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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국작가상 심사평

고충환

2018 한국작가상 심사평 


객관적인 현실은 없다. 다만 우연하고 무분별한, 우발적이고 산발적인 현실의 조각들이 있을 뿐. 이런 산만한 현실의 편린들로부터 추상해낸 것이 전형이고, 그 전형이 전개되는 장소가 객관적 현실이다. 그러므로 객관적 현실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매개로 추상해낸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전형을 창조라고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다시, 전형을 창조하기 위해선, 객관적 현실의 지평을 전개해 보이기 위해선 무분별한 현실 그대로가 아닌, 현실을 극화해야 한다. 극화된 현실을 통해 비로소 산만한 현실이 더 잘 보이고, 무분별한 현실이 분별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흥덕 작가의 서사적 장치가 있다. 바로 극장이며 무대다. 흔히 삶을 극장에다가 비유한다. 인생극장이다. 이흥덕 작가의 그림은 삶이라는 연극이 실연되는 무대를 보는 것 같고, 한 시대의 풍속도가 상연되는 극장 같다. 작가는 각각 카페를 그리고 지하철을 그 무대로 설정한다. 작가에게 카페 그리고 지하철은 한 시대의 풍속도가 오롯이 그 실체를 얻는 삶의 축도다. 특히 지하철이 그렇다. 흔히 지하철을 지옥철이라고 한다. 콩나물시루 같은 열악한 교통현실을 빗댄 말이지만, 왠지 그 말은 삶이 곧 지옥이고, 지하철이 그 지옥의 축도라는 말처럼 들린다. 
고무바지를 입고 배로 기는 거지, 노숙자, 술주정꾼, 신문 너머로 옆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여자의 허벅지를 힐끗거리는 사내, 마사지 걸에게 엉덩이를 내맡긴 채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 성기마냥 빨갛고 긴 코를 킁킁거리는 남자, 헐떡이는 남자와 껄떡거리는 사내, 귓속말하는 사람, 예수와 부처, 무당과 12지, 쫒는 자와 쫒기는 자. 그리고 그 모두를 관망하는 작가. 그 카페와 지하철에는 형이상학이 있고 형이하학이 있다. 종교가 있고 욕망이 있다. 자본이 있고 잉여(잉여인간?)가 있다. 표면을 소비하는 대중문화가 있고 끈적거리는 에로스가 있다. 몰염치가 있고 용서가 있다. 그것들이 무차별하게 등가치를 이룬 카오스적 현실이 있다. 여기서 작가는 다만 풍자할 뿐,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을 대중의 몫으로 남긴다. 다시, 여기서 풍자는 객관적 현실을 위해 사회적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미학적 장치로 보면 되겠다. 
2016년 첫 제정된 한국작가상이 올해의 작가로서 이흥덕 작가를 선정했다.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성과에 비해, 그리고 작업이 갖는 위상에 비해 각종 수상제도로부터 소외된 작가를 발굴 선정하는 것이 본 상의 취지다. 돌이켜보면 1회 수상작가(유휴열)나 이번 2회 수상작가(이흥덕)는 이런 취지에 걸 맞는 선정이었던 것 같다. 향후 숨어있는(?) 근성 있는 작가가 선정될 수 있도록 지금의 제도를 더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본 수상제도가 지향해야 할 성격에 대해서도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작가상이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도 제고해볼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다. 여하한 경우에도 이런 듬직한 수상제도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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