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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종, 신윤복의 미인도와 이순종의 여인도

고충환

이순종, 신윤복의 미인도와 이순종의 여인도 


이순종은 설치와 영상 그리고 평면회화를 넘나들며 상식을 벗어난 소재로써 전통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묻기도 하며, 때로는 대중문화에 반응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머리카락을 잘게 썰어 뭉쳐 놓거나 가는 실처럼 꼬아 늘어트린 공간설치작업인, 매란국죽(梅蘭菊竹)을 대신한, <여인의 사군자>에서는 전통적으로 선비의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사군자에 대해 여성의 몸의 언어를 대질시키는 식이다. 그리고 영상작업 <콘체르토>에서는 둥근 실타래 모양을 한 여인의 얼굴을 마치 핑퐁 게임을 하듯 이리저리 마구 퉁기는 것으로써 위기에 처한 여성의 성적 정체성이나 인간성 상실을 논평한다. 여기서 개인의 얼굴이 중첩된 실타래가 인격의 원천인 무의식의 끈이나 그 다발을 상기시킨다. 또 다른 영상작업인 <봉선화 연정>에서는 대중가요와 만연한 카바레 문화에서의 키치적 요소와 함께 일말의 순정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순정이야말로 어떠한 고급의 미적 감수성보다도 순수한 것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평면회화이다. 세필(細筆)로 그린 드로잉과 먹그림 그리고 채색화가 결부된 여인그림으로서, 이는 조선시대 풍속화가 신윤복의 ‘미인도’를 각색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신윤복의 ‘미인도’를 모사하는 과정 중에 자연스레 이순종 만의 ‘여인도’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작가의 여인그림은 에로틱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순종적인 동시에 욕망적인, 전통적인 미인도를 닮아 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일말의 애매모호한 여성상을 드러내 보여준다. 여기서 애매모호하다는 것은 작가가 그린 여성상이 특히 미인도에서 보기를 기대하는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이며, 상식과 선입견으로는 미처 포섭될 수 없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이중적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이 이중적 존재라는 것은 그 자체로 이해하기보다는 일말의 억지 개념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인격체의 속성을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로써 작가는 전통을 차용하고 부연하고 재해석하며, 그럼으로써 전통을 자기화하는 한 방법과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렇듯 신윤복의 그림을 각색했다고는 하나, 이목구비를 포함한 얼굴과 세필로 정교하게 묘사된 머리카락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몸통 부분은 대개 먹그림으로 애매하게 처리돼 있다. 그리고 그 먹그림조차도 엄밀하게는 몸통을 암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일말의 모호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어떤 결정적인 이미지로는 포착할 수 없는 여인의 무의식을 표상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이는 작가의 여인그림이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식적인 논리를 따른다기보다는 무의식의 논리를 따라 그려진 것임을 말해준다. 이렇듯 작가의 그림에서 일말의 무의식의 표출을 보게 되는 것은 먹그림에서 느껴지는 애매함에서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머리카락의 올 하나하나를 과도할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것에서 여인의 무의식적 욕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곱게 단장한 머리가 여인의 성적 정체성을, 그리고 물결처럼 일렁이는 머리카락 다발이 여인의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 역시 작가가 전작들에서처럼 정신적이거나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몸의 언어로부터 자기의 정체성을 찾은 경우로 보인다. 
이순종의 그림은 이처럼 상당할 정도로 무의식적 욕망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실제로 작가는 일종의 무의식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그때그때 건져 올린 소재와 발상을 의식의 논리에 의한 재편집이나 재구성의 과정 없이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만큼 그의 그림에서는 어떠한 일관된 논리나 인위적인 과정 대신에 무의식의 생리가, 즉흥성과 우연성의 논리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또한 무의식적 욕망 자체는 몸의 논리에 밀착된 것이며, 이는 그대로 생물학적이고 변태적인 상상력의 표출(metamorphosis)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나무나 식물의 떡잎과 그 잎맥이 마치 사람의 염통 속에 미세하게 얽혀 있는 실핏줄의 다발을 연상시킨다든지, 사람의 내장 기관이 여인의 초상과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로 만나고 있다. 그리고 낙관 대신 그림 여기저기에 찍혀 있는 지문에서도 몸의 생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지문이 개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에 비해, 낙관이 대리하는 개인의 정체성이란 거의 개념적인 허명(虛名)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예컨대 풀어헤친 머리카락 다발이 무의식적 욕망을 암시하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여인의 젖가슴을 상기시키는 복숭아 열매와 함께 남성을 상징하는 자라와 문어를 차용한(사실은 전통적인 기호를 차용한) 것에서는 일말의 에로틱함 마저 느껴진다. 이는 어느 경우이건 몸의 논리로부터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식적인 일면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신윤복의 미인도를 각색한 것이나 전통적인 에로틱한 기호를 차용한 것에서 보듯 작가의 그림은 상당할 정도로 전통적인 회화 방법에 밀착해 있다. 대개는 전통적인 민화 풍의 그림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미지의 일부와 여인의 초상을 하나로 결부시키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 일례로서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와 여인의 초상을 중첩시킨 <임당수>를 들 수 있다. 일월곤륜도는 좌우 측면에 위치한 소나무를 중심으로 해서 떠오르는 해와 달을 형상화한 그림으로서, 원래 임금을 위해 그려진 것인 만큼 가부장적인 남성 이데올로기를 대변한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마치 물귀신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결부시켜 그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이름 없는 여인들의 혼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현저하게 양식화된 파문(波紋)이나 심지어 병풍그림의 형식 역시 이런 전통을 차용하고 각색하고 자기화하는 일련의 프로세스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런가하면 일말의 언어놀음 또는 언어유희에 착안한 그림도 있다. 예컨대 화면 가득히 만개한 꽃을 그린 그림의 중심에, 즉 암술과 수술이 있어야 할 자리에 ‘꼿’이란 문자를 표기한다. 여기서 ‘꼿’은 ‘꽃’의 오기(誤記)가 아니라, 그 자체를 별개의 이미지로 본 것이다. 이로써 꽃 그림을 별도의 문자 텍스트로 부연하는 대신, 그림 이미지와 문자 이미지를 하나로 결부시킨 것이다. 
이상으로 이순종의 일련의 그림들이 일관된 의식의 산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일관된 의식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의식의 요소가 짙게 배어 있어서 언제나 부분적이거나 일면적인 해석만을 허용한다. 이는 그만큼 표현방법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또한 이질적인 요소로 인해 그 성량이 풍부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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