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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킴, 군산과 오타루

고충환

도저킴, 군산과 오타루 


군산과 오타루. 닮은 듯 다르다. 군산도 항구고 오타루도 항구다. 군산도 근현대건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고, 오타루에도 근현대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다. 군산도 한때 번창했고, 오타루도 옛날에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군산도 오타루도 지금은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다만 관광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하거나 이따금씩 영화촬영을 위해 무슨 무대세트 같은 도시를 제공할 뿐이다. 군산 자체는 도시 전체가 시간의 미로 같은데, 아마도 오타루도 그럴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군산이 번창한 이유는 일제의 수탈에 의한 것이고, 오타루는 이런 역사적 외상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다. 
작가는 그렇게 군산과 오타루를 대비시킨다. 닮은꼴과 차이점을 대비시킨다. 근대와 현대를 대비시키고, 한국과 일본을 대비시킨다. 한국의 기억과 일본의 기억을 대비시킨다. 모든 역사는 기억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군산으로 축도된 한국의 역사와 오타루로 축약된 일본의 역사를 대비시킨다. 엄밀하게는 대비시킨다기보다는 뒤섞는다. 뒤섞는다? 무슨 퍼즐 맞추기처럼 일종의 방법론으로서 제시된 것인데 그 자체가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표상하고, 닮은 듯 다른 차이점을 표상하고, 역사를 현재 위로 소환하는 데 따른 불완전한 기억의 차이(온도의 차이?)를 표상한다. 그렇게 저마다 불완전한 그림을 맞춰보도록 유도하고, 이로써 스스로 역사적 실체에 가닿도록 견인한다.  
여기서 작가의 사진은 도시의 단면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작가의 모든 사진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클로즈업은 작가의 사진문법의 주요한 형식적 특징으로 보인다. 클로즈업은 얼핏 무슨 증명사진에서처럼(이를테면 무슨 사물초상화와 같은) 사물대상 혹은 피사체의 실체를 강조하고 부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이를테면 모든 사물대상은 관계의 맥락 속에 놓여 있기 마련인데, 클로즈업한 사진은 사물대상을 이런 관계의 맥락으로부터 단절시켜 추상화한다. 그 자체 불완전한 기억, 파편화된 기억을 예시해주는 적절한 방법론일 수 있겠다. 이로써 한 장의 사진 혹은 하나의 이미지를 매개로 한 현실인식이란 사실은 재구성된 기억이며 기억의 재구성에 의한 것임을 예시해준다. 그렇게 군산과 오타루의 차이점 대신 닮은꼴이 부각되고 강조된다. 역설이다. 닮은꼴일수록 그 이면에 차이점을 더 잘 숨긴다는 역설이다. 흑백사진 역시 이런 사실의 인식에 한 몫을 한다. 흑백사진 자체가 이미 일정하게는 사실을 추상화한 것이고, 여기에 클로즈업 사진이 현실을 재차 파편화한다. 
아마도 작가는 이런 사진의 자발적 트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해 불완전한 기억과 중층적인 역사인식을 예시해주고 있을 것이다. 이로써 어쩜 군산과 오타루의 차이점이 최초 주제였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닮은꼴을 강조하고 보편성을 부각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에서 실패한 주제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자체 닮은꼴이 차이점을 더 잘 숨긴다는 역설의 표현이란 점에서 보면 다시 주제를 정조준하고 있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렇게 작가의 사진은 근대와 현대가 하나의 층위로 포개진 시간의 미로, 역사의 미로, 기억의 미로에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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