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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아, 물과 함께 흐르는

고충환


송경아, 물과 함께 흐르는 



작가 송경아는 물을 그린다. 물을 그리면서 물에 반영되는 것들을 같이 그린다. 물 위에 산란하는 빛을 그리고, 하늘과 구름을 그리고, 나무와 숲을 그린다. 그러나 여기서 물이 반영하는 것들, 이를테면 빛도, 하늘도, 구름도, 나무도, 숲도 다만 정황적 사실일 뿐, 엄밀하게 빛인지, 하늘인지, 구름인지, 나무인지, 숲인지 알 수가 없다. 물이 흐르기 때문이고, 이행하기 때문이다. 그 흐름, 그 이행에 따라서 그 위에 던져진 반영상도 시시각각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정황적으로 알만한 소재들이지만, 그 정황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그저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시시각각 이행 중인 것을 좇는 감각에 붙잡힌 것들이란 점에서, 감각적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작가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허문다. 추상과 구상의 차이와 다름에 대한 선입견을 흔들어놓으면서 재정의하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 그 재정의를 촉발하는 또 다른 장치가 있다. 바로 가장자리가 없다. 작가의 물 그림에는 경계가 없고 가장자리가 없다. 다만 풀사이즈로 잡아낸 물이 있고, 화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물이 있을 뿐. 그렇게 가장자리가 지워진, 관계의 풍경에서 잘려져 나온 물 그림이 심연처럼 가없고, 아득하고, 막막하다. 구상이 뭔가. 구상은 어떻게 지각되는가. 바로 자기와는 다른 어떤 것, 이를테면 빛과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숲과의 관계와 비교로 인해 물은 비로소 물로 지각된다. 물결에 의해서 바람을 지각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그렇게 작가의 그림 속엔 비록 빛이, 하늘이, 구름이, 나무가, 숲이 들어와 있음에도 사실은 전혀 그림의 구상성을 담보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에 물의 이중성이며 양면성(형상을 구축하면서 해체하는)을 강화하는 또 다른 장치가 있다. 빛의 간섭현상에 의한 모아레 효과가 그것이다. 천 중에는 유독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천이 있는데, 오간자 천(일명 노방 천)이 그렇다. 작가는 캔버스에 물 그림을 그리고, 오간자 천으로 캔버스 전면을 덧씌운다. 오간자 천으로 덧씌우고 다시 그 위에 덧그리기를 수 차례 반복하는데, 그렇게 형상을 드러내고 지우기를 거듭한다. 물이 수면에 불러들인 소재들의 실재를 드러내면서 지우기를 반복한다. 드러내면서 지우기, 드러내면서 가리기, 소환하면서 해체하기, 긍정하면서 부정하기를 거듭한다. 바로 물의 이중성이며 양면성을 표현하는 방법이고 과정이다. 

그렇게 그림이 큰 물결을 만들고, 중첩된 오간자 천이 작은 물결을 만든다. 그렇게 큰 물결과 작은 물결이 중첩되면서 물결무늬가 겹쳐 보이고, 마치 그림 속 수면이 일렁이는 것 같은 일루전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림이 겹쳐 보이는 것 같은, 그림이 흔들려 보이는 것 같은, 그러므로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허물면서 넘나드는 것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바로, 물을 쳐다볼 때,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게 작가는 물을 보면서, 사실은 물과 함께 흐르는, 흩어지고 모이는, 붙잡히면서 잡히지 않는, 어쩌면, 자기 자신을, 자기_타자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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