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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하 / 시간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이선영

시간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이선영(미술평론가)

 


프리뷰 전에 걸린 현수하의 두 작품은 자연과 문명을 시간의 축 위에 놓고 대조한다. 작품 [엷은 노란색부터 짙은 붉은색까지](2023)의 화면 전경을 가득 메우는 것은 왕성한 생명력을 보이는 버드나무들이다. 원경에는 자세히 봐야만 보이는 붉은색 버스가 지나간다. 과장된 원근법에 의해 거의 장난감 수준으로 축소됐다. 화면 크기에 비해 비중이 적은 버스들은 직선상의 길에서 여러 대가 줄지어 달리기에 기차처럼 보인다. 빠른 교통수단은 인간의 시간을 가속화 했던 대표적 상징이다. 처음에는 산업혁명과 관련된 생산수단을 공유했던 증기기관차였지만, 교통수단의 속도가 시공간을 압축하는 정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폴 비릴리오는 속도와 현대문명의 관계를 다루는 에세이에서, 속도가 너무 빠르면 역설적으로 정지감이 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계문명에 비판적인 근대의 낭만파들은 기차가 닿는 곳 모두가 획일화된다고 염려했다. 이후에 전개된 상황들은 그들의 염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기차는 자동차나 버스 등으로 보다 개별화 되었지만, 근대의 선형적 질서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동류에 속한다. 




엷은 노란색부터 짙은 붉은색까지, 까지  212.3x296.4cm,acrylic on paper,2023



교통수단의 노선은 순환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직선적 차원과 관련된다. 점에서 점으로 나아가는 선형적 시간은 역사주의를 관통하며, 이는 좌우익을 가리지 않는 근대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다. 발전이든 진보이든 근대적 시간은 직선적이다. 하지만 현수하는 그러한 대표적 상징을 상대화시킨다. 자동차들이 멀찍이 보이는 것만큼이나 자연은 앞으로 확 당겨진다. 식물로 대표되는 자연은 순환하며, 변화하는 문명에 비해 늘 그 자리를 지키는 듯 여겨진다. 물론 자연도 진화하지만, 그 시간의 주기는 인간 역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그래서 자연과 역사는 새로움을 기준으로 구별된다. 작가는 너무 빠른 현대의 시간에 지칠 때마다 시간이 멈춰진 듯한 그곳을 찾아가 위로받았다. 실제 장소이긴 하지만, 장소성을 모호하게 했고, 마치 편집된 장면인 듯 투명 사각형을 화면 안에 박아 놓았다. 그 멋진 나무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하는 의심도 해볼 만큼, 어긋나는 지점들이 보인다. 하지만 현수하가 구사하는 기법은 자연의 존재감에 방점을 찍어준다. 변함없이 서 있는 버드나무들은 작가가 쌓는 듯이 칠하는 기법과 어울리는 무수한 겹으로 이루어진다. 


장지에 아크릴 물감으로 여러 겹으로 칠해 그려진 나무들은 단지 보기 좋은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적 실재와 회화적 실재의 수렴을 향한다. 낭만적 제목의 작품 [Last fantasy](2021)는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소재를 얻은 것으로, 작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 장소다. 하지만 그곳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 있다면 1992년생인 작가의 어린 시절만큼이나 아직도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모호하다. 요즘의 지방은 아이들 자체가 드물 뿐 아니라, 앞당겨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그들만의 회로를 순환하며 경쟁력을 쌓고 있기에, 한가하게 놀이터에서 놀 시간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명품임을 선전해야 하므로 놀이터를 없앨 수는 없고 상품으로서의 구색을 맞춰야 한다. 놀이기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돌고 있다. ‘시간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라는 제목의 작가 노트처럼, 작품 속에 시간이라는 키워드가 직간접적으로 담겨있는 작업 맥락에서 보자면, 빠르게 도는 시계같이 다가온다. 



Last fantasy 169x149cm, acrylic on paper, 2021



근처의 모든 것을 갈아버릴 듯한 맹렬한 운동감을 가지는 놀이기구는 그 기괴한 열기를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다. 헬리콥터같은 속도감에 바닥의 흙먼지들이 다 올라 온 듯 뿌옇다. 그것은 사라져버린 시공간에 대한 작가의 혼란스러운 감정 또는 감상과 겹쳐진다. 선을 많이 겹치는 기법은 이 괴비행체같은 인공적 사물에 속도감을 부여한다. 시간의 흐름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은 저렇게 사라져 버렸다는 상실감이다. 원래 그 놀이기구의 색이 붉은색 계열일 수도 있지만, 프리뷰 전시에 나란히 걸린 버드나무 숲과 대조되어 퇴색의 기운이 역력하다. 푸른 어린 시절은 낙엽이 지듯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버드나무 숲 저편에서 문명의 시간을 상징하던 버스 색이 붉은 계통이어서 우연찮은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나란히 걸린 작품 [엷은 노란색부터 짙은 붉은색까지]는 잎이 물들어 가는 과정을 색감으로 은유한다. 낙엽이 다음 해의 새순을 약속하는 가역적인 시간관을 전제한다면, 인간의 시간은 불가역적이라는 점이 비극이다. 현수하는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가속화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업을 통해 중심을 잡으려 한다. 


출전; 2024 달천예술창작공간 입주작가 프리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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