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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2012 소견 / 원탁의 정치학

김영호

광주비엔날레 2012 소견 

원탁의 정치학

김영호 (미술평론가, 중앙대교수)


2012년 광주비엔날레도 쉽지는 않았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도서관 자료처럼 펼쳐놓은 막대한 양의 사진과 비디오 모니터의 웅얼거림, 그리고 빔 프로젝터가 분출해내는 빛에 노출된 채 당황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다양한 시각적 장치들의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미적 감흥과 근대적 의미를 찾기 기대하는 미술인에게는 혼돈을, 예술이란 자고로 의미생산의 고급한 형식임을 허용하는 지식인에게는 찬사를, 아픈 삶의 기억을 지닌 대중에겐 분노감을 제공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비엔날레는 삶의 기억과 존재의 다양한 양태를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아주 희귀한 장소가 되었다. 비엔날레는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표상들과 대면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제 대중들은 철학적 사유의 날을 세워 고통의 기쁨을 감내하고 나아가 그것을 누리기 위해 비엔날레를 방문한다. 이러한 비엔날레의 생리에 익숙해진 일부의 관객층에게는 융합의 기술을 감지하는 새로운 감각의 돌기가 새로 자라고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장르와 학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낯선 세계로의 여행은 그 자체가 비엔날레의 속성이 되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이종교배의 실험실로서 비엔날레가 왜 필요하며 계속되어야 하는 것일까? 미래의 광주비엔날레는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인가? 2012 광주비엔날레는 비엔날레의 존재와 본성에 대해 재차 의문을 증폭시키는 계기였다.   

     

2012 광주비엔날레는 6인의 여성 공동감독이 ‘라운드테이블’이라는 주제를 설정해 국제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화적 이슈를 재인식하는 기회를 마련한 장이라 요약된다. 좀 더 줄이자면 ‘여성기획자 6인에 의한 원탁 담론의 장’이다. 21세기에 들어서 비엔날레는 언제나 다중의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장소였고, 동시대적 삶의 쟁점들을 결집하고 재생산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라운드테이블이나 국제사회의 이슈를 재인식한다는 발언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따라서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발견되는 특성은 6인의 여성에 의한 공동감독 체제에 있다고 하겠다.   

  2012 광주비에날레의 주제는 라운드테이블로 정해졌으나 전시는 여섯 개의 소주제로 분할되었다. 공동감독들이 공동의 이슈 개념을 설정하는데 실패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감독들은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기획한 여섯 개의 전시회에서 공동의 이슈를 찾도록 제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 공동감독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런던토론의 사회자였던 정도련은 여섯감독들이 내놓은 소주제에서 차이(difference), 수평(parallel), 착종(Entanglement), 연계(connection), 공명(resonance), 공감(sympathy)이라는 키워드를 축출했다. 이러한 단어들은 여섯명의 공동감독들이 내놓은 언술에서 축출해 낸 것이었다. 그 내용의 얼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인도의 낸시(Nancy Adajania)는 ‘집단성의 로그인, 로그아웃’이라는 소주제를 통해 동시대의 주체들이 제국, 혁명, 저항, 상호관심, 노마디즘 따위 개념들의 착종을 통해 형성되어왔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착종이란 여러 민족과 국가의 역사와 개념이 엉클어지고 섞이며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한편, 미술사를 전공한 이라크 태생의 와싼(Wassan Al-Khudhairi)은 ‘역사의 재고찰’이라는 광의한 내용을 소주제로 채택해 역사적인 사건과 그 사건에 접근하는 작가의 방식들을 소개해 놓았다. 이러한 기획의도는 ‘친밀성, 자율성, 익명성’을 소주제로 정한 한국의 김선정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역사와 기억에 관해 의문을 던지고 문제를 유발하는 작가들을 소개함으로서 벤야민이 말하는 ‘구성의 대상으로서 역사’에 대해 담론을 만들어갈 것을 제안하는데 있다. 차이가 있다면 김선정의 경우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에 급격히 변해가는 광주의 도시건물로서 극장, 대학기숙사, 시장 따위의 잊혀져가는 미시적 공간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알리아(Allia Swastika)는 ‘시공간에 미치는 유동성의 영향력’ 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이동과 이민 혹은 이주 따위의 유목적 삶에 기반하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기획 의도는 카라반을 몰고 각지로 여행을 떠나는 특정 가족이나 국경을 넘어 새로운 터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의 삶을 나타내는 작품의 사례에서 쉽게 발견된다. 영문학과 비평학을 전공한 중국의 캐롤(Carol Yinhua Lu) 역시 유동성에 근거하면서 이를 개인적 삶의 차원으로 세밀화 시키는 소주제로 ‘개인적 경험으로의 복귀’를 내놓았다. 그녀는 거대한 글로벌화의 기치 속에서 개인이라는 주체의 위치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고 평가하는 작업들에 관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모리미술관 수석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일본의 마미(Mami Kataoka)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불가의 개념을 전시기획의 근간으로 채택하였다. 만물은 하나의 상으로 머물지 않고 계속해 변화한다는 동양 고전철학의 개념을 수용함으로서 그녀의 작업 역시 유동적이고 상호변환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작가들을 전시에 포함시켰다.                      

 

이상에서 보듯 2012 광주비엔날레가 내세운 전시주제로서 ‘라운드테이블’은 비엔날레의 특장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한계인 이유는 정도련의 언술처럼 아시아 전역의 다양한 문화적 환경과 경험의 차이 그리고 차별화된 관심사를 지닌 여섯의 개성을 하나의 개념으로 종합한다는 것이 무리한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2012 광주비엔날레는 ‘원탁의 정치학’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전시였다. 여섯 개의 작은 원탁으로 분할되어 올려진 거대한 라운드테이블에서 광주비엔날레는 육두마차처럼 동시대의 이념들을 종합적으로 실어 나르며 관객들에게 혼돈과 모순 그리고 개인과 전체가 얽혀진 복잡한 현대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묻는다. 광주비엔날레는 어느 지점으로 향하는 것일까? 오늘의 비엔날레는 예술 없는 이종세계로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비예술의 예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예술의 여정은 언제나 현실에 종속된 미완의 과정이며 그 자체가 완결된 미완의 시간을 드러내는 것일까? 우리는 비엔날레에서 전략의 명쾌함과 당위성을 본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의 실종을 아쉬워해야 한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는 문화정치의 개념 생산과 예술적 실천 사이의 괴리감을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로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계간 광주비엔날레, 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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