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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환 / 자연의 실재감과 조형 언어 사이로 난 길

이선영

자연의 실재감과 조형 언어 사이로 난 길

 

이선영(미술평론가)



첩첩산중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풍경에는 많은 산봉우리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오재환의 [산하] 시리즈에서 풍경 속 산을 나타내는 기표인 뾰족한 부분은 실제로 가능 한 것 보다 더 많이 겹쳐져 있는 듯하다. 비슷한 형태의 중첩은 동감을 준다. 작품 [산하 2011]에서의 산은 기념비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역사보다 더 긴 자연의 역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산과 계곡은 수없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 했을 것이다. 지구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 차이와 반복을 행해왔을 파도처럼 대지 또한 주름지기와 펼치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우리가 본 풍경은 그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보이는 순간을 단지 사실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있는 보이는 광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멈춘 이래, 회화의 모델로 간주되던 투명한 창이나 거울은 깨졌다. 원래 있던 금들의 간격이 더욱 커졌다. 




산하2011 한지위에혼합재료 65x90



산하2011 한지위에혼합재료 66x90



오재환은 석분을 비롯한 혼합재료를 사용했지만, 전통적 한국화의 기본인 한지와 먹이라는 기조를 유지한 화면은 수묵화처럼 모노톤이다. 하지만 많은 색을 품고 있는 먹의 빛은 자연만큼 풍부하다. ‘계절에서 느껴지는 색채는 최대한 절제하였다’는 그의 작품에서 색은 적은 부분이어도 화면에 활기를 부여한다. 통상적으로 하얀 부분은 여백이어야 하지만, 화면의 밝은 부분은 눈이 쌓였거나 운무에 감싸인 듯 한 모습이다. 즉 공간은 실제적으로나 잠재적으로 채워져 있다. 2015년의 작품에서는 산의 형태가 분명하다. 그는 2015년의 작가노트에서 ‘산을 오르다 보면 아래로 또는 위로 보이는 산과 산, 계곡과 계곡들의 중첩’ ‘선과 선의 만남, 면과 면의 만남으로 중첩된 이미지는 우리 산하의 실경이 주는 느낌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에서 완전히 추상적인 작품도 있다. 그는 시리즈 작업을 통해 반복하는 가운데 조금씩 차이를 둔다. 


듬성듬성 칠해진 붉은색 형상들은 산에서 듬성듬성 보이는 꽃이 아닐까. 하얗게 여백으로 남겨둔 부분인 강은 전경과 중경 사이에 놓인다. 산수화 속의 사람은 대개 작다. 인간은 자연에 속한 미소한 존재라는 관념이 투사된 것이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도 작품의 크기가 물리적으로 크지 않아도 오재환의 산하는 거시적 세계로 다가온다. 하얀 눈 또는 얼음은 햇빛을 반사하는 밝은 봉우리가 된다. 작품 [산하2013]에서 봉우리 사이의 깊은 공간은 심연이다. 평면이 쩍 갈라지는 듯한 형태는 배경과의 관계를 전도시킨다. 하얀 평면은 여백이자 형태가 된다. 작품 [산하2013]에서 검은 바탕에 성글게 얹힌 하얀 형상들에서 다른 작품에서와 같은 풍경은 사라지고 추상화된다. 최근 작품 [산하2022]는 마치 프랙탈 기하학처럼 큰 산 안에 또 다른 작은 산들 내재한다. 대지 위에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수평선과 대조를 이루며 기념비적인 위상을 가진다. 




산하2013 한지위에혼합재료 72x117



산하2013 한지위에혼합재료 112x145



하지만 색감과 명도 탓에 마치 거품이 일어 오르는 듯한 느낌도 있다. 그것들은 해일이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중력을 무시하고 부풀어 오른다. [산하]라는 소재와 주제는 풍경화이자 산수화 모두에 걸쳐있다. 오재환 또한 많은 동양화가 혹은 한국 화가처럼 전통과 현대의 문제를 고민한다. 미술은 전승된 것과 지금 막 발생하는 것 사이에 위치한다. 전승된 것은 어법이 확실하지만 막 발생하는 것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어법이 필요하다. 그렇게 언어는 변화한다. 서양화 부문의 작가들에 비해 동양화에서 그런 고민이 더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종이와 먹이라는 기본 형식에 내장된 내용 때문일 것이다. 어떤 내용이 형식을 요구한다면, 역방향도 마찬가지다. 잘못하면 형식주의가 될 수 있지만, 현대의 분업화는 형식을 통해 정체성을 묻는다.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매체를 통해 다른 분야가 하기 힘든 것은 무엇인가. 


종이와 먹에 기반한 한국화는 스밈과 번짐, 그 흔적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조형과 내용이 있다. 서구 미술의 기조는 리얼리즘이다. 재현주의는 현대철학과 미학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反)에서 정(正)에 해당된다. 추상화로의 변모는 현대의 특징으로 간주된다. 물론 추상도 개념의 재현에 머무는 한 재현주의의 변조에 불과하다. 한편 관념을 중시하는 동양은 기법에서 얼마나 사실적인가와 무관하게 단순한 재현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에 바탕하는 예술은 자연의 실재감을 포기할 수 없다. 자연과 조형 언어 사이에 내재한 긴장의 문제는 서양화도 마찬가지다. 서양 현대회화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세잔의 해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앨런 보네스는 [모던 유럽아트]에서 입체감을 주기 위한 모델링의 관행도 좋아하지 않았던 세잔은 색채 가감 방식, 즉 옅은 농도의 물감들을 캔버스에 직접 나란히 칠해 색채와 색조의 차이를 통해서 3차원적 감각을 내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산하2015 한지위에혼합재료 45x45 



산하2022 65×90cm 한지,석분,천,인도천연안료 2022



‘정렬과 불연속을 사용하여 형태와 색채를 반복’(앨런 보네스)함으로서, 세잔은 자연의 실재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회화의 자율성을 유지했다. 마이클 리비는 [조토에서 세잔까지]에서 세잔은 닮음을 잡아내기 보다는 각 형태와 패턴 간의 관계를 영속화 시키기 위해 모델을 끊임없이 정밀 조사하면서 결국 눈에 보인 사물을 전통적으로 바라보고 기록하는 방식을 벗어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모더니즘의 초창기만 하더라도 자연적 실재에 대한 감각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후 실재를 떼어내고 언어를 실재화하는 경향도 생겨났다. 하지만 자연적 실재의 뿌리를 제거한 예술은 그때그때 유행 따라 탁자 위에 놓여진 꽃병 속의 꽃에 불과했다. 이후에 빛바랜 조화(造花) 같은 예술은 유행하는 ‘현대적’ 이론의 포장 속에서 장식화되곤 했다. 재현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실재계로서의 자연은 삶 만큼이나 예술의 영원한 원천이 된다. 


오재환은 2015년 전시의 노트에서 겸재 정선의 실경을 높이 평가하면서, ‘사의적 표현에 사실적 표현을 가미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서, 최근 작업은 ‘실경을 추상화하고 추상화된 실경을 다시 구체화하는 시도’라고 말한다. 사실-추상-구체의 전환은 현대미술의 기본방향이기도 했다. 현대와 만나려는 작가의 방향성이다. 작가는 대상에 대한 재현과 매체 자율성을 동시에 고민한다. 오재환의 작품에서 대상은 자연적 실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산하’이다. 하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것이다. 그림은 또 다른 차원에 있다. 그림은 자연이 아니다. 자연의 외적 재현이 아니라 내적 과정의 표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재환의 풍경/산수는 산하로 대변되는 대상의 묵직함과 중력감을 덜어내면서도 완전한 추상으로 경도되지 않는다. 작가는 일필휘지처럼 한번의 선으로 모든 사유적 표현을 담아내지 않고, ‘형상에서의 선묘는 면적을 가지고 있는 선으로 표현하였다’고 밝힌다. 이러한 해법은 수묵산수화의 전통적 어법을 피해 가면서도 작품에 자연의 실재감을 주는 방식으로 생각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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