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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_현대수묵: 무묵수묵, 수묵 없는 수묵, 수묵은 도처에 있다

고충환




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_현대수묵/ 
무묵수묵, 수묵 없는 수묵, 수묵은 도처에 있다 




전통적으로 수묵은 한국화 논의와 관련이 깊다. 한국화에 대한 언급 없이 수묵을 논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운명적으로 한 몸이라고 해야 할까. 수묵도 그렇지만 한국화에 대해서도 지필묵과 같은 재료적인 특질이나, 선(형식론)이나 기세(기운론) 같은 장르적인 특수성을 전제로 논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최소한 지엽적임을 피할 수가 없다. 어쩌면 한국화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는, 그러므로 장르 구분 없이 폭넓은 의미를 적용해야 할지도 모른다(그래서 이번 전시에는 먹그림과 페인팅, 사진과 영상설치작업을 두루 아우른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을 반영한 그림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를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그래서 이번 전시에는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을 해석하고 각색한 작가와 작품들이 두루 선보인다). 

그렇다면 원형이 뭔가. 여기서 원형은 전형과 다르다. 전형이 사회화된 기호, 문화적인 기호, 객관화된 기호라고 한다면, 원형은 전형보다 깊다. 어쩌면 전형은 원형에서 길어 올려진 것이고, 그런 만큼 원형은 더 궁극적이다. 사진에 비유하자면, 롤랑 바르트의 스투디움(전형)과 푼크툼(원형, 실제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의 구분과도 흡사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칼 융은 개별주체의 기억보다 아득한 기억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했고, 그 집단무의식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상징 곧 반복 상징을 원형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은 무엇이며 어디서 어떻게 찾아질 수 있는가.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은 정신, 그러므로 어쩌면 수묵 정신(다른 섹션 전시의 소주제이기도 한)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신은 다르게는 이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그 자체 감각과 감성, 감정과 감수성을 두루 아우르는 개념이다(헤겔은 예술을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라고 했다). 그 자체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층위에서보다는 무의식적이고 수동적인 차원에서 저절로 수행되는(그러므로 어느 정도 자동기술적인?) 경우로 이해하면 되겠다. 의미의 매개 없이 자연스러운, 편안한, 물 흐르듯 하는 경우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그 차원이며 경지는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적 미의식을 관통하는 정신과 이념에 대해서는 그 설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으로 풍류, 여기, 소요, 그리고 딜레탕트와 아마추어리즘 그러므로 어쩌면 사유하는(자유롭게 사유하고 거침없이 사유하는) 정신에서 찾고 싶다. 특히 최치원이 정식화한 풍류는 바람처럼 흐른다는 뜻이고, 바람처럼 벽 그러므로 경계가 없다는 뜻이고, 바람처럼 거침이 없다는 뜻이고, 바람처럼 정처 없이 떠돈다는 말이다. 여기서 흐르는 것은 바람 말고 또 있다. 물이다. 그리고 물이 수묵과 그 생리가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보들레르는 어쩌면 진정한 예술가는 정작 예술을 생산하는 주체보다는 예술을 즐기고 향유 하는 예술애호가 곧 딜레탕트일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을 즐기는데 격이 있고 형식이 있고 경계가 있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차원이며 경지를 현대미술의 논리로 치자면 탈장르와 탈형식, 탈경계와 어쩌면 탈이념마저 아우르는 각종 탈의 논리와 성취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탈에 대해서는 그 대상(예컨대 형식적, 장르적 특수성 같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통해 긍정하는 지양(헤겔)의 경우로 이해하면 되겠고, 그 대상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추어리즘에 대해서는 직업의식 혹은 장인정신과 비교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수묵은 물과, 그리고 어쩌면 바람과도 그 생리가 통한다고 했다. 바람도 물도 수묵도 흐른다는 성질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흐르는 것에는 거침이 없고 경계가 없다. 활성적이다. 유동적이다. 가변적이다. 가역적이다. 얼룩이 꼭 그렇다. 얼룩에 거침이 있고 경계가 있을 일이 없다. 그런 만큼 개인적으로 수묵은 얼룩이 그린 그림 그러므로 얼룩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감각적 닮은꼴을 떠올리게 하는 재현적인 선입견으로 하늘처럼도 보이고 풍경처럼도 보이지만, 사실 수묵은 얼룩이 만든 그림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얼룩은 수묵의 모나드, 단자, 그것도 항상적으로 움직이는, 그렇게 움직이면서 자유자재로 변태 되는 최소 단위원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단위 원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양태에 따라서 얼룩 그러므로 수묵은 하늘을 그리고, 풍경을 그리고, 세상 모든 풍경을 그린다. 그러므로 수묵에 대해서는 세상 모든 풍경이 발원하는 원천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무묵수묵, 수묵 없는 수묵, 수묵은 도처에 있다는 전시주제는 바로 이런 착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비록 먹이 없을 때마저도 사실은 그 본성으로서 수묵의 정신을, 이념을, 생태 그러므로 흐르는 성질을 포함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번 전시에서는 먹그림과 페인팅, 사진과 영상설치작업을 아우르고,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을 해석하고 각색한 작가와 작품들을 포함하고, 바람처럼 물처럼 흐르는 성질을 공유하고 있는 거침도 없고 경계도 없는 사유의 지점들을 포섭한다. 그 지점 지점들이 수묵을 재정의하고 한국적 미의식의 원형을 재정초하는 형식실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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