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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화 / 진혼과 연민, 넋을 부르고 이름을 부르다

고충환

박미화 / 진혼과 연민, 넋을 부르고 이름을 부르다


나는 이름들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 이름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떨어지는가. 보통 사람이 죽으면 망자를 모신 지방을 태워 하늘로 날려 보내는데, 그걸 소지라고 한다. 망자의 신을 태워 하늘로 돌려보낸다는 뜻이고,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름하는 의식이다. 이처럼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런데 어떤 죽은 사람들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도로 자기가 살던 땅 위로 떨어지고, 산 자 곁으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죽은 후에조차 산 자 곁을 맴도는 그들은 누구인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다. 여기에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넋이, 신이 땅 위로 떨어지고 있고, 물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이름들은 그나마 발굴된 이름들이고, 역사 속엔 이보다 숱한 미처 발굴되지 못한 이름들이, 때론 이름마저 지워진 헤아릴 수 없는 이름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


그렇게 지워진 이름들 곁으로 창문이 많은 건축물 같기도 하고, 묘비들의 집 같기도 하고, 거대한 배 같기도 한 구조물이 있다. 그 구조물 위에는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거야 라는 글귀와 함께, 알 수 없는 문자 같기도 하고, 숫자 같기도 하고, 기호 같기도 한 부호들이 새겨져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시베리아 탄광촌을 배경으로 자신의 유년을 그린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자전적 흑백영화(1990)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구는 이후 암울한 세태를 대변하는 일종의 시대적 비망록 내지 묘비명이 되어주고 있다. 


이 구조물도 그렇지만, 근작에서 작가는 합판과 커트 칼을 이용해 조형을 했다. 그래서 조각이지만 환조보다는 저부조에 가깝고, 조각보다는 회화에 가깝다. 그런 만큼 커트 칼은 조각도보다는 붓을 대신한다. 작가는 커트 칼 하나로 이 모든 형태며 문구며 부호들을 아로새겼다. 모르긴 해도 제작과정에서 커트 칼 꽤나 분질러먹었을 것이며, 더러는 손도 다쳤을 것이다. 그렇게 지워진 이름들이며 암울한 시대를 아로새겼다. 그렇게 사실은 상처며 상처의식을 아로새겼다. 그리고 그렇게 지워진 이름들이며 암울한 시대를, 상처며 상처의식을 아로새기기에, 그리고 종래에는 그 상처를 작가 자신의 자의식으로 아로새겨 넣기에 합판과 커트 칼은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었고 환상의 궁합이었다. 상처를 더 상처답게 만들어주는 재료가 있고, 자의식의 강도를 더 절실하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따로 있는 법이다. 작가는 그 절실함으로 지워진 이름들을 부각했고, 지워진 메시지들을 복원했고, 알 수 없는 문자며 숫자며 기호들을 재생시켰다. 


작가의 그림 중엔 유독 피에타가 많다. 피에타의 전형처럼 여자가 누군가를 안고 있는데, 아기 같기도 하고, 인형 같기도 하고, 강아지 같기도 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은 것 같고, 최소한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있는 것 같다. 그런 경계 위의 존재들이 연민을 자아낸다. 이런 연민을 자아내는 경우로 치자면 선인장을 안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여기서 선인장을 안고 있는 것은 손 같기도 하고 발처럼도 보인다. 어느 경우이건 안을 수도 그렇다고 놓을 수도 없는 상처며 자의식을 표상한다. 삶이 꼭 그럴 것이다. 아프고 절실하고 가엽고 도망가고 싶은. 그런데 도망갈 수는 없는.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가지지가 않는. 


이 모든 정황들을 지모가 침묵 속에 지켜보고 있다. 아님 삶을 관장했듯이 죽음을 주재하고 있다. 수십 수백 아니 수억만 년은 됐음직한 고목이 물기(생기)를 다 내어주고, 손으로 만지면 파삭파삭 바스러지는 오래된 몸뚱어리로 어둠을 지키고 있다. 더 이상 고갈될 연민이 남아있지 않은 연민의 형해 같았다. 길어도 길어도 끝이 없는 연민의 화수분 같고, 연민의 화신 같고, 연민 자체 같았다. 그렇게 연민이 한편의 연극무대와도 같은 구천 위로 떠도는 발굴된 이름들이며 지워진 이름들을 낱낱이 불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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