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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은 /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정원에서

김영호

‘가난에 구애받지 않고 도를 즐기는 삶’이란 이상향에 불과한 것일까.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일까. 변정은의 그림은 이러한 자문(自問)의 행간을 파고들며 일상의 한구석에 은밀히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안빈낙도의 정원. 작가가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공간이다. 거대자본과 물질경제가 현대인의 삶을 휘두르고 SNS 기기가 대량상품 광고로 도배된 현실 너머, 이념의 피안(彼岸)에 마련한 지극히 작은 정원이다. 그 공간은 소박하기 짝이없다. 담장 위를 흐르는 모란 향기를 이불삼아 주인이 낮잠에 빠져있고, 연꽃 무리의 백색이 유난한 저녁이면 술상을 차려 벗을 기다리는 그런 세상이다. 화중 인물들은 순환의 고리를 돌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을 찬미하고 절간에서 들려오는 법고소리와 목어(木魚)의 비밀에 대해 대화를 나눌 것이다. 화면을 달리하면 안빈낙도의 공간은 새와 꽃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서로 교감하여 반기며, 장독대와 싸리비 마저도 정겨운 이야기를 품은 은유의 세상이다. 시골학교의 연극무대 처럼 캔버스에 올라간 배우들과 소품들 모두는 정겨운 삶의 메시지를 드러낸다. 큰 세상을 향해 작은 팔을 벌린 정원, 그것이 바로 변정은이 꿈꾸고 표상(表象)하는 안빈낙도의 세계다.

 

 

 

변정은의 그림에는 단편소설처럼 간결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점은 삼인칭으로 되어있다. 화자(話者)가 작품 밖에서 작품 속의 인물과 사건을 관찰하여 서술하거나 직접 개입하는 형식이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라는 타자를 통해 객관성을 불어넣기 위한 장치라 할 수도 있다. 이 때 화자인 작가가 등장시키는 주인공인 ‘그’가 바로 개다.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청년 개는 안빈낙도의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탐색하는 주체가 된다. 호기심이 남다른 이 개는 가사의 모든 일에 참관하고 뜰에서 일어나는 미물들의 일상을 유심히 지켜본다. 주인을 따라 산책에 나서며 법고소리의 발원을 찾아 눈덮힌 절간을 혼자 방문하기도 한다. 봄이 되면 뜨락에 핀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그 위에서 자태를 뽐내는 새에 반해 망부석처럼 고개를 쳐들고 서있다. 결국 이 청년 개는 작가가 일구는 안빈낙도 세계로 관객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된다. 작가는 개의 시점을 통해 안빈낙도의 일상을 해학과 풍자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변정은의 그림은 일상적 순간을 연극적 사건으로 바꾸는 전이(轉移) 방식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무심하게 보이는 삶의 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의 근간은 고도로 압축된 화면의 구성이다. 간결한 형태와 구도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삽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공상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화 삽화이며 어른을 위한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 삽화로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이전과 비교해 삽화적 속성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기와지붕이 있는 풍경에서도 배경은 여백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하늘과 땅의 경계도 없다. 꽃과 새를 주제로 삼은 그림에서도 미물들 사이에 크기나 형태 모두가 현실풍경의 세계를 넘어서 있다. 변정은의 그림에 나타나는 이러한 특성들은 그의 그림을 문인화나 민화의 영역으로 연결시키는 요인들로 다루어진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서는 꽃과 함께 노니는 새를 소재로 삼아 화조도(花鳥圖)와 비견되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변정은의 그림을 삽화 혹은 민화에 비교하고 있지만 규범화된 문학삽화 혹은 전통민화와는 차이를 보인다. 작가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와 미학을 전공했으며 미술교사로서 평생 그림과 더불어 삶을 살아왔다. 그의 그림에서는 구성과 형태의 간결성에도 불구하고 채색과 여백 운영의 측면에서 남다른 세련미와 격조가 발견된다. 따라서 '익살스럽고도 소박한 형태와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구성, 아름다운 색채'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민화의 양식은 작가의 섬세한 조형감각과 창의적 화면연출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장르로 정착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서 제시되고 있는 ‘예술 삽화’가 그것이다. 한국적 미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사회의 단면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예술 삽화의 형태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와도 다른 회화장르로서 독립성을 주장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빈낙도의 사상과 민화적 양식 그리고 현대적 소재와 기법으로 종합해낸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이 그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변정은의 회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기법은 ‘심리적 원근법’이다. 이는 대상의 존재를 낯설게 하는 방식이자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역설의 장치로 그림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심리적 원근법으로 조망된 세계는 꽃잎이 집채만 하고 새와 개의 크기가 전도되어 화면에 자리를 잡는다. 크기가 뒤바뀐 미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색다르게 드러낸다. 일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사물의 존재감은 항시 주변의 사물이나 상황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인문학적 성찰의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가령 화면에 그려진 새가 작아보이는 이유는 주변의 꽃들이 거대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고, 새가 커 보이는 이유는 그를 바라보며 서있는 개의 크기가 작게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에 이러한 심리적 원근법의 적용은 기존의 풍경이 보여주던 화면의 질서를 파괴하고 재편함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파생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심리적 원근법은 아동화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라는 점에서 회화의 원형적 표현방식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변정은의 그림은 투시 원근법을 해체함으로서 회화예술의 원초적 본성을 지키는 범주에 서 있게 된다.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작가가 그림에 자신만의 화법과 이념을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법과 이념이 상호 일치되어야 하는 회화예술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보고 단박에 작가를 떠올릴 때 그 작가는 이미 유명인사의 대열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과 작가의 동일화가 작품의 형식을 넘어 이념의 차원으로 펼쳐지고 있음이 인정된다면 그것은 더없이 행복한 성공일 것이다. 동굴벽화에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 이래 영겁의 세월을 거치면서 인물화는 수없이 반복 생산되어 왔다. 화조나 초충(草蟲)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화조나 초충에서 장승업과 신사임당을 확인할 수 있고, 풍속도에서 김홍도나 김득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작품이 지닌 화법과 이념의 독자성을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변정은의 경우에도 자신이 15년 이상을 몰입해온 주제와 기법 그리고 이념이 하나의 독자적 경향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단순한 형태와 기법의 반복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유로운 실험과 탐구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음은 작가의 작품 저변에 흐르는 안빈낙도의 사상이 튼실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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