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자연과 예술의 만남

김영호

자연과 예술의 만남



지난달 18일 중문의 대포해안 돌밭에 다국적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인도, 북아프리카, 이란, 루마니아, 영국, 프랑스, 헝가리, 리투아니아 등지에서 온 외국작가와 이론가를 포함해 20여명의 국내외 예술인들이 이곳 해안을 찾은 이유는 제주자연과 대면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입도 목적은 관광의 차원을 넘어서 있었으므로 제주의 관광명소 방문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이 다국적 집단의 예술가들은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한국자연미술가협회가 기획한 국제 문화행사에 참여한 작가들이다. 이들은 대포해안에 하루 종일 머물면서 돌과 나뭇가지와 부유물 그리고 작은 동물의 사체 따위를 이용해 다양한 설치작품을 제작했다. 저녁 무렵 대포해안은 하나의 전시장이자 야외 미술관이 되어 있었다. 한시적이고 원상회복이 자연스레 뒤따르는 그런 미술관이었다. 현장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사진으로 채취하고 이어서 진행될 숙소에서의 토론회를 위해 영상작업에 전념했다.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유목적 형태의 미술 행사로서 세계 각국의 자연미술가들이 참여해 각국의 자연을 돌며 현장에서 얻은 자연물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새로운 개념의 미술행사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한국측의 자연미술가협회는 공주시 연미자연미술공원에 사무실을 둔 단체로서 '야투'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이번 행사는 4월 중순의 10여일 동안 남한지역 6개소를 순회한 이후 그 결과물을 가지고 금강자연미술센터에서 전시와 토론회를 열었다. 현장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과 그를 둘러싼 지리, 환경, 문화, 역사의 특성에 대한 탐색의 결과를 공유하는 이 야심찬 이동 프로젝트는 현재 11개국의 19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2018년까지 지속적으로 지구촌을 탐방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자연이 예술과 만나는 방식은 나름의 역사를 지닌다. 인간이 벽면에 자연의 형상을 그림으로 재현하기 시작한 고대 이래 자연은 정복의 대상으로 다루어졌고,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대한 분화가 이루어 진 근대에 이르러 자연은 인간을 위한 하나의 미적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을 흔드는 지진, 홍수, 가뭄, 전염병, 쓰나미와 같은 거대한 위력의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지배자도 미적 대상도 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는 시대가 되었고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절감케 되었다. 이른바 분리주의에서 일체주의로 전환되어 온 자연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의 방식도 전과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시대의 예술가들은 자연으로부터 거대하고도 새로운 창조적 영감을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자연속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떠날 때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노마드의 삶처럼 작가들은 현장에서 제작한 작품들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세계를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얻은 것은 비단 사진과 영상이라는 기록물만이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일구어 온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중문 대포해안에서의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를 위해 예술가들이 제주에 도착한 날은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바로 다음날이었다. 목포에서 여객선으로 출발한 다국적 예술가들은 그 바다 그 바닷길을 거쳐 제주도에 왔다. 대포해안에서 작업하고 토론하고 해상기후의 악화로 출항을 연기하는 체류기간 동안 예술가들에게 엄습했던 무겁고도 애절한 추모의 시간은 남다른 것이었다. 자연과의 공존방식을 외면하고 내세우는 이기적 합리와 편견의 이성에 의해 우리사회가 대재앙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절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2014.5.19 / 한라일보 월요논단)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