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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빛을 머금은 도시

고충환



갤러리 비선재는 한강변에 면해있다. 창을 통해 보면 강변도로가 손에 잡힐 듯 지척이고 어둠을 머금은 강 건너편 야경이 절경이다. 아마도 의도적이었을 옆으로 긴 창틀 그대로 프레임을 대신한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리고 그 그림 그대로 울울한 마천루를 그린, 꿈을 꾸듯 몽롱한 야경을 그린, 그리고 특히 파스텔을 짓이겨놓은 듯 부드러운 색선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동차 불빛을 대신한 김성호의 그림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창틀을 통해 본 야경과 그림 속 야경이 상호작용하는, 현실과 재현된 현실이 경계를 허물어 삼투되는 시지각적 경험이 신선한 충격과 함께 장소특정성 개념을 새삼 곱씹게 했다. 몇몇 그림에 관한한 그림은 바로 그 곳을 위한 것이었고, 다름 아닌 그 장소를 위해 특정된 것이었다. 


김성호는 야경을 그린다. 발광하는 도시라는 수사적 표현을 실감케 하는 도시의 마천루를 그리고, 어둠을 가르며 내달리는 고속도로 혹은 고가도로를 그리고, 도심 사이사이로 흐르면서 길을 내는 빛의 길을 그리고, 산 위에서 때론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 본 마치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멀리서 아롱거리는 빛 알갱이 같은 도시의 야경을 그린다. 그 빛의 질감은 시점에 연동되는데, 도시에 근접할 때 그리고 먼발치서 도시의 야경을 조망할 때에 따라서 사뭇 다르다. 가까이 갈수록 인공 빛의 물성(질료)이 강조되고 멀어질수록 아득해진다. 이처럼 작가는 먼발치서 도시를 조망하고 근접할 뿐 결코 도시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데, 이런 거리두기와 시점의 설정이 작가의 그림에 특유의 서정성을 더한다. 


선입견일 수 있지만, 도시 속에 서정성이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치열한 현실성이 있을 뿐.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도시 바깥에서 도시를 보면 현실은 감동(정동)을 불러일으키고, 현실성은 서정성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 여기에 야경은 빛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빛 스스로는 결코 발광하지 못한다. 작가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빛과 어둠이 직조될 때, 가장자리의 어둠에 대비될 때에야 비로소 야경은 빛을 발하고 그 존재감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가 그려놓고 있는 야경은 마치 주변의 어둠에 감싸인 것 같고, 어둠에 의해 야경이 그리고 도시가 보호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바로 그 느낌이 서정성이다. 


도시 속에 서정성이 있을 리가 없다고 했는데, 어쩌면 작가는 마치 마술과도 같은 빛과 어둠의 연금술을 통해서 사실은 도시가 숨겨놓고 있는 서정성을 불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불려나온 서정성은 알고 보면 도시에서의 치열한 현실과 고단한 삶에 작가 스스로 의미 부여한 것인지도 모르고, 작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연민이 그렇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작가의 그림은 마치 별처럼 아롱거리고 꿈처럼 몽롱한 야경을 빌려 정글도시 혹은 회색도시로 대변되는 치열한 현실과 고단한 삶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삶의 알레고리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빛과 어둠이 상호작용하면서 야경이 자신을 부각하는 경우로 치자면 단연 도시가 제격이지만, 작가는 자연을 통해서도 도시의 야경과는 또 다른 빛의 질감(질료)을 예시해 보인다. 이번에는 빛보다는 어둠이 화면상에서 차지하는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큰 만큼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간섭?)이 더 은밀하게 그리고 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다르다. 여기에 시간으로 치자면 파르스름한 대기가 칠흑 같은 밤을 걷어내는 시간, 경계의 시간인 새벽을 그린 그림들이다.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 후미 등을 밝히며 화면 속으로 멀어져가는 버스, 집어등을 밝혀놓고 있는 심연과도 같은 바다 한 가운데 오롯이 떠 있는 고깃배가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둠과 한줌도 안 되는 빛의 지대가 대비되면서 고즈넉한 느낌은 고독으로 증폭된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야경과 더불어서 꿈꾸게 만들고 삶을 정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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