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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미술관 이대로는 안된다

김영호

제주도 미술계의 숙원사업이었던 도립미술관이 2009년 6월 26일 개관된 이래 벌써 3년 세월이 흘렀다. 멀리 한라영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아 수면공간을 허리에 감싸안은 미술관 건물은 제주도의 명소로서 자랑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 3년간의 미술관 사업과 운영실태를 보면 아쉬움을 넘어 존재이유 자체를 의심케 한다. 최근 제주도는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면서 평화와 생명의 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제주의 오름과 동굴, 신화, 언어, 생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열광시키고 있으며, 제주도가 유치하는 각종 국제대회는 세계각국의 정상과 그 수행사절들을 끊임없이 왕래시키는 이른바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당당히 갖추어가고 있다. 제주 사람으로서 자랑스러운 현실이다. 그러나 ‘환태평양의 눈’을 자처하고 ‘동북아시아의 문화발전소’ 역할을 선언하며 출범한 제주도립미술관은 이러한 환경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섬문화의 위상을 세우고 선도하는 사업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며 급증하는 방문객에게 제주의 정신문화를 보여주는데 등한시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제주도립미술관의 조직과 운영체제에서 단숨에 드러난다. 미술관 본연의 사업을 주도할 학예연구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편성되어 있는 학예기능과 행정기능이 통합된 형태의 운영팀으로는 전문적 연구와 기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구나 운영팀장이 순환직 공무원으로 보직처리가 되어있는 구조의 결제라인에서 전문가들과 탄력있는 네트워크를 운용한 공동 프로젝트의 가능성이란 요원하다. 병원에서의 진료와 수술이 의사들의 소임이듯 정신문화를 주도하는 미술관 사업은 전문 학예사에게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 현재 국내의 국공립 미술관 중에서 학예연구실 부재라는 전근대적 조직과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는 곳은 제주도립미술관 이외는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학예실의 부재는 현대미술관의 본령인 전시기획과 마케팅 사업의 소극성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현상이다. 3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제주의 변화하는 정치 사회적 환경을 담아내고 아시아의 해양문화와 생태환경을 주도하는 국제적 전시회가 개관전시 이래 추진된 적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적어도 제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국내전이 국내외 주요 언론 매체에 보도된 적이 있는가. 제주도의 미술문화가 국제화되기 위해서 국내외 미술관과 네트워크를 수립하는데 얼마나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는가. 이제 제주도립미술관 운영의 주체들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때가 되었다. 세상은 열려있고 미술관의 위상은 인터넷 정보 미디어를 통해 전국 각지로 실시간 전파된다. 제주도 미술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대부분 미술관 강당을 이용한 영화상영, 학생을 위한 미술실기대회와 미술학교 운영 등이며 최근 들어서는 국제관악제까지 미술관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융합시대에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라 보기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미술관 정체성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대체 사업들은 관람객 방문지수를 미술관의 본령과 맞바꾸려는 눈가림 장치로 오해될 수 있다.  

 

 제주도는 최근 전국공모를 통해 새로운 관장을 영입했다. 이제 미술관이 문화발전소의 역할을 담당하고 환태평양의 눈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신임관장은 사업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조직 개편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은 결코 세간의 미술활동을 보조하는 학원이나 교습소가 아니며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제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공동체의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숙성시키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한라일보, 월요논단, 2012.8.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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