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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숨결의 시(작)

고충환


숨결의 시(작). 작가 이동수가 자신의 근작에 부친 주제다. 대략 숨결이 시작되는 곳, 숨결의 근원 정도를 의미할 것이다. 유형무형의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모든 존재는 결을 가지고 있다. 바람에도 결이 있고, 주름에도 결이 있고, 세월에도 결이 있고, 심지어는 마음에 마저 결이 있다. 존재치고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다르게는 길과 겹과 주름, 물리적으로는 파동과 파문과 파장, 동양학으로 치자면 기와 운과 생과 동의 상호작용, 그리고 운동으로 치자면 이행과 유격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모든 존재는 항상적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이행 중이며, 그렇게 이행하려면 구조적으로 유격이 있어야 하고 길이 있어야 한다. 그 결(그리고 길)들의 궁극이 숨결(그리고 숨길)이다. 호흡이다. 아니마다. 최초의 숨결이 허다한 다른 결들로 분기되는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무명의 존재를 파생시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숨결은 결들의 궁극이고 존재의 원인이다. 작가는 그 숨결이 시작되는 곳(것)을 겨냥한다. 궁극 중의 궁극을, 원인 중의 원인을 정조준 한다. 

그림의 주제치고는 좀 거창하다 싶다. 흔한 사발 아니면 다기에 담아내기에는 너무 큰 주제가 아닌가도 싶다. 아마도 숨 쉬는 그릇에서 처음 착상된 것일 터이다. 그릇은 숨을 쉬는데, 알다시피 이는 결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알고 보면 그 주제가 그렇게 거창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다도 혹은 다례에서 보듯 차 한 잔 마시는 행위 속에도 우주가 있고 각성이 있음을 생각하면 그다지 큰 주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문제는 작가가 흔한 사발 아니면 다기 그림 속에 숨과 결을, 숨이 들고나는 길을, 존재의 원인을, 우주와 각성을 어떻게 담아내고 실현하는지를 살필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무슨 수학공식처럼 손에 잡히는 실체로서보다는 감각적인 아우라를 통해서 암시되고 감지되는 것일 수 있다. 

사발 혹은 다기를 그린 작가의 그림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각각 숨을 강조하고 결을 부각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사발 표면에 바른 유약이 머금은 은근한 투명성 혹은 반투명성이 숨을 강조하고 있다면, 사발의 물성과 질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또 다른 경우가 결을 강조한 것일 수 있겠다. 표면적으로 구분돼 보이지만, 숨과 결이 하나이듯 그 이면에서 하나로 통하는,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서로 공명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이런 공명은 모티브에 해당하는 사발과 검푸른 배경화면과의 공명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검푸르다고 했다. 푸른 기미를 머금은 검정색이고, 빛의 기운을 함축한 어둠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수장된 사발을 보는 것 같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켜(질감)를 보는 것 같고, 어둠이 머금은 빛의 기미가 고요와 정적을 가만히 흔드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마치 찻잔 속에 담긴 우주 혹은 삼라만상처럼 존재의 원인에 대한, 숨결이 시작되는 곳(것)에 대한 명상에 가만히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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