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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일상을 해체하고 재구조화한, 일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고충환

전통적으로 수묵은 관념에 얽매여 있었다. 산수를 그릴 때도 그랬고 소위 수묵화운동에서처럼 추상으로 표현된 먹 고유의 물성을 강조할 때도 그랬다. 이처럼 관념에 얽매인 수묵을 지금여기의 현실로 끌어내려 현재를 표현하고 일상을 표현한 것에 유근택 회화의 새로움이 있다. 그 새로움은 일상성 담론을 선취하는 것이었고 그 담론에 걸 맞는 형식을 예시하고 견인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보편화된 것이지만, 돌이켜보면 유근택의 회화가 그 보편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근택의 회화는 일상을 우주며 세계 그리고 존재가 수렴되고 확산되는 장으로 보고, 온통 그리고 시종 그 일상을 표현하는 것에 바쳐졌다. 이렇듯 일상에의 오롯한 자기투사는 거대담론에서 미시서사로 그 무게축이 옮아가고 있는 당대 담론의 생리 혹은 생태학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문제는 작가에게 일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말하자면 작가에게 일상은 그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중층화된 현실, 현재와 상상력이 상호 간섭하는 현실, 현실과 비현실이 상호 연동되고 내포적인 현실, 현재의 틈새를 드러내는 현실처럼 다중적이고 다의적인, 유기적이고 가변적인 상호간 이질적인 지층들이 하나의 층위로 포개진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작가의 회화는 그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조화해 새삼 일상을 되돌아보게 했고, 다른 눈으로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작가가 보기에 일상은 이처럼 평면이 아니고 일차원이 아니었다. 시공간도 그런데, 시간도 얽혀있고 공간도 얽혀있다. 일상에는 존재론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사건과 장면과 풍경이 낱낱이 등록된다. 그렇게 등록된 일상은 이처럼 얽혀있는 시간과 공간이 매개되면서 다른 풍경, 다른 장면, 다른 사건으로 열린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풍경 위에 같으면서 다른 풍경(하나의 풍경을 보는 다른 관점)이 포개지고, 하나의 사건 위에 같으면서 다른 사건(하나의 사건을 보는 다른 해석)이 중첩된다. 


유근택의 회화는 그렇게 포개지고 중첩된 같으면서 다른 풍경과 장면과 사건의 결을 드러내고 층간을 드러내고 사이를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여하한 경우에도 일상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 때로 일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가거나 너무 가까이 가서 마치 사각지대가 그런 것처럼 그 실체가 잘 안 보이거나 잘 안 잡힐 수는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때에 마저도 일상은 확장되고 심화되는 경우란 점에서 여전히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려진다. 유근택의 그림은 말하자면 일상의 겹구조를 벗겨내는 것이고, 때론 그 숨겨진 의미를 캐내는 발굴 작업에 비유할 수가 있다. 이처럼 시종 그리고 일관되게 일상성 담론을 매개로 뚜렷한 자기형식을 성취한, 그리고 그 성취가 다른 성취를 불러오는 영향관계며 계기역할을 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유근택_어떤 실내(2)_133X104cm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혹은 이를 작가의 실제그림을 통해서 보면 이렇다. 임종을 앞둔 할머니 곁을 지키면서 죽음이 진행되는 과정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 도구며 과정을 작가는 모필사생이라고 부르는데, 그저 사물대상의 감각적 닮은꼴을 넘어 사물대상의 본질(여기서는 죽음의 본질)에 이르게 해주는 수단이며 방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수단이며 방편을 매개로 리얼리즘 개념을 확장하고 심화하면서 도시의 일상을, 사회의 일상을, 존재의 일상을 기록한다. 이를테면 도시의 아이콘이랄 수 있는 지하철 정경을 통해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잊은 채 망각된 삶을 사는, 그리고 그렇게 그저 하루살이처럼 주어진 오늘을 살아갈 뿐인 보통사람들의 초상을 그려내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소위 도시회화로 범주화되는 회화 경향을 예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보거나 들었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실제로 겪었을 불심검문을 매개로, 그리고 기념비적인 동상이 서있는 이질적이고 생뚱맞은 공원정경을 통해서 소위 사회적 풍경을 예시해준다. 
이런 도시회화와 사회적 풍경은 결국 그 도시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면하고 겪는 존재론적 문제로 수렴되는데, 작가는 이를 특히 일련의 자화상 연구를 통해서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작가 개인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얼굴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경우로서 풀어냈다. 표현적인, 해체적인 붓질(수묵화)과 칼질(목판화)을 통해서 인간 내면의 존재론적 파토스를 응축해낸 것이다. 


그리고 정원연작(여기서 정원은 삶의 장을 의미한다)과 대지연작(여기서 대지는 일상이 전개되는 장을 의미한다), 밤 빛 연작(불 밝힌 아파트를 소재로 반복과 스테레오타입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 회화의 문법이며 전형성을 재해석한), 욕실풍경과 실내풍경(특히 실내풍경은 사람들의 꿈과 이상이 나무처럼 피어오르는 자라는 실내연작과, 암중모색과 모종의 도모가 꾀해지는 의심스런 삶의 공간에 할애된 어떤 실내연작으로 구별된다) 그리고 식탁 풍경과 같은 일련의 풍경 시리즈, 세상의 시작연작(세상의 기원과 일상의 기원이 하나의 층위로 오버랩 되는), 어쩔 수 없는 난제연작(장난감으로 그리고 때론 이삿짐으로 어지러운 실내 정경을 통해서 개인사를 세상사로 확장시키는), 풍경의 속도 연작, 스치는 풍경 연작(달리는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통해 풍경을 매개로 감각적 기억과 인식론적 기억의 문제를 다룬), 말하는 벽(벽을 보고 말하는, 그래서 실제로는 말할 수 없는 역설적인 현실을 풍자한), 끝없는 내일과 산수 시리즈(수면에 반영된 풍경을 통해서 풍경을 일상의, 세상살이의 반영이며 거울로 가정해 본), 풍덩 연작(수면을 침대 속으로, 밑도 끝도 없는 생각과 사념 속으로, 물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것에 비유한), 구석연작(누락된, 이탈된, 억압된, 그래서 피상적으로는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삶의 단면을 구석에다 비유한), 도서관 시리즈(그저 지식의 보고로서보다는 알 수 없는 것들, 이질적인 것들과 같은 미지의 영역과 인식론적 바깥에 기생하는 것들의 생리학을 다룬) 등 일상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는, 그리고 그렇게 일상을 재고하게 만드는 작가의 회화적 형식실험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고 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자체 완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 높이 살만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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