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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의 의미와 기대

김영호

I. 서언 

 

광주시립미술관이 1992년 8월 1일 문을 연 이래 2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역자치단체 미술관으로서 광주시립미술관의 역사는 우리나라 공립미술관의 위상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 주지하듯이 정부는 1991년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을 새롭게 마련하고, 1995년 지방자치제를 실행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1도∙시 1박물관’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정부의 건립 보조금 및 지원금에 힘입어 부산, 대전, 제주, 대구, 경남, 경기, 전북 등의 광역자치단체가 대규모 미술관을 줄지어 건립했고 현재 인천과 전주에서도 뒤늦게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방 공립미술관계의 맏형으로서 미술문화 발전의 선두적 역할을 담당한 광주시립미술관의 조직과 운영의 사례는 후발 미술관 건립사업 추진의 주체들에게 타산지석이 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급변하는 21세기의 문화적 환경 속에서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의 의미와 비전에 대해 정리한 것이다. 외부인으로서 필자가 감당하기 버거운 내용들이다. 하지만 그간 평론가로서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고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에 일조한 경험도 있는지라 글쓰기 의욕도 없지 않다. 

 

 

II. 개관 20주년의 성과

 

광주시립미술관 역사 20년의 궤적을 살펴보면 ‘국내 미술관문화의 선도’라는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성과들이 우선적으로 발견된다. 첫째, 광주시립미술관은 국내 6대 광역시 중에 최초의 지방 공립미술관으로 출발하면서 국내 미술관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의 다변적 확충에 상대적 지표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2007년, 지금의 건물을 신축해 본관이 자리를 옮겨와 둥지를 틀기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하드웨어의 세를 넓혀 왔다. 광주지역 안으로는 동구와 서구에 각각 2003년 ‘금남로분관’과 2006년 ‘상록전시관’을 이어서 설치함으로서 미술관의 기능을 다변화하기 위한 시설을 확충했다. 밖으로는 서울과의 지리적 거리를 극복하기 위해 2008년 인사동에 갤러리 'LIGHT'를 개관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2009년에는 중국의 북경으로 외연을 확대하게 되는데, 이러한 광주시립미술관의 행보는 국내의 공공미술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전 국토에 미술관과 분관체제의 기반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둘째, 기부문화 활성화를 통해 미술관 소장품을 확보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다. 주지하듯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행되면서 단체장 선거가 지역단위로 이루어지고 선거공약에 의해 미술관들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문제는 건립예산 이상으로 소요되는 작품 구입예산이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사례는 미술관들이 소장품이 확보되어 있지 않더라도 미술관 건축이 가능하다는 사례를 제공함으로서 단체장들로 하여금 지방 미술관 건립에 우선적인 공약과 예산을 쏟을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재일교포 하정웅씨의 대규모 작품기증은 국내 미술관의 경우 아직도 유일한 성공사례로 남아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제주도립미술관 등이 천경자 화백와 장리석 화백의 작품을 작가로부터 기증받아 미술관 운영이나 건립에 힘을 실어준 적은 있지만 개인 컬랙터가 자신이 평생 수집한 작품 수천점을 대대적으로 기증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유일하다. 

 

셋째, 광주시립미술관은 창작스튜디오 사업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1995년 중외공원내의 팔각정 스튜디오와 근로자복지아파트를 개조해 ‘양산동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작가들을 입주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에는 중국에 ‘북경 창작센터’를 개관함으로서 그 범주를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시켰다. 오늘날 국내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창작스튜디오 운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그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두 개의 창작스튜디오들인 창동스튜디오(2002년 개관)와 고양스튜디오(2004년 개관)는 국내외의 작가들에 대한 지원의 차원을 넘어 국제교류를 활성화 시키면서 문화적 네트워크를 강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창작스튜디오 사업이 수도권을 넘어 지역으로 확대시키는데 광주시립미술관이 선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넷째, 광주시립미술관이 광주비엔날레를 아시아 최초 최대의 국제미술제로 성장시키는데 산모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광주비엔날레가 1995년 탄생될 때 광주시립미술관은 비엔날레 지원본부를 미술관 조직에 통합개편 시키면서 비엔날레의 출발에 지반이 되었다. 이후 두 차례의 비엔날레를 치루고 난 1999년 비엔날레와 분리되었는데, 이는 미술관이 전시사업 뿐만 아니라 작품수집, 보존,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이라는 자각과, 비엔날레가 국가간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벌이는 각축장이라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독립적 조직과 예산을 확보한 광주비엔날레가 축제의 기운을 내세운 국제미술제로서 위세를 떨치는 동안 광주시립미술관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미술관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고 미술관의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한 내적 성찰의 기간이기도 했다는 생각이다.

 

다섯째, 국제화와 세계화를 위한 협력망 확대의 노력이다. 2011년 이후 광주시립미술관은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주요 미술관들과 교를를 위한 MOU를 체결하는 등 미술관의 대외적 네트워크를 확대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협약의 대상 미술관은 ‘북경 금일미술관’과 ‘하남성 예술관’ 및 ‘하남성 미술관’ 등 세 곳인데 이 미술관들과 협약을 체결함으로서 기획전시시 소장작품의 대여, 학예연구원 교류 등이 가능케 되었다. 국제화의 노력은 최근 광주시립미술관이 보여준 대규모의 기획전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 요셉보이스전>과 <인상파 이후 서양미술의 거장전>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 전자는 현대미술의 신화로 불리우는 보이스의 작품 362점을 포함해 총 400여점의 작품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동일 기간동안 개최되었던 후자는 유럽과 미국의 대표적 작가들 47명의 작품 110점으로 펼쳐진 블록버스터형 전시로서 광주시립미술관의 국제전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전시로 평가된다.

 

광주시가 국내 최초의 공립미술관과 창작스튜디오 그리고 아시아 최초의 비엔날레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예향 광주가 지닌 문화적 전통이 뒷받침 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문화적 전통이 주는 힘을 현대미술관과 국제적 미술이벤트로 연동시키는데 기여한 광주관민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민주항쟁의 과정이 남긴 상처를 최초의 지방 공공미술관과 비엔날레라는 문화적 차원의 처방으로 보듬어 그 투쟁의 역사적 광휘를 만방에 널리 비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보기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III. 숙고할 일 :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차별화 

 

지방 공립미술관의 맏형으로서 광주시립미술관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미술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라 할 때 그것은 비단 광주시립미술관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간 국내의 지역 공립미술관의 역사가 겨우 20년이며 이제 막 건립되어 걸음마를 걷고 있거나 아직도 건립 추진단계에 있는 광역자치단체도 있으니 우리나라의 지역 공립미술관 문화의 현실은 아직도 시행착오의 단계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일괄하면 미술관 건축의 획일성, 소장품의 상대적 빈곤, 공무원 중심의 직제, 열악한 예산, 기획사의 전시로 채워지는 미술관 개방일수, 책임운영제의 도입 압력에 따른 위기상황 등등 아직도 미술관 존립에 관한 근본적인 내용들이다. 그간 수많은 세미나에어 발표되어온 국내 미술관의 일반적 문제와 발전방안에 대해서 지금 여기서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광주지역의 특수한 경우와 연관된 사안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선 생각해 볼 문제는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의 기능과 역할분담에 대한 것이다.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기능은 양자 모두가 지역(혹은 국가) 미술문화의 생산과 확산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역할은 명확하게 차별화 되어야 하며, 따라서 조직과 운영 계획 역시 차별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적잖은 예산이 소요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2011년 제출된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2010 회계년도 광주비엔날레(예술비엔날레)의 총예산은 약 82억 규모로 보고되었다. 한편, 광주시립미술관의 총예산은 2011년 기준 64억이고 그 중 전시기획예산이 13억, 소장품구입예산이 5억으로 되어 있다. 2012년의 경우 총예산은 67억이고 그 중 전시기획예산이 12억, 작품구입예산이 7억으로 전반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상의 예산 규모는 외국의 유수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와 비교해 볼 때 과다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기, 대전, 제주 등 타지역 공립미술관의 열악한 재정적 상황과 비교해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예산이다. 

 

그렇다면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차별적 역할이란 무엇일까. 윤익 학예연구실장이 최근 ‘미술평단’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광주시립미술관의 주된 사업은 <전시기획사업>, <지역문화예술 연구사업>, <레지던스사업>, <국제교류사업>, <청년작가지원 프로그램>, <소장품구입사업>,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미술관의 업무들은 모두 광주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지속사업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비엔날레는 국제교류를 위한 체널이고 미술관은 지역간 교류를 위한 전진기지라 한다. 미술관이라 해서 국제교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그렇게 구분할 수도 있다. 비엔날레는 국제적 미술전람회로 탄생했고 이 전통에 따라 전세계에서 초대된 다국적 작가들을 대상으로 사업이 추진된다. 그리고 비엔날레를 통해 생성되고 소통되는 문화적 주제들 역시 현재 국제 사회가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들과 비전들이 중심이 되어 있다.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유, 민주, 자본, 개혁 따위의 문제에서부터 개인적 차원의 존재와 자아, 욕망, 권력, 섹스, 환상, 따위에 이르는 담론들이 주제로 제시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술관은 지역사회의 미술인들과 일반 대중들을 위한 문화기반시설로 기능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지역미술관은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대부분 지역인들이고 파급효과 역시 지역의 문화현상과 연관된 것이 많다는 점에서 지역문화의 전진기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술관이 설정하는 전시기획의 주제들은 비엔날레가 내세우는 주제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보편적 혹은 개인적인 차원의 주제들이란 결국 동일한 시대의 동일한 작가들과 그 생산물들인 작품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관이 지닌 기능중에 지역미술문화의 활성화는 특수한 사업을 통해 실현된다. 이는 비엔날레를 통해 성취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가령 위에 언급한 광주시립미술관의 사업 중에 ‘작품수집’ 기능과 체계적인 ‘보존관리’ 그리고 이를 대상으로 펼쳐지는 ‘미술사연구’ 기능과 그 과정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교육사업’들은 미술관만이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 미술관은 말 그대로 지역미술문화의 용광로 혹은 발전소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비엔날레가 2년에 한번 석달 남짓 일회성으로 추진하는 실험실이자 전투장이라면 미술관은 이와는 달리 지역의 토양에서 시금석을 캐고 옥석을 추출해 내는 기능을 가진 시설이라 할 수 있다. 

       

       

VI. 광주시립미술관에 거는 기대

 

이제 필자는 광주시립미술관의 특화를 위한 제안을 내놓아야 할 순서다. 하지만 필자는 원론적인 제안 외에 별로 할 말이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첫째, 국내 공립미술관들이 입을 모아 외치고 있는 ‘국제적인 미술관’이라는 환상에 대해 성찰해 보는 일이다. 평론가 윤진섭은 제주도립미술관이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국제화시대 지역미술관의 활성화 방안과 전망>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제시한 ‘국제화’와 ‘세계화’의 개념 구분이 흥미를 끈다.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란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 혹은 국제적 ‘표준화’에 초점을 두는 개념인 반면, 세계화(globalization)는 문화적 ‘정체성과 보편성’의 문제에 초점을 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곰씹어 보면 어떤 미술관이 국제적 미술관이 되려면 나의 것을 가꾸고 전파하는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가장 광주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주장이 한갓 지역이기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구호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광주성이 국제적인 표준화와 세계적인 보편성을 어떻게 지니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시킬 논리의 집중적 개발이 필요하다. 

 

둘째, 광주적인 것이 세계적 보편성과 만나는 지점에서 광주의 문화적 정체성이 확립된다고 할 때 광주시립미술관이 이를 미술관 사업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일축하자면 그 궁극적인 문제는 사람이다. 미술관의 최고 운영자인 미술관장에서 학예사에 이르는 미술인력의 전문성이 미술관의 국제화 혹은 세계화를 위한 근본적 장치라 할 수 있다. 현재 일부 공립미술관에서 기획사가 주관하는 블록버스터형 전시로 연간 개방일수의 상당 부분을 채우는 사실은 이러한 미술관 인력의 전문성과 운영조직의 미숙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광주시립미술관이 우리나라의 지역공립미술관의 맏형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인력의 선발과 배치에도 선도적 역할을 취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재의 등용은 지역미술관의 활성화 방안의 지름길이며 미술관과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지방의회의 정책적 차원에서 추진해야할 사안의 대표적인 것이다. 

 

셋째, 광주시립미술관의 미래를 위해 광주비엔날레와 차별화 사업을 선택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디자인비엔날레의 설치로 그 세력이 한층 팽창되어 있다. 게다가 아시아문화전당의 창설은 광주시립미술관과 비엔날레로 하여금 운영의 특화와 전문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광주시립미술관은 국가의 항구적인 비영리시설로서 기능을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국제적 미술이벤트로서 세계각국의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세계화의 보편적 이슈들을 토론하고 예술적 매체로 구현하는 단발성 행사의 묘미를 극대화 시키는데 특화점을 찾아야 한다면, 광주시립미술관은 기관으로서 일국의 문화정책과 지방의 역사성을 고려한 정체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업의 추를 설정하고 무엇보다 광주라는 지역문화와 지역미술인 그리고 지역 대중들을 위한 서비스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넷째, 광주시립미술관은 경영의 효율화를 모색하는 한편 미술관의 상업주의에 대응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미술관들은 점차 백화점이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거대한 경제구조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으며 미술관 전시와 세미나와 강연회 등의 행사 역시 소비의 대상이 되어 경제적 메카니즘속으로 흡수되어가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다. 문화생산이 경제체제로 전환되어가고 있다는 진단들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서구에서는 1970년대에 미술관은 폭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주장되기도 했으나 포스트모던의 복합과 융합 개념이 지배하는 오늘날 미술계의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적어도 오늘의 미술관은 문하생산의 새로운 체제를 문화적 소비와 결부시키면서 상실과 황폐의 문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우리나라 지방미술관의 맏형이다. 따라서 국내 지역미술관의 활성화를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이를 위해 광주시립미술관은 시선을 국제화 세계화의 범주로 넓혀 운영조직과 사업의 형태를 연구하고 그것을 광주지역의 문화와 역사적 조건에 맞게 적용하는 가운데 맏형다움을 보여야 할 것이다. 개관 20주년에 즈음해 광주시립미술관이 살아야 지역미술관이 산다는 신화가 공립미술관계에서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글은 지난 2012년 6월 12일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 학술세미나 발제문을 간추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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