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현대미술제에서 강정 대구현대미술제에로, 어떻게? 

어느 정도는 모든 지역이 그렇겠지만, 특히 대구는 한국현대미술사와 관련해 각별한 부분이 있다. 

소위 향토적 서정주의로 대변되는 이인성 이후 대구는 구상회화의 강세가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수년전부터는 이인성을 기리는 수상제도도 운영되고 있지만, 구상회화를 동시대적인 형상회화로 재생산해내려는 움직임들이 여전히 저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자부심 혹은 자존심의 형태로만 남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인가. 적어도 분명한 것은 대구가 한때 구상강세였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추상미술과 관련해서,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구는 일본현대미술 특히 모노하 작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수화랑(이후 서울로 옮겨 인공화랑으로 재개관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교류에 박서보, 이강소, 하종현, 윤형근, 이우환 같은 현재 단색화로 알려진 화가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박현기와 최병소 같은 작가들도 당시 비디오아트와 개념미술을 매개로 한 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 단색화로 알려진 이들 일군의 작가들이 새로이 재평가되고 있지만(사실을 말하자면 화랑을 중심으로 그 상품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단색화는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 문제와 맞물려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움직임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대해선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서울보다 먼저 대구가 이런 교류전시를 통해 단색화를 공론화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한 계기며 채널 역할을 했다고도 본다. 그렇게 대구는 한국현대미술사의 두 축이랄 수 있는 구상 혹은 형상미술과 추상미술, 양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구현대미술제가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대구현대미술제는 연이어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현대미술제가 신설되는 계기며 기폭제가 되었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총 5회 차에 걸쳐 전시가 이루어졌고, 그 중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간은 강정의 낙동강 변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실험미술 이벤트가 열렸다. 당시 화랑 가를 중심으로 한 실내전시와 상호 보충하는 형식의 전시로 보면 되겠다. 구상 혹은 형상회화와 단색화로 대변되는 추상미술과 함께 개념미술과 실험미술이 더해져서 대구를 명실상부한 한국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든 실질적인 계기, 혹은 그 계기를 완성한 경우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까지가 강정 대구현대미술제의 간략한 배경에 해당한다.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대구지역화단이 갖는 미술사적 의의와, 특히 대구현대미술제가 갖는 강정의 지역적 특수성(요새말로 치자면 장소특정성?)과의 연계성을 배경으로 아우른다. 한편으로 대구현대미술제를 계승하면서, 여기에 강정이 갖는 지역적 특수성 문제를 같이 풀어내야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리던 당시와는 주변 환경이며 여건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정은 낙동강변이라는 자연환경을 그 배경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유사한 전국적인 규모의 행사들을 보면 부산의 바다미술제, 울산의 태화강 프로젝트, 수원 화성의 매홀국제환경미술제, 공주의 금강국제자연미술비엔날레, 경기와 강원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DMZ 프로젝트, 양평을 중심으로 한 남양주 권역의 바깥미술회 정도가 있다. 대개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오픈에어를 배경으로 한 자연미술을 표방하는 경우들이 많고, 여기에 더러 정치적인 아이템을 콘셉트로 취한 경우와, 사실상 조각공원의 변형된 형태가 부가된다. 특히 자연미술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선두주자를 중심으로(특히 금강의 경우?) 적지 않은 이력을 축적해오면서 작가 인프라도 상당할 정도로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행사 간 국외 작가의 면면들에 대한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어서 특히 후발주자의 경우에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적어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은 없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전시행사를 성사시킬 수 있게 된 점은 뚜렷한 성과라고 생각된다. 향후 국제적인 규모로 전시행사를 키워나갈 방안을 현재 모색하고 있는 본 행사가 주목해볼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런 유사행사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 공과는 무엇인가. 특히 금강의 경우, 오랜 이력이 만든 인프라와 네트워크 구축으로 인해 작가 간 연대와 친밀감이 피부로까지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거의 유례가 없는, 혹은 거의 유일한 경우라고도 생각된다). 작가 스스로 최대치의 역량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계기 치고 이만한 것(연대에 따른 상호간의 신뢰구축)도 없을 것이다. 시의적절한 콘셉트를 정하고, 그 콘셉트에 걸 맞는 작가를 초대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행사로 이끄는 관건이며, 전문성과 신뢰감이야말로 그 관건을 실제로 성사시키는 핵심이다. 

여기에 행사들이 저마다 지향하는 방향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접점을 예시해보면 대략 자연에서 소재를 취하고 그렇게 취해진 자연으로 조형하고 재차 자연으로 되돌려놓은 식의 자연미술, 자연환경 자체를 조형적 콘셉트로 접근하고 이해한(이를테면 거대한 캔버스?) 대지미술, 자연환경을 공간적 배경으로 인식한 설치미술, 자연환경을 인간과의 관계를 중재하는 매개(인식론적 매개물)로 보는 개념미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조각공원의 변형된 경우, 그리고 여기에 최근의 사례로서 커뮤니티 혹은 건축적인 환경과 자연환경이 매개된 경우 정도로 정리될 수가 있겠다. 그리고 여기에 본 행사는 대구현대미술제를 계승하는 것인 만큼 현대미술과 실험미술에 부합할 만한 아이템이며 형식을 찾아내는 것이 더해질 수가 있겠다. 

이 중 어느 한쪽으로 콘셉트를 집중하는 식의 전문화를 강화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이 모두가 어느 정도 물려 있는 접점을 찾아내고 반영하는 것이 가능하겠다. 개인적으론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 좀 더 유기적인 만큼 유연한 접근이며 운신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오픈 콘셉트라는 예술의 개념이며 실천논리에도 부합하는 면이 있고, 여기에 통섭이나 융합과 같은 트렌드에도 부응하는 면이 있다. 행사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세부적으로 그동안 제안된 주제들을 보자. 대략 강변 랩소디(2012), 강정 가다(2013, 장정일의 시에서 착안한), 강정에서 물, 빛(2014), 그리고 강정,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2015, 레비스트로스의 회고록에서 착안한)와 같은 주제들이다. 하나같이 강정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몇 가지 의미 있는 사안들이 논의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강정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강조함으로써 주체를 분명히 하고 정체성을 강조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운신의 폭을 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한정된 폭은 향후 국제적인 행사를 지향하는 방향성과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강정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대한 각별한 이해 없이 이 말을 사용할 경우에, 혹은 강정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으로 전시가 채워질 때 자칫 강정이라는 타이틀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그저 강정이라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임을 강조하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강정을 굳이 강조해야 하는 내적필연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에도 이 타이틀을 계속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전시 타이틀이 전시내용을 어느 정도 함축하고 있는 것임을 생각하면, 이 주제들은 좀 열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아가 심하게는 전시내용을 전혀 암시해주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그런 의구심이 든다. 열려있거나 추상적이거나 하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행사와 관련해서 제안된 주제는 레비스트로스의 회고록에서 차용해온 것이라 한다. 주제로 제안된,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는 관찰과 사유 혹은 관찰에 의한 사유증명을 중시했던 철학자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순수사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유, 삶의 실제와 괴리감(거리감?)을 어느 정도는 당연시하는 사유방식에 대한 심각한 재고를 불러온, 의미 있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이 주제를 통해 과거와 현재, 자연과 도시, 그리고 예술과 삶이 그 경계너머로 매개되기를 바라는 주제의식을 담았다고 한다. 

아마도 어느 정도는 과거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을 현재 위로 되불러오고 싶고 이식시키고 싶은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사유와 관찰 혹은 사유와 실천 혹은 추상과 실재가 상호작용하는, 가까이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 상호간에 네트워크 되는, 어쩜 인터넷 시대환경에 걸 맞는, 그리고 보기에 따라선 노마디즘의 실천논리(여기서 노마드는 당연히 사유 속에서 사유를 통해서 일어나는 일일 것)에도 부합하는, 그런 의미 있는 주제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 열려 있다는 생각, 혹은 좀 일반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제로서보다는 사태를 대하는 주체의 태도와 입장을 강조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전시를 통해 증명 가능한 주제, 이를테면 이질적인 것들 상호간에 네트워크 되는, 인터넷 환경을 재확인시켜주는, 노마드의 실천논리를 예시해주는 식의 주제의식을 사후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분법을 넘어서는 혹은 보다 적극적으론 타파하는, 이중성보다는 다중성, 일관성보다는 난맥상, 그리고 그렇게 복잡해 보이는 것이 그 이면에 숨겨놓고 있는 단순한 것(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을 예시해주는, 그런 경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전시공간이며 전시환경과 같은 전시방법론을 보자. 전시는 강정고령보와 강변 일대, 디아크(4대강문화관, 물과 관련되고, 정치 환경 이슈와 맞물린) 내 외부 공간과 종합관리사무소 전시관(아마도 임시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동안 전시 내용을 보면, 대개는 디아크 외부공원이 중심이고, 공간 활용도가 저조한 경우로 치자면 강정고령보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김수자의 영상 프로젝트를 보 위에 설치 상영한 것은 성공적인 경우로 보이고, 차후에 보를 전시공간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전시행사가 강변에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물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고, 따라서 수상조각과 빛을 매질로 한 조형(라이트아트?)이 장소특정성을 부각하게 해주는 구실이며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아마도 2014년 전시주제가 이런 물과 빛의 물성이며 상호작용성에 착안한 것일 터). 

그리고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대구현대미술제를 계승 발전시킨 것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면 전시(사실은 전시에 반영된 정신)를 현재에 계승 발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과거 미술제의 유산도 같이 물려받아야 한다. 바로 아카이브 구축과 형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행사였던 만큼 기록으로 보존할 가치가 크고, 개념미술이며 실험미술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기록물의 형태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 이 자료들을 일괄 정리 보존하는 일이 요청되며, 중장기적으로는 이 자료들을 근거로 또 다른 형태의 전시가 이루어지는, 말하자면 아카이브가 축적되고 그렇게 축적된 아카이브가 전시로 연결되는, 그런 선순환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모르긴 해도 본 행사 자체가 전시행사 못지않게 이러저런 아카이브와 무관하지가 않은 경우라고 봐야 할 것이다. 형식적으로 자연미술, 설치미술, 영상미술, 개념미술, 그리고 퍼포먼스를 지향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기 위해선 디아크 내부의 한 공간이 됐건, 아니면 대구현대미술관 내부의 한 공간이 됐건, 아니면 공간개념이 아닌 업무차원에서라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마도 미래의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연구하고 전시로까지 연계할 수 있는 전용관(하다못해 상설 홍보관이라도)이 주어져야 한다. 자료도 자료지만, 개념미술 이후 아카이브 자체가 전시방법론으로 제안되고 있는, 그래서 아카이브와 전시가 따로 구분되지가 않는 현대미술의 경향 내지 추세와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유관기관과의 협의를 끌어내는 일도 가능할 것이고, 예상되는 결과가 생산적이기만 하다면 주최를 분담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