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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나, 연민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고충환


이한나, 연민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하에 조직된 서북청년단이 투입돼 봉기를 강제 진압하면서 제주도 전역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조짐은 이미 1947년 3월 1일부터 있었고, 이후 항쟁은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려 7년 7개월간 이어졌다. 장구한 세월만큼이나 그 참상은 미루어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이른바 제주 4.3 사건이다. 사건은 이후 영화 <지슬>(감자의 제주방언)로 제작되기도 했고, 그 상징 꽃이 동백이다. 선연하게 붉은 색깔도 그렇지만, 전조도 없이 꽃이 툭 하고 떨어지는 모양이 피를 연상시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진압을 피해 사람들이 피신해 있던 동굴을 제주 말로 궤라고 하고, 그 동굴이 있던 마을을 곶자왈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제주 도처에 곶자왈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남아있고, 현재 작가가 입주해 있는 레지던시가 둥지를 튼 곳 역시 산양 곶자왈이다. 역사적 상흔이 마을 이름으로 아로새겨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착안한 작가는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작업을 했다. 흙을 빚어 사람 형상의 토우를 만들었다. 그리고 토우를 전시장 바닥에도 깔고, 좌대 위에도 배치했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마을에 서성이는 사람들과 산 위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을 조형한 것이다. 주형이 아닌, 일일이 손으로 빚어 만든 사람들인 만큼 얼핏 그 크기나 생김새가 비슷해 보여도 정작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정치적 폭력에 노출된 무고한 사람들이고, 이념적 광기에 희생된 선남선녀들이다. 

르네 지라르는 모든 건강한(?) 사회는 희생양 제도에 의해 지지 된다고 했다. 민중의 폭력을 투사하고 분출하고 잠재우기 위해 적절한 때에 적절한 희생양을 제공하는 것에 제도의 승패가 달려있다. 희생양이 흘린 피가 잠재적인 폭력을 진정시키고 사회를 정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르주 아감벤은 이런 희생양을 호모 사케르, 그러므로 벌거벗은 인간이라고 불렀다. 투명 인간처럼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들이고 존재함에도 부재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법으로마저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마을에서 그리고 산 위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은 이런 역사의 희생양들이고 법으로마저도 보호받지 못하는 벌거벗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전시장 벽면에 제주도의 지형을 본뜬 영상을 투사했다. 그리고 그 지형 속에 4.3 당시 자료와 함께, 제주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관련 영상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역사적 상처는 치유할 수 있고, 실제로도 치유가 되었는가. 어쩌면 현재는 과거가 밀어 올리고 만든 것인데, 그렇다면 현재는 과거를 어떻게 소환하고 반성하고 해석하는가. 불현듯 작가가 빚어놓은 사람들이 나일 수도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4.3 사건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면서 어쩌면 다만 그 경우와 형태가 다를 뿐 역사적이고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폭력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이 역사적 현재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음을 경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흔히 레지던시의 경우 대개는 입주 기간이 짧은 탓에 평소 자기 작업을 연장해도 좋지만, 현장 리서치를 통해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프로젝트 형 작업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자기 작업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형 작업이 혹 작가 자신에게 잠재돼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캐내고 발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일전에 대구예술발전소에 입주해 있으면서 대구 중앙로 화재 사건을 테마로 작업하기도 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사건이 발생해 192명이 죽고 151명이 부상 당한 사건이다. 당시 작가는 일종의 월 드로잉 형식의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통해 희생자들이 겪었을 두려움과 공포를 반추하는 한편 그 죽음을 기리는 오마주(일종의 씻김굿)를 수행했다. 

역사적 상처와 상흔을 소환해 마주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인데, 사람 모양의 초를 태운 <54명의 신성한 어머니>도 그런 작업 중 하나이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한 시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인데, 제목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듯 위안부 할머니들의 희생에 담긴 살신성인의 뜻과 정신을 기린 것이다. 한편으로 상처와 상흔을 소환하고 마주하는 주제 의식은 역사적 현실은 물론이고 지금 여기의 사회적 현실을 향하기도 한다. 무분별한 유아 폭력 사태를 주제화한 것인데, 비누로 만든 아이 형상을 물이 반쯤 담긴 수조에 담아 씻고 싶어도 씻을 수 없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표현한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도 유아도 스스로 녹아서 무너져내리는, 그리고 그렇게 종래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약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공감을 준다. 혹 한갓 물질적 존재가 비물질적 존재 그러므로 어쩌면 영적 존재로 전이되고 승화된 차원을 표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사람을 넘어 개와 고양이 같은 유기 동물을, 나아가 상실된 유년을 일깨우는 버려진 인형을 향하기도 한다. 심지어 유기묘를 소재로 한 경우에 작가는 고양이가 볼 수 있는 그러므로 인지할 수 있는 초록색과 파란색만을 이용해 작업하는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처럼 법으로마저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잊힌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 버려진 동물들, 폐기된 인형들에 작가는 왜 주목하는가. 그 이면에는 무슨 의미심장한 의미라도 있는 것인가. 이타심이다. 연민이다. 개인적으로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럿 있지만, 그중 결정적인 경우가 연민이라고 생각한다. 연민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가 부조리한 이유 그러므로 슬픈 존재와 비극적 인간에 대한 공감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는 현대인이 비극적인 이유는 현대인이 비극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극을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비극을 존재의 일부로서 끌어안는 사람, 존재의 어둠과 포옹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공감도, 연민도, 이타심도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예술마저도 가능한 일이다(여기서 예술은 인간에 대한, 존재에 대한 이해의 기술이 된다). 공감도, 연민도, 이타심도 타자의 윤리다. 타자를 맞아들이는 주체(자기_타자)의 윤리다. 아마도 작가에게 이런 타자의 윤리는 예술을 위한, 작업을 위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 심성이, 어쩌면 태도와 입장이 밀어 올린 예술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어놓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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