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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달 & 박채별, 안녕을 위한

고충환




박채달 & 박채별, 안녕을 위한 


고충환 | 미술평론가


생로병사.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성경에서는 헛되고 헛되니 사람이 하는 만사가 헛되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삶이 고해, 그러므로 고통의 바다라고 했다. 동양에서는 화무십일홍, 그러므로 십 일 동안 빨간 꽃은 없다고 했다. 서양에서는 바니타스, 그러므로 인생무상이라고 했다. 아르카디아인에고, 그러므로 심지어 낙원에마저 죽음은 있다고도 했다. 존재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지만, 정작 자신에게 닥치기 전까지 사람들은 잘 실감하지 못한다. 존재론적인 주제다. 거대 담론 중에서도 핵심적인 주제고, 전형적인 주제다. 적어도 외관상 거대 담론이 죽고 미시 담론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시대여서 새삼스러운 주제고, 그래서 오히려 더 의미가 있고 울림이 큰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는 존재의 안녕을 비는 작업을 했고, 존재의 안부를 묻는 작업을 했다. 할머니의 시간과 늙은 개의 시간을 주제화했고, 그 시간을 애도하고 오마주하는 작업을 했다. 철골 구조물 위에 이런저런 가림막을 설치해 바람의 집을 짓고, 그 집에 할머니의 시간과 늙은 개의 시간을 들여놓았다. 

가림막을 보면, 먼저 빨갛고 노랗고 파란 노끈을 뜨개질해 가림막을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치자면 좋았던 시절을 상징하고, 뜨개질로 치자면 할머니가 엮었을 시간을 상징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치마저고리를 면천에 누벼 또 다른 가림막을 만들었다. 할머니가 좋아했을 꽃잎을 같이 누벼 만들었다. 뒷면에 투명 비닐을 덮어 봉했는데, 바람막이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추억의 집인 사진첩을 연상시킨다. 알다시피 옛날에 사진첩에는 투명 비닐로 사진을 봉했는데, 사진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시간을 화석화한 것이었다. 여기에 사진과 함께 더러 마른 꽃잎을 같이 봉했던 것도 작가의 작업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롭다. 

소재와 성적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일반화하기는 좀 그렇지만, 작가의 작업에는 여성주의의 일면이 없지 않다. 뜨개질이 그렇고, 옷가지와 같은 천을 소재로 한 작업이 그렇다. 또 다른 가림막으로 작가는 가늘고 촘촘한 대나무 발 위에 바다를 그렸다. 아마도 할머니의 방에도 그런 발이 있었을 것이고, 할머니는 그 발을 통해서 방안에서 바깥 풍경을 관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발 위에 그린 바다 그림은 비록 작가가 그린 것이지만, 사실은 할머니의 바다, 할머니의 눈을 통해 본 바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와 보면, 집에서 바닥으로 길게 그물이 드리워져 있다. 그물은 일부러 뜨개질할 필요도 없이 그 자체 이미 시간의 망을 상징한다. 그 위에 작가는 돌을 올려놓았다. 바람에 그물이 날려가지 않도록 고정한 것이지만, 상징적으로는 늙은 개의 시간이 흩어져 사라지거나 마구 헝클어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늙은 개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돌무더기 하나하나를 그 종이 편지로 감쌌다. 프로이트는 상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들러 붙어있는 상태를 우울(멜랑콜리)로, 상실을 받아들이고 놓아준 상태를 애도라고 불렀다. 그렇게 작가의 시간은 어쩌면 우울과 애도 사이 어디쯤엔가에 흐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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