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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영/ 스피커 바벨탑, 땅의 소리와 하늘의 소리가 교환되는

고충환



김승영/ 스피커 바벨탑, 땅의 소리와 하늘의 소리가 교환되는 


고충환 | 미술평론가

우리가 협력하여 하늘에 닿는 탑을 쌓자,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탑을 쌓았고, 분노한 하나님이 탑을 파괴해 허물었다. 그리고 다시 도모하지 못하도록 저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해 사람들이 흩어지게 했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하나님과 인간 간 관계를 상징하고, 인류 최초의 언어 그러므로 언어의 기원을 상징하고, 언어를 매개로 한 문명의 발생을 상징한다. 바벨탑 신화가 갖는 이러한 상징적 의미에 착안한 작가가 대형 스피커를 높이 쌓아 올려, 바벨탑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또 다른 형태의 바벨탑을 만들었다. 

탑 안쪽에는 중정이 있어서, 그 안에 서면 자연의 소리와 함께 알 듯 모를 듯한 말들이 분절된 채 하나로 섞여서 들려온다. 언어 이전의 언어, 말 이전의 말이라고 해야 할까. 인류 최초의 언어가, 말이 막 생성되던 극적 현장으로 안내한다고 해야 할까. 일종의 소리예술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그 알 수 없는 말이며 오리무중의 언어가 자연음, 일상음, 우연음, 채집음으로 음악을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한, 모든 것은 우연이며 그 우연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그렇게 일체의 인위를 거부한, 선 사상에 경도된 소리 예술가 존 케이지의 소리예술을 떠올리게 만든다. 말로 상처를 입히고 입는, 말들의 봇물이 터진 시대에 무분별한 소음을, 노이즈를 상징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거대한 소리 탑은 동시에 무엇보다도 조형물이기도 하다.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원형의 천창에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려 어둑한 내부를 밝히는데, 마치 신의 은총처럼 부드럽고 은근한 빛의 질감으로 감싼다고 해야 할까. 빛의 세례를 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신은 원래 형상이 없다. 그러므로 신을 형상으로 재현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요원하고 불가능한 일인가. 여기서 찾아낸 해법이 빛이다. 신은 빛이다. 신은 빛으로 현현한다. 모든 빛이 저절로 그런 것이 아니라,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처럼, 판테온의 천창에서처럼, 이슬람의 모스크에서처럼 그런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형을 매개로 빛의 몸을 덧입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증명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 자체 예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가시를 매개로 비가시적 존재를 증명하고 현현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그렇게 조형물을 하늘에서 보면, 마치 하늘에서 굽어본 하늘 우물처럼도 보일 것이다. 다시,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땅과 하늘, 인간과 신, 세속적인 욕망과 이상을 하나로 연결한다. 땅의 소리가 하늘로 올라가고, 하늘의 소리가 땅으로 내려오는, 그렇게 소리를 매개로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는, 신과 인간이 하나로 통하는, 마치 신전이나 성소와도 같은, 그런 소통 채널이며 통로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바벨탑의 원형적 의미(하나님과 통하고 싶다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역설적 의미?)에도 부합한다고 해야 할까. 다시, 그렇게 작가의 설치작업에서는 조형예술이, 소리예술이, 그리고 빛의 예술이 상호작용하면서 유기적인 한 몸을 이루는, 일종의 종합예술이 실현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안에서 볼 때 다르고, 밖에서 볼 때가 다르다. 위에서 볼 때 다르고, 아래쪽에서 올려다볼 때가 다 다르다.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그렇게 공간을 작업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는 설치작업이기에 가능한 경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맴돌면서 내려오고 올라가는, 그렇게 회전을 그리면서 조형물의 위와 옆과 아래쪽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회전 계단식 램프 구조가 작가의 작업에서와 같은 원형 구조물 형태의 설치작업을 위한 최적화된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건축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작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속이 빈, 고가 높은 램프구조 자체가 또 다른 울림통(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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