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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리/ 중의적인 풍경, 그러므로 어쩌면 풍경의 그림자

고충환



박두리/ 중의적인 풍경, 그러므로 어쩌면 풍경의 그림자 


고충환 | 미술평론가


작가는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작가에게 창은 현실 속 풍경을 보는 창이면서, 동시에 관념적 풍경을 보는 창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창은 현실 속 풍경과 관념적 풍경이 하나로 포개진 중의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작가는 현실 속 풍경을 통해 어떻게 관념적 풍경을 보는가. 혹은 보여 주는가. 

여기에 창을 통해 본 풍경이 있다. 하나로 보이는데, 사실은 두 개의 풍경이라고 했다. 두 개가 하나로 연결돼 보이는 풍경이다. 각 언덕을 오르면서 위로 하늘이 보이는 풍경과 언덕에 올라 그 뒤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그린 그림이다. 색깔도 비슷하고 지형도 비슷한 것이 얼핏 하나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게 하나의 그림 속에 두 개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무슨 의미일까. 왜 그렇게 그렸을까. 
올라갈 때 마음과 내려갈 때 마음이 다른 것을 그렸다고 했다. 산을 오를 때 못 본 꽃을 내려갈 때 보았다는 고은의 시가 생각났다. 사람들은 마음이 한결같지 않다. 작가는 취미생활로 해루질을 하는데, 그 경험을 그렸다고 했다. 밤에 물질을 하면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인데, 놀이와 일의 불투명한 경계를 그렸다고 했다. 분명 놀이로 시작한 것이지만, 때로 상호간 이해관계가 매개되면서 놀이가 일로 변질되는 순간을 그렸다고 했다. 그렇게 작가는 한갓 풍경에서마저 현실을 보고, 갈등을 보고, 이해관계를 본다. 그저 풍경이라기보다는 현실을, 갈등을, 이해관계를 비유한 풍경 그러므로 유비적인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 또 다른 유비적인 풍경이 있다. 보통 풍경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집을 보러 다니면서 느꼈던 피곤하고 허탈한 마음을 그렸다고 했다. 집이 마음에 들면 돈이 부족하고, 가격대가 적당한 집은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 상단 한쪽에 집이 보인다.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림 밑쪽에는 한눈에도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드문드문 생화 속에 말라죽은 꽃들이며 엉킨 풀들이 흙바닥을 드러낸 척박한 땅 위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길게 누워있다. 아마도 작가의 자화상일 것이다.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허탈해 보이기도 하고, 축 늘어져 보이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작가는 다시, 보통의 풍경을 통해 심리적인 풍경 그러므로 내면 풍경을 보고 있었다. 현실 속 풍경을 통해 유비적인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다. 

존 버거는 18, 19세기 풍경화, 그러므로 풍경화의 태생을 이해관계와 결부시킨다. 그저 풍경화로 보이는데, 사실은 땅 주인의 영지와 권력을 표상한다고 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는, 눈에 보이지 않게 관리 감시되고 있는 경계의 풍경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풍경은 풍경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근거 없는 해석이라고 보아 넘기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렇게 풍경은 권력을 투사하고, 자본을 투사하고, 욕망을 투사한다. 작가가 보통 풍경을 통해 이해관계를 보고, 삶을 보는 유비적인 풍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가 풍경을 통해 향후 어떻게 또 다른 삶의 질을, 결을 드러낼지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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