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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홍, 이름도 없는 존재들에 바치는 진혼곡 혹은 오마주

고충환


안창홍, 이름도 없는 존재들에 바치는 진혼곡 혹은 오마주 


한국에는 예술이 부조리한, 폭력적인, 억압적인 현실에 맞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믿고 실천하는 민중미술이 있다. 1980년대에 정점에 이른 민중미술은 이후 형상미술, 정치미술, 참여미술로 그 옷을 갈아입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 민중미술의 한 가운데 있었던 안창홍 작가는 이런 미술 이념과 함께 자기만의 형식을 완성하는 데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예술을 이념적인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단순한 사회적 발언을 넘어선 존재론적 깊이를 파고들면서 상대적으로 더 폭넓은 감동과 공감대를 얻을 수가 있었다. 

바로 이 부분이 과야사민과 안창홍 두 작가가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세상을 향한 분노와 존재에 대한 연민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분노가 있어야 연민도 있다는 점에서, 분노와 연민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작가는 비록 생전에 서로 본 적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동지 의식으로 서로 결합 돼 있었다고해도 좋을 것이다. 


유령패션. 사람들은 보통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옷을 입는다. 한편으로 옷은 사회적인 기호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각종 제복 그러므로 유니폼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옷을 입는 진화된 경우가 미학적인 이유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인데,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취향과 스타일에 맞춰 옷을 입는다. 
특히 자본주의 이후 어떤 옷은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안창홍은 바로 이처럼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옷이 갖는 의미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도시의 밤을 저 홀로 불 밝히고 있는 쇼윈도에 진열된 옷들이다. 생명도 없고 영혼도 없는 텅 빈 옷들에서 작가는 마치 유령과도 같은 욕망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할 포스터는 욕망과 죽음과 아름다움이 하나라고 봤는데, 욕망의 세 얼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유령패션을 매개로 작가는 그 이면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작가가 그린 옷들은 실제로 피를 흘리고 있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욕망을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유령패션을 그리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먼저 그림을 그렸는데,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시대 감정을 선도하는 일면을 엿볼 수가 있다. 


얼굴들. 작가는 벌거벗은 생명 그러므로 법으로마저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조르조 아감벤), 노숙자들, 시대와 역사의 희생양들, 불온한(?) 사상을 가진 것으로 내몰려 정신병원에서 죽은 사람들, 노동 현장에서 한갓 도구로 전락한 사람들, 그리고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름만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역사에서 지워진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 참혹하고 억울한 죽음들을 불러 모아 제의를 치러준다. 원래 49개 시리즈로 계획된 것인데,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세상을 떠돌다가 마침내 하늘로 올라가는 49재의 천도 의식을 상징한 것이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으깨어지고 부서지고 파묻혀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다만 단말마와도 같은 고통이 외침으로 아니면 침묵으로 육화된 으깨어진 물질 덩어리를 보는 것 같고, 그 자체 장 포트리에의 <인질> 연작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것도 같다. 실제로도 그들은 어쩌면 시대에, 역사에, 그리고 현실에 붙잡힌 희생양이며 인질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눈먼 자들. 여기에 눈먼 자들이 있다. 지금 여기의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 사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눈이 있음에도 사실상 눈이 없는, 그러므로 눈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눈먼 자들이 하나같이 유리구슬이라도 박아 놓은 듯 무표정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목과 얼굴에는 욕망, 눈물, 투쟁, 적자생존, 격투기, 戰士(전사)와 같은 현실원칙을 대변하는 문자들이 숨어있거나 드러나 있다. 인정도 감정도 없이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한, 전쟁과도 같은 현실에 대한 자의식을 표상할 것이다. 그리고 정보제공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은 효율적인 감시체계를 수행하는 바코드, 억압된 욕망과 좌절된 욕망을 상징하는 꺾인 한쪽 날개, 그리고 아마도 누군가가 죽은 날짜가 암호처럼 기록되거나 그려져 있다. 

인상적인 것이 그들의 한쪽 눈에 열쇠 구멍이 있다. 제도가 이념을 주입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념을 주입하고 전수하는 제도의 기획을 표상한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눈먼 자들> 연작을 통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눈도 없고 정체성(그러므로 자기)도 없는 사람들, 그 자체 생존전략이기도 한 무표정한 사람들(표정을, 감정을 들키는 순간은 곧 죽음이다)의 초상을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유령패션>, <얼굴들>, <눈먼 자들> 연작을 통해 부조리하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을 고발한다. 한편으로 <예술가의 똥>, <화가의 손>, <화가의 심장>과 같은 또 다른 작업을 통해 부조리하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에 맞서는 예술가의 자의식 면에서도 다른 창작 주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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