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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순/ 전통의 현대적 변용, 콜라주에서 디지털로

고충환



김태순/ 전통의 현대적 변용, 콜라주에서 디지털로 



17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가 조선인을 그린 소묘 한 점을 남겼다. 제작 시기가 대략 1617년경으로 추정되는 <한복을 입은 남자>다. 아마도 당시 조선이란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을 화가가 어떻게 조선인을 그리게 되었을까. 당시 중국을 왕래했던 상인들을 통해 실물이나 이미지가 실린 책자와 같은 관련 정보를 접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고, 동방 원정을 수행한, 당시 작가를 후원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다만 추정해볼 수 있을 뿐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관련 연구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경매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미국 LA 소재 폴 게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침묵 속에 수수께끼와도 같은 동양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소장품 목록에 올라있다. 

작가 김태순의 이력은 이 작품과 관련이 깊다. 이 작품과의 인연이 작가의 이력에 분기점이 된 것이다. 당시 미국 진출을 꾀했던 작가는 2011년 뉴욕의 실비아 월드/포 김 아트 갤러리(국내에도 알려진 김보현 작가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그해 9월 LA의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에서 연이은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2012년 3월에는 LA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국 작가 3인전에도 초대를 받았다. 작품이 워낙 대작이어서 국내에 들여오지 못하고 창고를 빌려 임시로 보관하고 있었던 탓에 전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전시를 폴 게티 미술관 관계자들이 본 것인데, 당시 한지를 소재로 전통 남성 한복에 해당하는 두루마기를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한 작가의 작품 <조선의 얼>을 본 관계자들이 코리안 라우젠버그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라우젠버그는 네오다다의 대가로서, 작가와 마찬가지로 작품에 일상적인 오브제를 사용한 아상블라주의 변용된 형태(작가의 경우에는 한지와 고서를 콜라주 한)가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비록 유년 시절 유교적인 분위기의 엄격한 환경에서 자란 작가가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지만, 정작 이 작품을 본 미술관 관계자들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루벤스의 작품의 원형적인 이미지를 발견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이듬해인 2013년 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를 메인으로 하는 폴 게티 미술관의 전시 <아시아를 보다: 루벤스와 아시아의 만남전>에 초대를 받았다. 당시 전시에 참여한 유일한 현대미술작가이자 작품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또 한 차례 우연이 작용하는데, 당시 순방 중이던 한국의 대통령이 전시를 관람한 이후에 작가의 작품은 현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이후로도 몇 차례 순회 전시를 하게 된다. 오랫동안 잠자던 루벤스의 작품이 뒤늦게 발굴되면서 현대인을 놀라게 했듯, 잊힌 줄 알았던 전통의 새삼스러운 발견이 한인사회는 물론 현지인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이고, 작가 역시 그 감동을 확인하는 벅찬 순간이며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작가의 작품은 전통의 현대적 변용과 재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것들을 다 태워 없애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세월이 만들고, 자연이 만들고, 여기에 문명이 가세한, 그렇게 어쩌면 인위적으로는 재현 불가능한 색깔과 질감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가급적 전통 그대로의 원형을 보존하는 편이며, 여기에 최소한의 손길과 변용 과정을 거쳐 자기만의 형식을 내놓는다. 전통 그대로의 원형? 작가의 작품은 한눈에도 두루마기를, 치마저고리를, 고서를, 반닫이와 그 위에 다소곳한 항아리와 이불을, 온돌방에 깔린 누비이불을, 마루 위로 열린 창호 문을 지나 방 뒤편에 보이는 정원을 알아볼 수 있다. 

사진도 아닌데, 마치 그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원형 그대로의 색감이며 질감이 여실하다. 여기에 물성 또한 주목해볼 부분인데, 기본적으로는 색감과 질감이 합세해 고유의 물성을 밀어 올리는 것이지만, 작가의 경우에는 여기에서 나아가 일종의 저부조 형식의 입체를 시도함으로써 실재감을 더한다. 예컨대 두루마기의 구김과 함께 그 위로 옷고름이 돌출돼 있다거나, 이불의 개켜진 부위며 고서의 두께가 손에 잡힌다거나, 마루의 이음새가 여실하다거나, 반닫이의 놋쇠로 만든 손잡이와 녹슨 장식이 오롯하다. 

이런 실재감으로 볼 때, 그렇다면 작가는 다만 영락없는 실물 그대로의 이미테이션을 만들고 제안하는 것인가. 실재감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는 않다. 그림에는 결정적인 것이 있는데, 바로 작품에 혼을 불어넣는 것이며, 기운을 상기시키는 것이며,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이다. 혼도 그렇고 어느 정도 기운도 그렇지만, 아우라는 실제로는 멀리 있는 것인데 마치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이다(발터 벤야민). 그게 뭔가. 편재하는 신이다. 신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영감과 직관이다. 

그것이 없다면 다만 장인의 소산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문제는 혼도 기운도 아우라도 하나같이 손재주와 기교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질료와 부분을 종합하는 감각적인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예술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라고 했고, 가시적인 것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을 암시하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 가시적인 것, 질료와 부분은 사실은 그것을 넘어서 있는 근원적인 어떤 것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계기로서 의미가 있다. 

그게 뭔가. 질료 너머에 있는 근원적인 어떤 것이란 뭔가. 원형이다. 존재의 궁극에 해당하는 존재론적 원형이다. 칼 융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선 아득한 기억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했고, 그 집단무의식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상징 그러므로 반복 상징을 원형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에 나타난 두루마기는, 치마저고리는, 고서는, 반닫이와 그 위에 다소곳한 항아리와 이불은, 온돌방에 깔린 누비이불은, 한옥 뒤편으로 보이는 정원은 작가에게 일종의 반복 상징이며 원형이라고 해도 좋다.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잃어버린 유년 시절로 되돌려놓는, 원형적 기억이라고 해도 좋다. 아버지를 불러오고, 어머니를 불러오고, 책장을 넘길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불러오고, 항아리를 만지던 손길을 불러오고, 온돌방에서 꾸던 꿈을 불러오고, 정원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불러온다고 해도 좋다. 결국, 그리움을 불러온다고 해도 좋다. 존재하는 이유 그러므로 어쩌면 원형을 상실한 시대에 작가가 되 불러온 전통의 향기는 그러므로 오히려 더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또 한 번의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한다. 사진의 도입과 자기 차용이 그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그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영락없는 사물성이 사진의 핍진성을 떠올리게 하는데, 반닫이 위에 다소곳한 항아리와 책장에 가지런한 고서와 같은 기물들, 마루와 열린 창호 문을 포함하는, 전통 한옥의 건축구조를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에서 더 그렇다. 나아가 부분적으로 사진을 직접 도입하기도 하는데, 열린 창호 문 뒤편으로 보이는 정원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마치 사진 같은 회화와 콜라주 된 사진으로 진즉에 사진 친화적인 성향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사진 매체의 더 적극적인 수용으로 나타난 근작에서의 경향성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고, 최소한 자연스럽다. 

특이한 것은 그 과정에서 일종의 자기 차용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차용? 기존 자신의 작품을 촬영해 디지털화하고, 이를 대형 프린트로 출력한 것이다. 기본적인 과정이 그렇고, 때에 따라서 그 위에 덧그리기도 하고 종전 작업에서처럼 한지와 고서를 부분적으로 콜라주 하기도 한다. 워낙 사진 같은 실물성이며 핍진성이 강해 콜라주 된 오브제에 바탕을 둔 전작(그러므로 어쩌면 원본)과 이를 출력한 프린트(그러므로 어쩌면 사본, 그리고 그 위에 덧그리고 콜라주를 덧댄 것으로 치자면 또 다른 원본?)간 차이를 설핏 봐선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작가는 원본과 사본 간 관계 문제를 건드린다. 어쩌면 사진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예견된 일일 수 있겠고, 그 자체 작가의 작업을 또 다른 형태와 경우로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주지하다시피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원소는 픽셀이다. 그리고 픽셀은 기본적으로 유동화가 가능해 이미지에 대한 전혀 다른 발상과 차원을 열어 놓고 있다. 결정적인 이미지를 디지털 프로세스에 불러들여 유동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결정적인 이미지, 무한 변용과 변주 가능한 이미지,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이미지, 그러므로 어쩌면 열린 이미지를 만든다. 작가의 작업이 아직은 이런 디지털 프로세스보다는 사진 자체에 방점이 찍힌 만큼 섣불리 예단할 일은 아니지만, 모를 일이다. 한지와 고서를 콜라주 하는 방법으로 전통의 향기를 발하던 작업이 그렇게 근작에서 사진과 만나고, 디지털 프로세스를 예고한다. 작가의 자기 확장이, 전통의 현대적 변용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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