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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 만남_2022 한국-프랑스 현대목판화전_인간/자연/도시.

고충환



결의 만남_2022 한국-프랑스 현대목판화전_인간/자연/도시. 
나무가 중재해준, 결/길 위에서 만남. 



김포문화재단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의 공동주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원래 지난 2018년 <울산 국제 목판화 비엔날레>에서 최초 논의된 내용이 이번에 결실을 맺게된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 현지를 오가며 작업과 전시를 병행하는 김명남 교수와 국내 작가들, 그리고 김포문화재단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베르사이유 미술대학을 비롯한 프랑스 현지 관계기관의 상호 긴밀한 협력과 유대가 있었기에 성사될 수 있었다. 더욱이 세계 전체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왕래가 어려운 고립된 시기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난관을 극복하고 열린 전시이기에 의의가 더 크다. 그만큼 전시 주체와 참여 작가들(국내 작가 17명, 프랑스 작가 14명)의 이번 전시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전시는 김포 아트빌리지 아트센터(3.3-6.4)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5월 중순-8월 말)에서 일정한 시차를 두고 동시적으로 진행되는데, 이 두 곳 외에도 베르사이유 미술대학과 기타 파리 개인화랑에서도 연계 전시가 열린다. 그 대략적인 시기를 <2022 프랑스 판화의 날> 행사에 맞췄다. 프랑스에는 국가가 공식 지정한 판화의 날이 있는데, 매년 5월에 2주간에 걸친 축제와 행사를 열며, 올해로 제10회째를 맞는다. 미술계는 물론이거니와 지역 커뮤니티가 동참해 일상 속의 예술, 생활 속의 미술을 실천하기 위한 계기로서의 판화가 갖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한편, 판화를 연구하고 즐기고 향유 하는 날이다. 

이번 전시가 문화축제처럼 열리는 그 행사를 계기로 한국목판화의 역사와 현재, 그 문화적 우수성과 현대적 성과를 현지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 현대 목판화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주요 작가들을 중심으로 그 성과를 공유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현대목판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불어 한국과 프랑스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향후 상호 교류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써 한국목판화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국제 문화예술계에 널리 알리는 한편, 예술을 통한 문화외교를 확장하는 데에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 세계적으로 붐이 일고 있는 케이팝과 케이컬처를 넘어 케이아트를 널리 알리고 퍼트리는 첨병 역할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접경지역이란 점(김포는 한강을 끼고 있는 지형적 특성상 해안선 70%가 접경지역에 해당), 그리고 이로 인해 자연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는 점과 같은, 김포의 지역적 특수성과 관련한 주제 의식을 반영한, 말하자면 평화 의제와 생태 환경을 테마로 한 목판화도 이번 전시에 일부 제안되고 있어서 그 의의를 더한다. 홍선웅, 김억, 이언정 같은 작가들이 그렇다. 제주 4.3이나 동학혁명과 같은 역사적 현실을 테마로 한 민중 목판화 운동을 매개로 1980년대 민중미술의 중심 작가로 활동하기도 한 홍선웅은 이번 전시에서 김포시 시암리 마을의 한강하구 수역에 있는 초소를 그린, 초소와 철책과 탄약고가 보이는, 남북분단 현실을 반영한 목판화를 제안하고 있다. 김포가 지향하는 평화 의제와 함께, 현실참여 미술의 주제 의식을 반영하고 실천한 경우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김억은 예성강과 조강이 합류되는 지점을 그리고, 보구곶과 같은, 분단 시대 강화만 풍경을 그렸다. 분단상황 덕에 오히려 생태 환경이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그렸다. 작가의 판화는 지도를 연상시키는 세밀 목판화가 자아내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며, 항공지도를 연상시키는 산세의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묘사가 겸재 정선의 진경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진경 목판화의 한 가능성을 예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치 레고블록을 쌓아놓은 것 같은 현대도시를 배경으로 어반스케이프 혹은 어반아트의 형식적 가능성을 예시해주는 이언정은 이번 전시에서 김포 접경지역을 소재로 한 목판화로 김포의 현재를 엿보게 한다. 


지금은 목판화가 다른 판화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옛날에는 판화라고 하면 목판화가 당연시되었다. 그만큼 동양에서 목판화의 전통은 깊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유하고 있다. 판화의 역사가 인쇄의 역사로까지 소급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한국에서 목판화의 전통은 가히 유서 깊은 것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런 뿌리 깊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한국현대목판화는 현대적인 시대정신과 감수성에 맞게 자기 변신을 꾀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현대적인 시대정신은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를 반영하고 표현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현대적인 감수성은 주로 형식적인 표현의 확장을 꾀하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주로 전통적인 칼과 판의 확장과 변용을 중심으로 자기 변신을 꾀해온 것이다. 먼저 칼의 확장을 보면, 전통적인 조각도를 비롯해 주걱 칼, 소형 드릴, 레이저커팅, 프로토타입 기법을 전용해 그 표현영역을 확장 시키고 있다. 그리고 판의 경우로는 전통적인 송판을 포함해 합판, 리놀륨, 그리고 우드락과 포맥스와 같은 동시대적인 신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 때로 공간 확장을 꾀하기도 하는데, 그 자체 설치작업의 한 경우로 봐야 할 설치판화가 그렇다. 

우리와는 다르지만, 프랑스 현지에도 이런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용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현지에서의 전시와 컨퍼런스를 통해 그 경험과 성과를 상호 비교하고 교환해 보는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 역시 이처럼 변화된 판화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전시는 대략 평면과 입체로 구현된 설치판화 그리고 아티스트북 혹은 아트북을 두루 아우르는, 평면과 함께 칼의 확장, 판의 확장, 그리고 공간 확장으로 나타난, 현대판화의 확장된 경향성이 한자리에 모인 형식실험의 장이 될 것이다. 

먼저 평면의 경우를 보면, 김상구, 손기환, 김희진, 정혜진, 송숙남, 임영재, 민경아, 이경희, 그리고 배남경 같은 작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간결하고 핵심적인 형태의 수목을 소재로 한 김상구의 목판화는 널목판 고유의 칼맛을 살린 특유의 화면구성이 서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목판화의 한 전형을 예시해주고 있다. 손기환의 목판화 역시 수묵화를 연상시키는데, 상대적으로 역동적인 필력이 특징이며, 전통적인 민화를 매개로 산수풍경을 재해석하고 변주한 경우를 예시해준다. 

김희진, 정혜진, 송숙남의 목판화는 단색화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자연감정에 의탁한다거나, 자유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등 비록 저마다 그 드러나 보이는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이를 통해 저만의 내면 풍경을 예시해준다. 존재가 머물다간 자리 혹은, 한때 존재했었음으로 나타난 존재의 흔적과도 같은, 존재의 증명과도 같은, 암시적이고 명상적인, 자기반성적인 경향성의 작업이다. 비록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한 작업이지만, 동시에 보편성을 얻고 공감을 얻는 작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주로 <둥지>의 형식적이고 의미론적인 주제 의식을 표현하고 변주해온 임영재의 작업은 한판 다색 목판화를 예시해준다. 하나의 판을 새김질하고 찍고, 같은 판에 다시 새김질하고 찍는 반복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판 자체가 소멸이 된다는 점에서 일명 소멸 목판화로도 알려진 판법이다. 화석 같은 이미지, 기억의 조각 같은 이미지가 특징이며, 두텁게 덧바른 안료 층이 판화이면서도 회화적인 질감과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차용은 현대미술의 문법과 관련이 깊다. 탈맥락과 재맥락의 과정을 통해서 원본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하고, 재사용하는 것이다. 민경아는 차용된 이미지를 매개로 동양과 서양이,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화면 속에 공존하고 어우러지는, 그리고 그렇게 의미가 재구성되고 서사가 확장되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한편으로 이경희는 다른 판종에 비해 작가층이 두텁지 않은 만큼 희소한 가치를 가진다고도 할 수가 있는 우드인그레이빙(눈목판)을 구사한다. 섬세한 묘사와 노동집약적인 과정이 요구되는 만큼 판화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언젠가부터는 그렇게 제작된 판화 조각을 콜라주 하는 방법으로 확장된 화면을 시도하고 있다. 자잘한 조각들이 하나의 화면 속에 편집되고 재구성된 풍경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로써 우연적인 필연이라는, 기억의 파편들이라는, 하나로 연결된 우주라는 자신만의 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그리고 배남경은 자신의 판법을 목판평판법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목판화에서 필수과정인 판각 곧 새김질하는 과정이 없이 석판화처럼 평판으로 찍어낸다고 해서일 것이다. 여기에 먹과 한국화 물감을 사용해 한지의 배면에 충분히 스며들게 한 것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한국화 물감을 수 차례 반복 중첩 시킨 그의 판화에서는 마치 수묵화를 보는 것과 같은 먹의 색감이며 질감이 느껴진다. 색 바랜 흑백사진을 연상시키는 시간의 결이 느껴지고, 그림의 표면 위로 부각 된 나뭇결에 그 시간의 결이며 존재의 결이 고스란히 중첩돼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희미한 기억을 소환한 것 같은, 사라져가는 시간을 되 불러온 것 같은, 아득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현대판화의 확장된 경향성을 보면, 먼저 칼이 확장된 경우로서 박영근의 목판화가 주목된다. 작가는 보통의 조각도 대신 치과용 소형 드릴을 이용한 특유의 화면을 보여준다. 조각도처럼 고정된 툴이 아닌 만큼 몸이 부르는 대로 감각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새긴, 몸과 손과 감각이 일체화된 감각적인 드로잉을, 자유 드로잉을 예시해준다. 시계 속에 시계가 포개진 이중 시계를 통해 시간에 대한 강박을, 그리고 어쩌면 시간에 대한 저마다 주관적인 관념을, 그리고 덧없는 세월을 표현했다. 

그리고 판이 확장된 경우로서 안정민의 실리콘 캐스팅 작업이 주목된다. 주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와 같은 일련의 풍경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 작가는 먼저 원하는 이미지를 목판에 새긴다. 그리고 그 형태 그대로 실리콘으로 떠내는 것인데, 실제로는 실리콘을 겹겹이 발라 일정한 두께를 갖는 반투명한 패드를 얻는 식이다. 실리콘으로 떠낸 것인 만큼 세부가 살아있고 섬세하다. 마치 반투명한 살갗(혹은 피부)의 이면에서 은근하게 내비치는 것 같은 은회색의 부드러운 색감과 함께 촉각적인 성질마저 감지되는 편이다. 그리고 그렇게 섬세하고 부드럽고 은근한 미감을 자아낸다. 이외에도 작가는 설치판화와 같은, 현대판화의 확장성에 관한 한 다양한 그리고 의미 있는 형식실험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평면을 넘어 공간으로 확장되는 경우, 그러므로 설치판화의 경우로서 강행복, 이주연, 정승원 같은 작가들이 주목된다. 특히 아티스트북 혹은 아트북은 목판화를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강행복은 아마도 왕성한 활동과 함께 가장 완성된 경우를 예시해준다. 부처님의 만행과 만덕을 꽃에 비유한 화엄을 주제로 미처 말로, 글로,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의미론적 차원을, 그러므로 어쩌면 탈의미적인 경지를 조형했다. 

그리고 평면과 입체를 병행하는 이주연은 페이퍼맨으로 명명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내세워 현실 비판과 풍자와 같은, 다양한 삶의 행태에 대해 발언하는데, 그 이면에는 연극적인 요소도 있어서 재미와 함께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정승원은 현대생활을 이루는 각종 기물에, 오브제에, 기호에 관심이 많다. 예컨대 무인 세탁기 속에 돌아가는 알록달록한, 무채색의, 칙칙한, 화사한, 무미건조한, 심심한, 검소한 빨랫감을 보면 그 주인을 알 수 있다. 페티시즘 그러므로 물화 된 인격체 혹은 사물 인격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이처럼 일상성 담론과 유관한, 그리고 그 자체 삶의 메타포 혹은 알레고리로도 볼 수가 있는 기물을, 오브제를, 기호를 주렁주렁 매달아 모빌을 만들어 설치하기도 한다. 


이제 이번 전시의 주제에 해당하는 <결의 만남>을 보자. 결이란 물결과 살결, 그리고 좀 더 시적인 경우로는 바람결과 같은, 감각적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감각적 대상이지만, 주체와의 상호작용에 의한 경험치를 포함하는 말이다. 예컨대 물결이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면, 동시에 그 물결을 보는 내 마음속에도 파문이 인다. 자연현상이 만든 물결과 관념적 물결이, 감각적 물결과 내면적 물결이 서로 공명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살결이 곱다거나 거칠다는 표현도 알고 보면 그 사람의 마음씨와 같은, 성정이 포함된 말이다. 그리고 바람결도 바람에 실려 온, 바람이 각성시킨 어떤 생각, 어떤 사념, 어떤 기분과 같은, 감각적 경험치를 포함한다. 이처럼 결은 그 속에 감각적이고, 주관적이고, 상호적이고, 내면적이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어쩌면 이 의미들이 경계를 허물고 상호작용하는, 존재의 운동성 혹은 존재의 양태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종이의 살갗을 바늘로 뜯어내 보푸라기를 만드는, 하얀 종이에 하얀 실로 바느질하는, 그리고 종이에 무색 엠보싱하는, 그 존재감이 희박한, 섬세하고 감각적인, 김명남의 작업이 이런 결에, 존재의 운동성에, 존재의 양태에, 존재의 성정에 부합한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목판화는 나무에 새김질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나무의 성정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나무에도 결이 있는데, 나이테가 그렇다. 나이테는 나무가 자신의 나이를 자기 몸에 아로새긴 것이다. 나이테를 보면 나무가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험한 세월을 살았는지 순한 세상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자기가 산 세상을 스스로 몸에 아로새긴다는 점에서 나무의 타고 난 지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의 결은 동시에 길이기도 하다. 나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며, 나무가 걸어온 길의 궤적이기도 한 것이다. 

나무에도 결이 있고, 종이에도 결이 있고, 사람의 마음씨에도 결이 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에도 결이 있다. 그 결/길 위에서 작가들이 만났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만나진 만남인 만큼 귀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귀한 만남이 사람들에게 공명하고, 공감하고, 감동을 줄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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