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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랑/ 미시세계를 파고드는, 그리고 모던한 느낌의 색감과 물성

고충환

유의랑/ 미시세계를 파고드는, 그리고 모던한 느낌의 색감과 물성 


유의랑은 루소 같은 원시파 화가들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원시파는 다르게는 소박파라고도 한다. 그림이 소박하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더불어 아마추어 같은 치기가 느껴진다는 의미도 있다. 선행하는 형식이 없으니 형식에 구애받을 일이 없고, 자기 식대로 그리다보니 저만의 형식에 이른 경우가 종종 있다. 작가는 그림을 전공했으므로 작가의 이 말은 독학자로서보다는 평소 그림을 대하는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표명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그렇게 저만의 형식에 이른 경우가 꼼꼼 시리즈다. 꼼꼼 이라는 말이 예쁘다. 작고 아기자기한, 치밀하고 정교한, 이라는 의미가 떠오른다. 노동집약적인 그리기, 치열한 그리기, 집요한 그리기, 편집증적 그리기, 라는 태도가 생각난다. 이런 집요한 그리기를 통해 작가는 저만의 독창적인 형식을 열었고 또한 얻었다. 저만의 형식이라고 해서 지레 거창한 뭔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작가의 그림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생활감정을 소재로 한 것이고 또한 표현한 것이다.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플 정도의 자잘한 나뭇잎들, 갖가지 풀과 꽃들, 달과 쓸쓸하고 따스한 공기, 달과 조응하는 항아리, 그릇, 마른 꽃이나 과일이 담긴 소쿠리, 스카프, 립스틱, 깔개, 가방, 모자, 핸드백 같은 생활 기물들, 조각보, 자개함, 진주 목걸이 혹은 묵주 같은 일상적 소재들이 커튼이 드리워진 실내 정경을 이루고 있거나 화면 자체의 구성 원리에 따라 포치해 있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일상적이다. 그리고 여성적이기도 하다. 작가의 그림은 어쩜 전통적인 규방문화의 문화적 유전자를 물려받아 저만의 형식으로 자기화하는데 성공한 경우로 보인다. 특히 한 땀 한 땀 수놓는 과정을 통해서 일상을 잊고 시간을 잊고 종래에는 자기 자신마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마는, 그리고 그렇게 자기를 잊으면서 역설적으로 또 다른 일상을 얻고 우주를 열고 궁극에는 자신이 오롯해지는 자수의 오묘한 세계관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그림은 미시세계를 파고들면서 그 속에서 또 다른 우주를 발견한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우주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는 구상의 추상성, 추상의 구상성을 추구한다고도 했다. 여기에는 작가의 혜안이 있다. 기실 존재하는 사물대상치고 그 생긴 꼴이 구상으로만 된 것도 추상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없다. 구상 속에 추상이 포함돼 있고, 추상 속에 구상이 잠재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어느 정도 작가의 그림이 다 그렇지만, 그렇게 구상과 추상이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넘나들어지는 경우를 표현한 것이 색동 시리즈다. 색동은 일상 속 소재와 더불어서 보면 구상이지만, 색동 자체는 색들의 조화 혹은 조합으로 나타난 추상이다. 
사실 작가는 진즉에 이런 색동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포목점에 진열된 천처럼 알록달록한 색동천을 세로로 배열한 것인데, 그 표면에는 어김없이 깨알 같은 꽃문양이 빼곡했다. 근래에 색동 소재를 다시 꺼내 시리즈화한 것인데, 전작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세로 배열을 가로 배열로 재배치한 것, 그리고 표면의 꽃문양이 사라진 것, 그래서 색 띠가 강조되면서 현저하게 추상에 가까워진 것이 다른 점이다. 색의 조합도 감각적이지만, 물성도 주목해볼 부분이다. 작가는 색 띠와 색 띠가 맞닿는 부분에 나이프로 물감을 두툼하게 발라 올려 도드라지게 했는데, 마치 색 띠와 색 띠를 박음질해 그 이음새를 살린 것 같고, 그림으로 치자면 고유의 물성이 강조되면서 감각적 쾌감을 자아낸다. 그림의 특성상 색에 대한 감수성이 결정적일 수 있는데, 그림이 감각적이고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이외에도 다른 그림들이 많지만, 사실상 이 다른 그림들을 잠재된 형태로 하나로 아우르는, 어쩜 하나로 종합해낸, 그래서 작가를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할, 작가의 작가적 아이덴티티가 오롯이 그 실체를 얻으면서 빛을 발하는 그림이 꼼꼼 시리즈고 색동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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