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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오리, 여인숙과 임시 거주자들

고충환

박보오리, 여인숙과 임시 거주자들 


작가가 레지던시를 위해 임시로 기숙하는 방에는 먼저 기숙한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다. 창문에 닥 섬유질이 여실한 한지를 붙여놓은 것인데, 아마도 외풍이 심했을 것이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였을 것이다. 자연 바람이 불 때마다 한지는 파르르하고 떨었는데, 꼭 한지가 숨을 쉬는 것 같다. 그렇게 작가는 바람과 소리와 숨 쉬는 한지로 남은 전번 사람의 흔적 그대로를 고스란히 영상으로 담았다. 아마도 누구였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 혹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으나, 익명적인 누군가라는 점에서 사정은 다르지가 않다. 그렇게 나는 익명적인 누군가로 남은 방에 기숙한다. 익명적인 누군가가 지나간 시간대를 살고, 익명적인 누군가가 서성였던 그리고 번민했을 공간 위에 서 있다. 그렇게 모든 방은 익명적인 누군가를 흔적으로 쌓는 시간의 집이고 공간의 성채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나 역시 또 다른 임시 거주자를 위해 눈에 보이는 혹 눈에 보이지는 않는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어쩜 친근하고 낯 설은 임시 거주자들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증명해보일 것이다. 
그 방은 플라스틱 지붕으로 덮여 있었는데, 비가 올 때면 빗소리로 잠을 설칠 정도라고 한다. 작가는 그 소리도 작업으로 담았다. 숨 쉬는 한지와 바람을 담았고, 플라스틱 지붕과 빗소리를 담았다. 겉보기에 자연현상과 질료적인 형상을 담은 것이지만, 사실은 익명적인 거주자의 체취를 담았다. 익명적인 거주자를 위한, 그리고 미래의 익명적인 거주자들을 위한 오마주를 담았다. 작가가 지나간 시간과 겹치는 공간에 기념비적인 성격을 부여해 형상화하고 물화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을 작가는 불러오기, 라고 부른다. 시간과 공간에 체화된 익명적인 누군가의 기억(타자의 기억? 그리고 어느 정도는 잠정적인 또 다른 타자로서의 나의 기억?)을 현재 위로 소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는 군산여인숙의 시간과 공간을 불러오고, 군산여인숙이 잠시잠깐 품었을 임시 거주자들의 흔적을 불러온다. 여인숙과 임시 거주자들의 매칭으로 묘한 정서를 불러온다. 
군산여인숙은 천장 구조가 독특한데, 편평하지가 않고 들쑥날쑥하다. 작가는 그렇게 들쑥날쑥한 천장 그대로를 본 떠 그 크기를 축소한 미니어처 시멘트 구조물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천장을 들쑥날쑥하게 만들었을 리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인도 바뀌고 기능도 바뀐다. 그렇게 공간 환경이 바뀌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구조물을 덧붙이고 떼 내면서 지금의 모양새가 되었다. 건축도 하나의 생물이다. 상황이 바뀌고 필요가 바뀌면 건물도 변화를 겪는다. 건축 사회학이다. 군산여인숙의 구조는 군산 지역 건축물 구조의 축도로 봐야하고 샘플로 봐야한다. 일제 강점과 미군주둔을 거치면서 군산일대에는 이런 건축물들이 많다. 그래서 지금도 건축학도들이 연구를 위해 곧잘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근현대 건축물 연구에는 이처럼 지역 연구가 연동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떠낸 구조물에서 유추해 가상의 공간 환경을 설치했다. 지금의 전시공간에 그때의 여인숙공간을 중첩시킨 것이다. 가상의 문이며 가상의 벽을 통과하면서 그때의 여인숙에 기숙했을 익명적인 누군가의 삶의 현장에 초대한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에는 시간여행에 연유한 정서가 있고, 익명적인 존재의 흔적과 대면하는 의외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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