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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랑/ 한 땀 한 땀 수놓은 일상, 우주, 세계

고충환

꼼꼼 시리즈는 작가 유의랑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가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경향이다. 꼼꼼 시리즈는 말하자면 이로부터 이후 작품들이 유래하는 원천일 수 있는데, 때론 부분 이미지가 클로즈업되는 형태로 그리고 더러는 소재와 방법이 변주되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꼼꼼 시리즈는 근작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전작에 대해서마저도 결정적인데, 전작에서 모색되고 시도된 형식실험이 사후적으로 완성되고 완결되는 지점일 수 있다. 정리를 하자면 꼼꼼 시리즈는 작가의 전작이 완성되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근작으로 확장되는 근거로서 작가의 작가적 역량이 집중된 시기와 경향을 예시해준다.


그 경향을 보면 한국화단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독특한 아이덴티티와 완성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로써 한때 작가를 모방한 작가며 경향이 유행하기도 했었던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대중과 만나는 기회가 지금껏 별로 없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유별난 애착 때문일 수도 있겠고, 주변머리랄 것도 없이 그저 작업에만 몰두할 뿐인 작가들에게서 드물게 발견되는 현상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결국 지금까지 작가를 알고 있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작가의 반쪽이며 부분 이미지만 알고 있었던 것이 되고, 따라서 꼼꼼 시리즈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 나머지 반쪽이며 부분 퍼즐이 맞춰지고 완성될 수 있는 일이다.


꼼꼼 시리즈는 독특한 아이덴티티와 완성도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했다. 여기서 독특한 아이덴티티란 특정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태도와 경우로서, 이와 관련해 앙리 루소와 같은 독특한 형식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고백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루소의 그림은 흔히 원시주의 내지는 소박파 그림으로 분류된다. 원시주의는 그렇다 치고 특히 소박파 그림은 크게 아마추어리즘과 형식파괴로 특징되는데, 이 중 주목할 부분이 형식파괴 쪽이다. 답습할 형식이 없으니 형식에 구애받을 일이 없고, 이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을 추종하기보다는 스스로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정 형식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그림을 그리다보니 마침내 저절로 도달한 어떤 지점이며 새로운 형식의 창안주체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아이덴티티는 그렇다 치고 완성도 높은 수준은? 그건 꼼꼼 시리즈라는 제목에서도 암시되듯 꼼꼼한 그림으로 나타난다. 꼼꼼한 그림? 여성작가 특유의 화사하고 서정적인, 부드럽고 우호적인 색감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그림에는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형식적 특징이 발견되는데, 그림에 등장하는 모티브며 사물대상은 물론이거니와 배경마저 화면을 온통 빼곡하게 뒤덮고 있는, 자잘하고 섬세한, 낱낱의 세부가 살아있는 꽃문양 패턴이 그것이다. 처음에 작가는 꽃을 보고 그리다가 이내 안보고도 그릴 수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린, 화면에 빼곡한 꽃문양 패턴이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고 비현실적으로 만들고 몽환적으로 만든다. 현실이 지나치면(집요한 현실?) 비현실이 되고, 비현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낳는다고나 할까. 노동집약적임은 물론이거니와 치열한 그리기와 함께 작가의 남다른 근성을 인정하게 된다.


한편으로 이처럼 최소한의 빈틈도 찾아볼 수가 없는 그림이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어의 공간공포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원래 중세 북유럽 고딕양식에 나타난 양식적 특징을, 이를테면 히에로니무스 보쉬와 피터 브뤼겔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에 나타난 양식적 특징을 지칭하는 개념이지만, 작가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작가의 경우에 공간공포는 말하자면 노동집약적인 그리기와 집요한 그리기를 증언하고 뒷받침하는 구실로서, 특히 전통적인 여성의 성적 아이덴티티에 연동되는 경우로서 이해해야 한다. 이를테면 전통적으로 시간 헤아리기(아마도 그 자체 가장 존재론적인 예술행위일 수 있는)와 관련이 깊은 여성의 자수로부터 그 근거며 미학적 의의를 찾아볼 수가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자수는 여성의 성적 정체성과 관련이 깊고,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도 각종 신화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되고 있는 현실이다. 공교롭게도 작가의 작업 역시 한 땀 한 땀 일일이 공들여 수놓은 자수를 닮아있어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화면, 자투리 천 조각을 연이어 붙여 만든 조각보(아마도 여성주체에게 우주를 상징할)를 보는 것 같은 특유의 면구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그림, 화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자잘하고 섬세한 꽃문양들, 그런 꽃문양이 자개로 아로새겨진 나전칠기 함을 보는 것 같은 크고 작은 상자들(아마도 일상에 연유한 소소한 꿈이 담겨져 있을), 천 견본책자를 보는 것 같은 색동천 패턴, 찻잔, 화분과 화초와 화병, 소쿠리와 가지런히 포개놓은 사발들, 분첩과 같은 각종 화장품 용기들, 팔찌와 목걸이 같은 장신구들, 양념 통들, 책자들, 모자와 스카프 같은 소품들, 나무와 새 같은 자연경관들, 그리고 더러 추상적인 패턴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그림은 여성적이고 일상적인, 아기자기하고 정감어린 시선을 자아낸다. 평범한 걸 평범치 않게 그린 그림이고, 범속한 걸 범상치 않게 그린 그림이다.


이 예사롭지 않은 그림을 일컬어 평자들은 한국적이면서도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섬세함, 그리고 묘한 세련미가 섞여있는 그림(임두빈)이라거나, 여성 취향적이고 장식적인 소재의 전개, 편집증과 고도의 집중력, 세밀하고 정교한 반복성과 집합성, 그리고 꼼꼼하고 정밀한 수공성이 돋보이는 그림(윤우학)이라고 평한다. 아마도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양식적 특징을 아우르고 있는 경우로 봐도 되겠다. 크게는 한국적인, 여성적인, 장식적인, 그리고 세밀하고 정교한 수공성이 돋보이는 경우로 볼 수 있겠고, 그 자체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양식적 특징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그림을 뒷받침하는 인문학적 배경으로 볼 수가 있겠다그 중 여성적인, 장식적인, 그리고 세밀하고 정교한 수공성에 대해선 앞서 살핀 것과 같고, 다만 여기선 작가의 그림이 전통적인 규방문화에 연유한 생활감정과 생활철학에 내밀하게 연동된 경우라는 사실 정도를 부가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성이다. 작가의 그림은 한국적이다. 작가의 그림에선 한국적인 이미지며 분위기가 배어져 나온다. 그게 뭔가. 그게 뭔지를 밝히는 것이 곧 작가의 그림을 이해하는 일이며, 나아가 작가가 어떻게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인 것으로 재해석하고 자기화하는지를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작가의 그림은 평면적이다. 평면 위에 평면이 포개져 있고 평면 속에 평면이 중첩돼 있어서 화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꽃문양이 아니라면 색면회화로 볼 수도 있다. 이런 도저한 평면성은 전통적인 민화(특히 책거리 그림)에 연유한 것이고, 서양의 모더니즘패러다임을 재해석한 것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모더니즘패러다임은 회화가 가능해지는 조건을 그림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내용보다는 형식요소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점, , , 색채, 양감, 질감과 같은 형식요소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회화라고 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평면이야말로 회화가 가능해지는 가장 궁극적인 조건이라고 본다(클레멘테 그린버그). 이런 인식으로부터 직접 유래한 것이 색면화파이고 미니멀리즘인 것은 알려진 바와 같다. 작가의 그림은 말하자면 전통적인 민화에서의 평면성과 모더니즘패러다임에서의 평면성이라는 조건을 하나로 합치시킨 것이다. 작가의 그림이 한국적이면서도 왠지 현대적으로 보이는 이유로 봐도 되겠다.


이처럼 그림이 평면적이니 그 위에 그리고 그 속에 그려진 모티브들이 균등하고 균질하게 어필되는 것 역시 민화의 특징이고 동시에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양식적 특징일 수 있다. 작가의 그림에선 말하자면 모티브들 간에 우열이 없고 차별이 없다. 민화로 치자면 차별이 없는 세계관을 그림에다 투사한 것일 수 있고, 작가의 경우에는 일상사치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식의 생활감정이며 생활철학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소소하게는 일상에 대한 관념을 그리고 크게는 사해동포주의(아마도 민화를 그린 주체로 하여금 만민평등주의의 세계관을 추상하게 해준)의 관념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작가의 그림에는 평면성을 매개로 민화의 세계관이 투사되고, 그 세계관은 작가의 그림에서 일상사의 형태로 재소환 된다.


그리고 민화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양식적 특징이기도 한 경우로서 역원근법을 들 수가 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원근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근법은 서양의 인본주의며 인간중심주의의 관념을 그림으로 도해해놓은 경우로 보면 되겠다. 나는 세계의 중심(시점이 시작되는 곳)이다. 내가 보기에 가까운 것은 크고 또렷하게, 그리고 내가 보기에 먼 것은 작고 흐릿하게 보인다. 나를 중심으로 세계가 재편되고 재구성된다. 여기서 나는 그림 바깥에 있고, 바깥에서 그림 안쪽을 주시한다. 주와 객이, 그림과 주체가 이원적으로 분리되는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다이걸 그대로 뒤집어 놓은 것이 역원근법이다. 역원근법은 동양의 자연주의며 자연과 인간의 합일사상을 그림으로 풀어낸 것이다. 세계의 중심에는 자연이 있다(시점이 시작되는 곳에는 자연이 있고, 여기서 시점의 주체는 자연). 그리고 나는 그 자연의 일부이며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주체는 그림 안쪽에 있고 그림 안에 노닌다. 전통적인 산수화를 그린 화가들은 그림 밖이 아닌 그림 속에 자신이 놓인다고 생각했다. 화가와 그림이 주와 객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층위로 합치된다. 그렇게 나는 산수를 그리면서 이미 그리고 저절로 산수의 일부가 되고 산수를 향유하는 것이 된다. 작가의 그림은 비록 산수는 아니지만, 역원근법을 매개로 관객을 그림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나아가 초대에 머물지 않고 그림의 안쪽과 바깥쪽, 현실세계와 허구적인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넘나들어지는 차원이며 경지를 열어놓는다.


그리고 그 차원이며 경지의 언저리에 작가의 꼼꼼 시리즈가 있다. 전통적인 민화(특히 책거리 그림)와 모더니즘패러다임(평면성으로 나타난), 전통적인 자연관과 소소한 일상사에 연유한 생활감정과 생활철학이, 전통적인 규방문화와 여성의 성적 정체성이 그 경계를 허물고 넘나들어지는, 마치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놓은 꼼꼼한 세계며 몽환적인 판타지의 세계를 열어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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