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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에서 트랜스포머까지

고충환

김주영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에서 트랜스포머까지


물고기가 있었다. 물고기는 언제나 물 밖 세상이 궁금했다. 언젠가는 물 밖 세상을 구경하리라는 꿈을 키웠고, 마침내 그 꿈을 실행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자동차를 타는 대신, 스스로 자동차로 변신했다. 그렇게 변신한 자동차 물고기는 도시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평소 상상으로만 공 굴려왔던 물 밖 세상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포차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도 전해들을 수가 있었다. 때론 여느 사람들처럼 마천루 꼭대기에 앉아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다른 세상에 대한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가로등 위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크레인을 점프대 삼아 번지점프를 할 때면 짜릿한 비행을 맛보기도 했다. 



Work, 대리석, 2014


김주영은 근작에서 고요한 물속을 떠나 무섭지만 더 큰 세상을 알고 싶은, 호기심 많고 꿈 많은 물고기의 좌충우돌 도시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행복한 물고기다.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물고기는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왠지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맛보아야 했고, 가로등 위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크레인을 번지점프 삼아 뛰어내릴 때는 부력 대신 중력이 작용하는, 물속 같지 않은 낯선 풍경이 주는 이질감과 불안감을 감내해야 했다. 정리를 하자면, 물고기는 꿈이 있어서 행복했고, 그 꿈이 현실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불행했다. 그렇게 물고기는 행복했고 불행했다. 꿈 때문에 행복했고 불행했다. 애초에 꿈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모든 일은 바로 이처럼 꿈을 꾸면서 시작되었고, 꿈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꿈은 양면적이다.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하게 해주기 때문에 행복하고, 도피하고 싶은 현실 자체를 재확인시켜주기 때문에 불행하다. 꿈이 없다면 행복은 물론이거니와 불행할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꿈꾸기를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 여하튼 꿈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때론 승화며 비약을 감행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피와 승화 그리고 비약으로 하여금 어떻게 현실원칙의 일부가 되게 하느냐는 것, 말하자면 어떻게 현실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에 있다. 

여하튼, 그렇게 작가는 각박한 현대인에게 잠시잠깐의 쉼표를 선사하고 싶었고, 사실상의 의미를 상실한 아님 최소한 무의미해진 꿈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제도 Healing of Modern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온통 힐링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탓에 때론 그 말의 진정성이 의심스럽지만, 이 말은 동시에 그만큼 현대인에게 힐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바다가 가까운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이런 환경 탓에 진작부터 물고기에 친숙한 삶을 살았고, 이런 성장배경이 자연스레 물고기에다가 자기를 감정이입하게 했다. 누구든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할 요량으로 친근한 무엇인가에 기대기 마련이고, 작가의 경우에는 이야기를 매개하는 구실이며 계기로서 물고기가 도입된 경우로 보면 되겠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 속에서 물고기는 작가의 분신이 될 수가 있었다. 이처럼 물고기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의 분신임을 알고 나면, 비로소 모든 게 명확해지고, 물고기를 매개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의미도 분명해진다. 말하자면 물고기가 원래 살고 있던 물속세상은 작가가 실제로 나고 자란 친숙한 환경을 말하고, 물고기가 꿈꾸는 물 밖 세상은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한 또 다른 세상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 물고기는 꿈을 현실로 확인하면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이야기의 외형적인 틀로 치자면 물고기의 도시여행기이지만, 실제로는 그 이면에서 그 자체 두려움과 설렘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외계에 대한 작가의 성장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동물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화의 전통적인 이야기 방식을 따르고 있고, 소설로 치자면 성장소설의 전형적인 이야기 포맷을 추종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기에게 친숙한 지역을 떠나 낯설고 이질적인 지역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때론 어려움에 부닥치기도 하고 더러는 예기치 못한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진즉에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재확인하거나 자신이 아는 것과는 다른 차이를 발견하거나 하면서, 종래에는 또 다른 자기며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지난한 삶의 여정 이야기가 되겠다. 그렇게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비록 작가 개인사를 표현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는 이처럼 우화와 성장소설 그리고 통과의례의 전형적인 포맷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트랜스포머 곧 변신이다. 일차적으론 작가 자신이 물고기로 변신한다. 아님 같은 의미지만, 물고기가 작가를 대리한다. 그리고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서 물고기는 자동차를 타는 대신, 아예 그 자신 스스로 자동차로 변신한다. 무슨 말인가. 무엇이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가. 왜 변신인가. 변신의 원인은 무엇이며, 또한 작가의 조각에서 변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바로 욕망이다. 도시를 여행하고 싶다는 물고기의 욕망이 자동차로의 변신을 가능하게 해준다. 변신은 이처럼 욕망의 외화이며, 욕망의 물적 형식이다. 결여와 결핍이 욕망의 한 축이라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진즉에 실패와 좌절이 예상된 꿈과 이상이 욕망의 또 다른 축이다. 그리고 예술은 바로 이런 욕망의 우회적인 실현과, 그리고 현실이 되고 싶지만 결코 현실이 될 수는 없는 꿈을 꾸고 실현한다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기획이며 불구의 기획과 관련이 깊다. 그 과정에서 욕망을 매개로 사물이 인격체로,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인격체가 사물로 자유자재로 자리바꿈하는 차원을 사물인격체라고 하며, 그 밑바닥에는 페티시즘 곧 물신주의가 깔려있다. 욕망의 위상학이 사물의 위상학을 재편하는 것인데, 욕망이 탈주선을 따라 마구 확장되고 자유자재로 변주되는 것. 작가의 조각에서 이런 사물인격체는 쉽게 만나지는데, 일차적으론 작가 자신이 물고기로 변신하고, 여기에 자동차를 갖고 싶다는 물고기의 욕망이 자동차로 변신하고, 펜찌와 스패너 그리고 그라인더와 같은 공구와 자기와의 동일시(공구는 내 친구)가 공구로 변신하고, 질 좋은 스테레오 내지 컴포넌트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실제로는 조각을 하는 내내 작가와 함께 했었을) 오디오로 변신한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 속엔 물고기인간, 물고기공구, 물고기사물과 같은 사물인격체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럽다기보다는 순진무구하고 나이브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 이면에는 사물이 본래 속해져 있던 맥락으로부터 전혀 다른 맥락 속으로 재편되고 재구성될 때 예기치 못한 새로운 의미가 파생된다고 보는 초현실주의의 사물의 전치에 대한 공감이 깔려있고, 욕망의 위상학이 사물의 위상학을 결정한다는(욕망이 즉각 사물로 실현된다는, 아님 말을 만들자면 욕망이 사물을 낳는다는) 점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동심이 담겨있다. 


조각의 특수성과 관련해 작가의 조각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보통 조각은 하나의 통으로 제시되고, 유기적인 전체를 통해 말을 걸어온다. 매스와 양감, 질감과 물성이 모두 이런 유기적인 전체로서의 조각(말하자면 소위 모더니즘 패러다임을 구현한 조각)을 지지하는 개념들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작가의 조각은 그렇지가 않다. 하나의 통이며 유기적인 전체가 아닌, 부분과 부분과의 관계며 결합을 통해 이야기를 건다. 작가와 물고기, 물고기와 자동차, 물고기와 공구, 물고기와 오디오가 관계 맺고 결합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은 비록 작가가 물고기로 변신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고, 지금은 비록 물고기가 특정의 사물과 만나지는 사물인격체의 형태로 나타나고는 있지만 추후에 그 변신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비결정적이고 열려져 있는 경우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어떤 부분과 부분이 어떻게 관계 맺고 결합 되는지 여하에 따라서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지고, 나아가 이야기의 형식 곧 조각의 정의도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변신이라는 테마로 하여금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조각(말하자면 서사조각 같은)을 실현하는 구실로 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이야기조각이 전개되는 와중에서 만나지는 감성의 지점들, 말하자면 순진무구하고 나이브한 상상력이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애틋하고 정감을 자아내고 설핏 웃음을 머금게 한다. 앞으로 작가가 꾸게 될 또 다른 꿈이며 변신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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