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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인물원, 테마파크공동체

고충환

이지영/ 인물원, 테마파크공동체 



모든 사건은 사과로부터 시작되었다(최초의 사과). 사과를 따 먹은 게 죄였다. 금지된 지혜를 상징하는 금단의 열매였기 때문이다. 그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예견된 선택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죄와 금지와 금단으로 짜인 각본 속에서의 선택이었다. 사르트르 식으로 말하자면 부조리 속에서의 자유의지였고, 부조리와 맞바꾼 자유의지였다. 그랬다. 죄와 금지와 금단으로 짜인 각본 자체가 문제였고, 전제된 부조리가 문제였다. 여하한 경우에도 부조리를 벗어날 수 없는 자유의지가 문제였다. 그렇게 익명의 시절을 거치면서, 훈육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나는 제도적인 주체며, 사회적인 주체로 거듭난다. 거듭난다고는 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를 억압하는 나로 거듭난다. 그랬다. 내가 통과해온 그 시절이며 세월은 알고 보면 나를 지우고 익명적인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억압된 나와 억압한 나로 분리된다. 사회적인 주체와 반 혹은 탈사회적인 주체로 분리된다. 그렇게 나는 내가 억압한 나들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집합이고 총체다(그녀의 역사). 그리고 그렇게 사회 속에 사회적인 주체들이, 제도 속에 제도화된 주체들이 산다. 


작가는 그걸 인물원이라고 부른다. 사회와 제도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다(어떤 공동체). 작가는 그걸 동물원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동물들에겐 사람이 규율이고 법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겐 사회와 제도가 규율이고 법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동물들에게 사람이 규율이고 법 일리가 없듯이, 사람들에게 제도가 규율이고 법일 수가 없다. 그렇게 동물원 속 동물들도 부조리하고, 제도를 사는 사람들도 부조리하다. 그렇게 억압된 동물들에 억압된 사람들이 중첩되고, 부조리한 동물원에 부조리한 인물원이 오버랩 된다. 그리고 그렇게 부조리한 인물원에 부조리한 사람들이 산다. 그 중 어떤 이들은 생각한다. 비록 금지된 각본으로 예견된(아니면 예정된?) 선택이었지만 여하튼 선택이었다고, 그래서 우리에겐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고 자유가 열려있다고(자각). 그렇게 어떤 이들은 공동체에 남고, 다른 이들은 공동체를 떠난다(머무는 자와 떠나는 자). 현실주의자는 남고, 이상주의자는 떠난다. 


이건 이야기인가 그림인가. 이야기그림이고 그림이야기다. 예술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지만 그 중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예술은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기술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방법론을 위해 가장 전통적인 그리고 전형적인 예술의 정의를 도입한다. 서사적 형식이다. 그리고 그 형식에 이미 널리 알려진 서사형식을 끌어들여 버무린다. 창세신화 중 금단의 열매 이야기와 성장서사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처음부터 금지로 설정해놓은 각본 자체를 문제시하고, 자각과정을 매개로 익명적인 주체로부터 진정한 자기(불교식으론 진아)를 찾아 떠나는 여로를 그리고 있고, 내면의 여행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작가의 내면 이야기로부터 사회적인 이야기로 확대 재생산된다. 사회는 개별주체를 어떻게 길들이는지, 제도는 개별주체의 욕망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제도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를 동물원에 비유한다. 그래서 얼핏 에덴동산처럼 보이는 산수풍경이 알고 보면 동물원에서 차용해온 것이라고 한다. 비록 폭포가 흐르고, 연못이 있고, 나무가 자라고, 꽃밭이 만발하지만 사실은 인공자연이고 이미테이션이고 테마파크다. 작가가 보기에 현대인은 이런 잘 가꿔진 테마파크 공동체의 주민들이다. 작가가 보는 현대인의 징후며 증상이다. 현대인과 제도와의 관계에 대한 진단이다. 그리고 그 처방으로 어떤 이는 그 테마파크 공동체로부터 떠나기를 감행하지만, 그러나 어디로? 여기서 작가의 이야기는 답이 아닌, 질문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예술은 질문의 기술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의 기술이며, 질문의 기술을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정성스레 그려놓고 있다. 동물원에서 차용해온 테마파크 공동체를, 전통 민화에서 차용해온 산수풍경을, 중세세밀화 방식에서 차용해온 정치한 묘사 그대로 정직하게 그려놓고 있다. 그래서 다시, 작가의 그림은 이야기그림책 같고 그림이야기책 같다(모든 서사적 형식의 그림은 사실은 책이 그 원형이다). 이로써 서사에 걸 맞는 형식을, 이야기에 부응하는 자기만의 그림을 예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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