙 / 영원을 향한 소우주의 여정

이선영

영원을 향한 소우주의 여정


이선영(미술평론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처럼 가장 뛰어난 성능의 기구로 본 깊은 우주가 미시 세계 심지어는 일상에서도 발견된다면 경이로울 것이다. ‘행복의 파랑새’처럼 멀리서 찾았지만 이미 있었다, 인간의 창조적 능력은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재발견이라는 깨달음이다. 신현숙(Sook Shin)의 작품 소재인 민들레 홀씨가 그러하다. 작가는 그것을 그리기도 하고 투명 반구에 담아서 화면에 붙이기도 한다. 거의 잡초로 간주되는 이 존재는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퍼뜨리기 위해 최선의 진화적 전략을 택했다. 신현숙은 작품 [Eternité](2021)에서 홀씨를 마치 코로나 활동이 활발한 태양처럼 환하게 그렸다. 난자처럼도 보인다. 작가는 민들레 홀씨에서 우주를 본다. 소우주와 대우주의 조응이다. 작가는 민들레의 꽃말이 ‘죽음, 부활, 빛, 영원’임을 상기시키면서, 이는 ‘영원한 순환을 반복하는 우주를 투영하고 있으며, 시작이며 끝인 영원함(Eternity)의 상징이신 창조주를 투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1, 120x120 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 먹, 아크릴물감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3, 300x200 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 먹, 아크릴물감



detail, 아크릴원통안에 민들레홀씨


정사각형 안의 원이라는 배치는 만다라같이 중심집중적인 구조이며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명상적이라고 해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홀씨는 우주에서의 디아스포라를 상징한다. 작품 [Eternité](2023)는 여러 크기와 밀도의 민들레 홀씨의 이미지가 배치할 수 있도록 큰 공간에 그려졌다. 여러 재료로 층층이 만들어진 이 깊고 넓은 공간은 자체적으로 움직임을 내장한다.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홀씨를 통해 바람결의 도움을 받아 이동한다. 소우주-대우주가 상응하는 공간은 동적이다. 신현숙의 우주는 별자리로 붙박혀 있지 않다. 생명은 퍼지고 나이를 먹으며 사라지고 다시 반복된다. 우주 또한 그렇다. 깊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색감과 명암의 대조로 극화된다. 실제 요란한 소리를 동반하지는 않지만 마치 밤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같은 시각적 환희가 있다. 2023년 떼아트갤러리에서의 전시에는 둥근 캔버스 옆에 둥근 이미지가 있는 평면 작품을 걸었다. 


벽에 걸린 둥근 캔버스는 전시장 벽 자체도 작품의 공간으로 품는다. 화선지 반죽을 이용한 화면은 수많은 겹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실재감을 표현한다. [Eternité] 시리즈에는 이러한 바탕에 민들레 홀씨를 넣은 아크릴 원통을 붙여서 또 다른 차원으로 운동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원통은 겹겹의 층으로 만들어지고 그려진 화면으로 들어가는 중 일수도 나오는 중 일수도 있다. 완전함을 상징하는 원은 정적인 이미지를 벗는다. 화선지 반죽으로 두툼한 질감을 살린 바탕은 코스모스가 탄생하는 카오스이다. 풍부한 물성은 물질이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알려준다. 신현숙은 캔버스나 아크릴물감, 그리고 여러 오브제를 꼴라주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이력이 나타난다. 화선지 반죽은 한국화의 주재료인 한지의 또다른 형식이다. 물감이나 먹의 얼룩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과 자연에서 생명이 발생하고 퍼지는 과정을 중첩시킨다. 잠재력 가득한 바탕에서 둥근 알이 나오듯, 문자 또한 나온다.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3, 50x50 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 먹, 아크릴물감,아크릴원통안에 민들레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3, 50x50 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먹,색연필,아크릴물감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1, 100x100 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 먹, 아크릴물감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1, 100x100 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 먹, 아크릴물감



신현숙, Eternité , 2021,60X 60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 아크릴물감, 먹


소우주와 대우주가 중첩되는 공간에서 발견되는 A와 Ω는 자연이 읽을 수 있는 텍스트임을 암시한다. 성경에 ‘주 하느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는 문장이 있다. 우주에는 그리스 알파벳 마지막 문자 오메가를 닮은 성운도 존재한다. 신현숙의 작품에 깔린 사상인 대우주/소우주의 상응은 르네상스 시대에 완전한 형식을 갖춘다. 신인간동성동형론을 통해서 인간의 신의 지위까지 이르고.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되었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작업을 해온 신현숙은 자기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되어 보다 동양적인 사유에 기반한다. 우주의 원리가 인간이라는 소우주에도 있다는 관념은 동양에서도 낯설지 않다. 신현숙은 자신의 작품을 ‘Eternity ; macrocosme(대우주)-microcosme(소우주)’라는 요약하며, ‘동양적인 세계관에서 자아와 세계는 분리가 아닌 합일의 상태로 존재한다. 그것은 세계를 대면하는 나가 아니라 세계 속에 내재된 나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이며, 개개인이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인식체계 속에서 작은 세계는 큰 세계와 상호 조응하며 그 존재의 본질을 공유한다’고 말한다. 자연과 인간의 연결이라는 사유는 시골에서 자란 작가의 감성과도 맞닿아 있다. 신현숙은 1990년부터 자신의 화두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고 밝힌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은 순환을 이루는 관계’이고,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동양적 사고로서의 자각이다. 태초와 종말을 직선적으로 잇는 세계관과 대조되는 순환적 사유도 동양만의 것이 아니다. 신현숙의 작품을 동서를 아우르는 보다 보편적인 패러다임에 기초한다. 상징형식으로서 철학과 예술을 사유했던 에른스트 캇시러는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은 우주에 대하여 그리고 자아는 세계에 대하여 둘러싸이는 동시에 둘러싸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르네상스의 인간은 신과 무한한 우주에 대해 감싸면서 감싸이는 관계를 취한다.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1, 50x50 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 먹, 아크릴물감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1, 80x80 cm, 캔버스위에 화선지반죽, 먹, 아크릴물감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1, 60x48 cm,  화선지,먹,색연필, 아크릴물감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1, 65x45 cm,  화선지,먹, 색연필,아크릴물감



신현숙(Sook Shin),Eternité,2021, 61x 50cm, 화선지에 먹,색연필, 아크릴물감


캇시러는 또한 신의 책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오래된 사유를 분석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신비적 사유이다. 즉 모든 개별자들에게서 신의 흔적이 발견되며 신은 유한한 것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신현숙의 작품에 새겨진 문자는 신적 상형문자나 성스러운 기호로서 나타나지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해석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에 있다. 캇시러는 이 설명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그것은 새로운 형이상학을 성립시키기도 하고 엄밀한 자연과학을 성립시키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형이상학과 과학이 아닌 다른 길도 있다. 그것은 신현숙의 작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은 예술의 길이다. 자연이라는 ‘신의 책’은 무한한 겹을 가진 작품이 요구하는 바대로 한번이 아니라 거듭되는 해석을 요구한다. 신현숙의 작품에 편재하는 대우주-소우주 상응의 사상은 ‘자연의 책’을 읽는 방식이다. 


[Eternité](2021) 시리즈는 작은 씨앗들을 감싸는 전체로 나타난다. 둥근 원형을 막 벗어나고 있는 알맹이들은 여러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단계들을 거치는 듯하다. 좀 더 완결된 홀씨의 형태는 행성은 같은 면모를 가진다. 소우주이자 대우주는 끝없이 운동하며 상호전환된다. 100x100cm 크기의 캔버스로 맞춘 [Eternité](2021) 시리즈는 민들레 홀씨가 훅 퍼지는 듯한 모습이며,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선들 때문에 더욱 밝아 보인다. 민들레 홀씨는 거의 구형이지만 한 형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영원과 순간이 교차하는 지점부터 또다른 영원을 위해 다양한 양태로 흐트러지는 장면을 포착한다. 홀씨 형태는 유기체에 내재한 기하학적 질서를 해부를 비롯한 특별한 조치 없이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직관적이다. 작가는 홀씨가 생성되고 전파하는 과정들 관찰하면서 생명이나 우주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읽는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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