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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혁, 내가 제일 멋지자니

고충환



양재혁, 내가 제일 멋지자니 

고충환 | 미술평론가


이색체험 관광상품이 인기다. 일시적으로 수도승의 정진과 수행을 체험해보는 템플스테이, 암울한 역사적 현장을 둘러보는 다크투어리즘, 궁궐과 같은 고대의 거리를 걸으며 이국적인 정취에 빠져보는 한복 대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기에 농촌 체험하기, 어촌 체험하기, 산골 생활해보기, 섬에서 살아보기, 제주도 한 달 살아보기와 같은 각종 체험하기가 가세한다. 휴양지와 휴양림, 해수욕장과 일출 명소를 중심으로 한 종래의 전형적인 관광상품에 비해 보면, 새롭게 개발된 상품들이다. 휴식과 휴양 그리고 관광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되고 변형된 것인 만큼 그동안 달라진 사회문화적 풍속도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 있다. 사회적이고 문화사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아마도 작가의 사진 속 사람들은 어촌 체험해보기에 나선 관광객들 같다. 멀리 검푸른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하늘 아래로 섬이 보이고 등대가 보이는, 수평선 위로 배가 떠가는, 방파제 안쪽 포구에도 배들이 정박해 있는, 파도가 눈에 띄게 몰아치거나 잠잠한, 아마도 간이 구조물의 일부인 듯 녹슨 철골이 그대로 노출된, 그 위로 벗겨진 비닐 막이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근경으로 치자면 크고 작은 고무통 위에 그물과 같은 어구들이 잔뜩 쌓여 있는, 물기가 흥건한 콘크리트 바닥에는 누군가가 지금 막 포획물을 손질했을 플라스틱 용기와 도구가 그대로 있는, 어촌 마을의 전형적인 일상 그대로고, 치열한 삶의 현장 그대로다. 배경만 놓고 보면 현실 그대로를 포착한 현실주의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 사람들이 매개되면서 사진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반바지에 팝 스타일의 그림과 문양이 프린트된 반 팔 티셔츠를 걸친,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활짝 웃고 있는, 체크무늬 운동화를 신은, 차양이 있는 챙 모자를 눌러 쓴, 한 손에는 캔맥주를 다른 한 손엔 시가를 들고 있는, 한 손에 뜰채를 들고 포스를 취한, 곱게 화장한 얼굴에 선글라스를 쓰고 귀고리를 착용한, 여기에 팔찌까지 갖춘 선남선녀들이 영락없는 관광객 그대로다. 그나마 한 손에 그물을 다른 한 손에 플라스틱 물갈퀴를 든, 잠수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해녀가 어촌 체험해보기의 관광상품에 어울리는 포스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여기에 뜬금없는 배경이 사진을 더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해녀 뒤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거센 파도가 이는, 어둑한 정경을 배경으로 집채만 한 고래가 보이는 것이 그렇다. 그런데, 정작 해녀로 분한 사람은 미동도 없다. 초현실주의인가. 

여기에 반전이 있다. 적나라한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포스를 취한 사람들이 사실은 치열한 삶의 현장을 살아내는 현지 사람들이라고 했다. 초도항과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기서 작가는 사람들 저마다 숨은 자기를 되찾아주고 싶었다. 한껏 멋을 낸 자기, 세상에서 제일 잘난 자기를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초현실주의와 낯설게 하기, 거리두기와 역설에 바탕을 둔 연출사진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렇게 작가의 연출사진은 사람들 저마다 숨은 자기, 억압된 자기, 잊힌 자기, 그러므로 어쩌면 자기_타자와 대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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