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갤러리 박영 10주년 기념전시_진주(Pearl)에서 십년감수(十年敢守)까지

고충환

갤러리 박영 10주년 기념전시_진주(Pearl)에서 십년감수(十年敢守)까지 


도서출판 박영사가 파주출판단지 내 갤러리박영을 열고 작가 지원 사업을 시작한지 꼭 10년이 지났다. 한길사와 열화당과 함께 출판단지 설립을 위한 산파 역할을 한 것을 놓고 보면 박영사의 작가 지원 사업은 사실상 출판단지와 그 역사를 같이 한다. 그동안 작가입주프로그램인 박영스튜디오 사업(2008-2013)을 해왔고, 연이어 젊은 작가를 발굴 육성 지원하는 박영작가공모전 사업(The Shift 더시프트, 2013-현재)을 해오고 있다. 갤러리박영의 작가 지원 사업의 두 축인 셈이다. 작가입주프로그램이 중도에 하차한 아쉬운 점이 있지만, 박영작가공모전으로 그 바통을 이어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두 사업이 연속성을 갖는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돌이켜보면 당시 작가입주사업은 출판단지 내에서는 처음이었고, 대외적으로도 갤러리가 주도해 작가입주사업을 병행하는 경우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모르긴 해도 지금이라고 해서 사정이 별반 달라진 것으로 보이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선구적인 면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공모전은 작가입장에서 보면 젊은 작가의 진로를 열어주는 계기역할을 하는 것과 함께, 갤러리입장에서도 새 피를 수혈 받아 갤러리로 하여금 항상적으로 동시대성을 담보하게 만드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그 첫 전시가 <Pakyoung Emerging Artists Residence Launching>(2008.11)전이었고, 꼭 10년 만에 <십년감수 十年敢守>(2018.10)전을 열었다. 1기 입주 작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시작한 갤러리박영의 지난 10년을 회고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십년감수 곧 굳세게 자리를 지키다, 는 의미에서도 보듯 자신감과 결기를 담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첫 전시명의 영문자 이니셜 Pearl은 우리말로 진주가 된다. 그리고 십년감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연 영롱한 진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작가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읽히는 대목이다. 말장난을 해본 것이지만 농담은 사실상 진담이란 말이 있고, 말장난(혹은 말실수)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자신감과 결기의 이면에 애지중지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그동안 입주 작가 매칭프로그램에, 그리고 이후 공모전 작가선정과정에 처음부터 간여해온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10년이 정말 후딱 하고 지나간 것 같다. 이후 여러 경로로 현장에서 마주한 탓도 있겠지만, 작가 한명 한명이 마치 오늘 본 것처럼 선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갤러리박영을 거쳐 간 작가들을 보면, 현재 한국현대미술을 이끄는 현역으로서 저마다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 면면을 보면 레지던스 1기 작가로서 회화와 일러스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네오팝 경향의 김태중, 터부요기니(taboo yogini)로 명명된 캐릭터를 내세워 자기를 소비하는 예술을 실천하는, 어떻게 자기를 창의적으로 소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낸시랭, 책의 활자를 해체해 읽을 수 없는 책을 만드는, 사진의 입자를 해체해 이미지를 재고하게 만드는, 그리고 최근에는 옷을 해체해 훼손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지현, 빛과 같은 비물질 작업의 이진준, 흔히 책을 사랑한다거나 책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과 같은, 일상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직설화법으로 표현했을 때 오는 의미론적인 차이와 간극에 주목하게 만들고, 이로써 낯설고 친근한, 의외의 중의적인 의미와 마주하게 한 최진아, 보도사진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와 의미를 통해 이미지정치학의 전략과 현상(현실)을 주제화한 한지석이 있다. 
그리고 2기 입주 작가들 중에서는 원래 키드냅이라는 사회문제로부터 출발한, 그리고 그렇게 납치당한 유아가 일종의 도피처로서 환상공간을 상상해내는 것에 착안해 이를 지금의 유토피아 개념으로 확장하고 일반화한 강민수, 아날로그 영화필름을 재구성한 기하학적 패턴에 라이트박스를 결합시킨 오브제 작업으로 감각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때론 건축과 결합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건축적인 구조를 연출하는 김범수,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해체적인 붓질로 정체성 문제를 묻는 김진, 그리고 머리카락과 털과 같은 신체분비물을 소재로 비물질예술 혹은 애브젝션아트의 가능성을 예시한 포자시리즈의 이주형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보편화된 것이지만, 당시만 해도 1,2기를 통 털어 작가들이 제시한 문제며 주제의식은 하나같이 남다른 것이었고, 뚜렷한 개성으로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마도 작가들로 하여금 입주프로그램 이후 각처에서 각양의 모습으로 현역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만든 사실상의 배경이며 역량으로 보면 되겠다. 
이번 <십년감수>전에는 1,2기 입주 작가 중 김태중(1기), 이지현(1기), 한지석(1기), 강민수(2기), 김범수(2기), 김진(2기), 이주형(2기), 총 7명의 작가들이 그때와 비교해 때론 심화된 작품으로 그리고 더러는 달라진 경향으로 전시에 참여한다. 스튜디오박영이 최초 진주로 품은 작가들인 만큼, 갤러리박영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장으로서 마련한 것일 터이다. <십년감수>전에는 이 작가들 외에도 서울역 맞은편 건물외벽에 미디어파사드를 설치한, 그리고 이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밤하늘을 장식한 드론 쇼를 기획한 양만기, 비구상추상작품의 박승순, 명작을 감상하기 위해 무리지어 미술관을 순회하는, 사실상 관광 상품으로까지 자리 잡은 문화적이고 제도적인 관습을 주제화한 김홍식, 투명한 청색의 프리즘을 통해 본 몽환적이고 내면적인 풍경의 정영환, 회로기판을 모티베이션하고 변주한 평면과 설치작업으로 기술문명에 반응한 배수영 같은 작가들이 초대 전시되었다. 
기 입주 작가들과 함께 앞으로 갤러리박영과 함께할 작가들이다. 혹은 최소한 앞으로 갤러리박영이 지향해갈 내일을 가늠해보기 위해 마련된 장이다. 전시에는 그렇게 갤러리박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우러진 한편, 갤러리박영의 성격이며 색깔을 압축해보여주는 계기 역할을 하고 있고, 여기에 일정하게는 자신감과 역량을 전시하는 장으로 봐도 되겠다. 

돌이켜보면 갤러리박영이 파주출판단지에 처음 문을 연 당시만 해도 출판단지 내 미술계 인프라는 사실상 불모의 지대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눈에 띠는 경우로만 쳐도 갤러리박영 외,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를 주도하는 안그라픽스,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건축한 것으로도 유명한 도서출판 열린 책들의 미메시스아트뮤지엄, 대안공간 1세대인 아트스페이스휴, 그리고 여기에 얼마 전 아쉽게도 문을 닫은 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가 있다. 그리고 최근의 일로는 현재 출판단지 내 입주해 있는 대략 200여명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작가조합인 아트벙커(초대 이사장으로 조각가 정현)가 결성되기도 했다. 군소화랑들로 포화를 이룬 인근의 헤이리아트밸리와 비교해보면, 굵직굵직한 미술문화 거점들이 포진해있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그 한가운데 갤러리박영이 있다. 갤러리박영은 파주출판단지가 사실상 현재의 미술문화특구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산파역할을 했다. 일종의 작가인큐베이터인 스튜디오 지원 사업을 매개로, 그리고 연이은 신진작가 발굴 육성 지원 사업을 계기로 작가 한명 한명을 진주로 키워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애지중지했던 저간의 살가운 마음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기 형성된 미술문화 거점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며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갤러리박영이 최초 기획했던 계획 중 미완의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도록출판과 예술서적 발행을 목적으로 한 박영북스를 발간하는 일이다. 출판사를 베이스로 하는 만큼 갤러리박영이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 차차 여건을 만들어 가리라 본다. 지난 10년간 노고만큼이나 향후 10년간 성과가 기대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