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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재/ 풍경, 욕망의 도가니와 밤의 알레고리 속으로

고충환


도시풍경.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작가는 보통사람처럼 살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작가로 살기로 했다. 그렇게 작심하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도시가 욕망의 아이콘처럼 보였다. 욕망을 놓으니 욕망이 보였다. 욕망은 허구다. 그래서 신기루 같은 풍경을 그렸다. 애매한, 지워진, 흐릿한, 공허한 풍경을 그렸다. 욕망은 결여다. 그 결여를 증언이라도 하듯 덧칠된 욕망을 걷어낸 풍경이다. 풍경의 맨살이다. 그렇게 각성된 풍경을 그렸고, 신기루 같은 풍경을 그렸고, 맨살의 풍경을 그렸다. 사건풍경. 그리고 2011년 일본 대지진이 터졌다. 혹자는 자연재해라고 했고 어떤 이는 인재라고 했다. 여기서 작가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과 현실원칙이, 자연개발과 자연의 복수가, 이상향의 풍경과 현실풍경이 충돌하는 순간을 본다. 그리고 그렇게 지진과 추락, 전복과 재해현장을 그렸다. 폐차장을 그리고 도시의 외곽에 핀 꽃을 그렸다. 열섬현상을 그리고 DMZ를 그렸다. 빼곡한 건물에 둘러싸여 열이 빠져나가지 못한 채 정체되는 걸 열섬현상이라고 한다. 그렇게 작가는 벌겋게 달아오른 도시를 그렸고, 물이 오른 욕망의 도시를 그렸고,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한 도시를 그렸다. 그리고 군사훈련을 아예 DMZ 안에 들여놓아 긴장상황이며 대치국면을 강조한다. 불안을 생산하는 도시며 불안을 조장하는 정치적 현실을 극화해 보여준다. 


인공풍경. 플라톤의 동굴우화에 보면 동굴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동굴 안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동굴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실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가 실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림자는 사실은 동굴 밖에 있는 나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동굴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림자를 실재라고 착각하고, 동굴 밖에 있는 사람만이 실재와 그림자의 차이를 안다(그런데 감각적 현실을 사는 사람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혈거인들이다). 인식론적 문제를 건드린 것이지만, 여기서 작가는 결국 사람들의 생각이 세상을 만든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자기착각에 빠진 사람들의 무분별한 욕망이 세상을 만들고 축조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회 정치 경제 역사가 모두 그렇게 서고 번성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는 착각의 편린들이, 욕망의 파편들이 우연하고 무분별하게 축조된 세상을 그리고 인공풍경을 그린다. 


김춘재, 밤의 동물들, 2016, oil on canvas, 104x194cm

신강산무진도. 그리고 작가는 조선후기 화가 이인문이 그린 강산무진도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린다. 원본대로라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노래한 그림이지만,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부조화로,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으로 마구 파헤쳐진 살풍경으로 이를 대체해 그린다. 실제로는 송도국제도시의 개발현장을 소재로 한 것이지만, 이런 살풍경으로 치자면 도처에 있는 일상적 풍경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런 일상적인 살풍경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 것인가. 알다시피 경제제일원칙과 효율성 극대화의 법칙이 자본주의의 모토다. 그 원칙이며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도태된다(다윈주의의 자본주의 버전?). 이런 자본주의 물신의 지상명령 앞에 자연은 한갓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스스로 존재할 이유(그 자체가 목적인)가 상실되고 왜곡되고 박탈된 것이다. 이런 무분별한 욕망이, 이미 일상이 돼버린 재개발과 재건축 현장이, 천민자본주의와 도구화된 자연이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한다면, 작가가 대체해 그린 살풍경이야말로 현실을 반영한, 시대정신 혹은 시대감정을 반영한 또 다른 진경산수로 보아야 한다. 그 자체 진경산수의 현대판 버전으로 봐야 하고, 작가의 원전에 대한 재해석(재생)도 이런 의미로, 이를테면 현실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며 재현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김춘재, 어두운 길, 2015, oil on canvas, 72.5x116.5cm


작가의 이 그림은 길다. 전통적인 두루마리 그림처럼, 아니면 현대적으론 파노라마 사진처럼 옆으로 길게 펼쳐진 풍경이다. 이처럼 옆으로 긴 그림은 단순한 시각정보로서보다는 텍스트처럼 책처럼 읽히는 독해과정을 작가가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말해준다. 그래서 자연스레 서사가 강한, 메시지가 강한 그림임을 알 수가 있겠다. 그 내용으로는 무분별한 난개발현장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무분별한 난개발은 사실은 무분별한 인간의 욕망에 해당한다. 옆으로 긴 그림은 결국 무분별한 난개발이 덧붙여진 것이며, 무분별한 인간의 욕망이 확대재생산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풍경은 밑도 끝도 없이 연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이 그림은 그 자체 완결된 결정판이 아니라,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끝이 없는 것처럼 끝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끝이 없는 그림이 친근하고 낯설다. 무분별한 난개발이 어느새 일상이 돼버린 탓에 친근하고, 그럼에도 난개발이 친근한 풍경을 낯선 풍경으로 바꿔놓고 있어서 낯설다. 그렇게 난개발 현장에는 살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차라리 엉뚱하게) 광대가 등장하고 무희가 등장하고 로보캅이 등장한다. 초현실인가? 비현실인가? 아마도 불합리한 풍경이며 미증유의 풍경을 현실로 인정해야 하는 것에서 오는 당혹감을 표상할 것이다. 

밤의 알레고리. 작가가 입주해있는 인천아트플랫폼 인근에는 공원이 있어서 작가도 곧잘 산책을 나가곤 한다. 그 공원에는 특이하게도 새와 토끼 얼룩말과 사슴 등 각종 동물조각을 조성해 인공 숲과 어우러지게 했는데, 작가는 근작에서 이 공원의 밤 풍경을 그렸다. 낮에 보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작가의 그림에서처럼 밤에 현란한 원색조명이 비추는 인공불빛 아래에서 보면 낮에 볼 때와는 판이해진다. 인공불빛과 어둠 속에 감싸인 공원을 걷다보면 설핏설핏 드러나 보이는 동물조각들이 살아있는 동물들처럼 보인다. 그래서 실제로 밤에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말하자면 그 이질감이며 생경한 경험이 주는 미학적으로 주목할 만한 어떤 지점을 탐색한 경우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일부인 비현실 혹은 초현실에 대한, 현실 자체가 이미 비현실 혹은 초현실인 현실에 대한 당혹스러움(오히려 자연스러움?)을 그린 것일 터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며 지워진 경계에 대한, 그 비식별역에 대한 감각적 논평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하기 전에 화성에 소재한 한 외진 곳에 작업실이 있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별세계에 와 있는 듯 외진 곳이었고, 칠흑 같은 밤과 어둠과 적막강산이 도처에서 현실감을 몰아내는, 그런 곳이었다. 작가는 주로 밤에 작업실을 찾곤 했는데, 근작에서 그 작업실 가는 길을 그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가로등이 켜진, 그리고 이따금씩 달빛이 은근한, 마치 국부조명등이 켜진 무대세트와도 같은 길을 그렸다. 그 길의 주제는 불안이다. 길도 불안하고 밤도 불안하고 어둠도 불안하고 빛마저도 불안하다. 따뜻하고 안온하게 감싸는 우호적인 빛이 아니라, 뭔가 불안을 조성하는 심리적으로 불편한 빛이다. 그 빛이 비추는 길이, 심지어 빛 밖으로 벗어나면 보이지도 않는 길이 마치 불안을 상연하는 연극무대 같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정한 삶의 알레고리 같다. 

그렇게 작가는 도시풍경을 그렸고, 사건풍경을 그렸고, 인공풍경을 그렸고, 살풍경을 그렸다. 친근하고 낯선(캐니와 언캐니가 하나의 층위로 포개져 있는) 이중적 풍경을 그렸고, 현실과 비현실이 어긋난 풍경을 그렸고, 자본주의의 판타지(환상산업)가 현실을 대체하는 소외된 풍경을 그렸고, 도무지 사람이 살만하지 않은 난풍경(디스토피아)을 그렸고,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것이 꼭 삶의 메타포 같은 풍경을 그렸다. 그리고 어둠이 심연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불모의 풍경을 그렸다. 이 일련의 풍경들 중에서 근작에서의 밤 풍경이 작가의 그림에서 전기를 마련해줄 것 같다. 지금까지 자기외부를 향하던 작가의 시선이 마침내 내부를, 내면을, 심연을, 암흑을, 침묵을, 혼돈을, 어둠 속 우주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관조하던 그리기(인식론)에서 겪는 그리기(존재론)로 옮아갔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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