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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 부유(浮遊)-다원주의에 대한 고찰

김영호

부유(浮遊)-다원주의에 대한 고찰

: 이수형의 회화세계



이수형은 검도를 좋아하여 94년부터 10년 이상의 수련을 해왔으며 공인 2단의 자격 또한 취득했다. 그의 이러한 경력이 작가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반문할 수 있지만 예술이 곧 삶의 결실이고 보면 검도인으로서 살아온 20여년의 삶이 예술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리 없다. 개인전의 기별을 접하고 대담 차 오랜만에 작업실을 찾았을 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걸어놓은 도검좌대였다. 실재로 그는 수공으로 몇 자루의 검을 제작하고 날을 세우기 위해 숫돌이 반달이 될 때까지 몇 주간을 즐겨 갈기도 했다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언변 중 유난히 두 팔을 허공에 휘두르는 것도 검도인으로서 남다른 제스처인 듯하다. 검도용어로 ‘세메’니 ‘타메’니 하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한참 나누고 보니 그의 그림이 눈에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화면을 가르는 예리한 직선들과 빈틈없는 공간구성은 캔버스를 대하며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운용한 심사의 표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부분이 되었다. 


이수형_부유(浮遊)-Lost track, 캔버스에 유채, 91×73cm, 2014


이수형이 이번 개인전을 위해 채댁한 화두는 「부유 : 다원주의에 대한 고찰」이다. 다원주의란 ‘개인이나 집단이 기본으로 삼는 원칙이나 목적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사회학적 견지에서 보면 다원주의란 ‘어떠한 단일한 제도 혹은 제도적 집합체도 지배적인 것은 없다는 믿음 아래 상충적인 이익집단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며 타협하고 협상함으로서 민주적인 질서가 유지된다고 보는 사상’이다. 이수형이 채택하는 화두로서 다원주의에 대한 고찰은 따라서 다원주의 사상에 의해 유지된다고 보는 민주주의 사회가 지닌 특성과 부조리함 그리고 권력과 폭력의 구조 따위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성찰하려는 태도를 예술 활동의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선언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지상가치로 내세워온 20세기 후반의 한국 현대사를 되돌아 볼 때 이수형이 채택한 예술적 화두는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 의식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물질적 풍요의 노정에 비추어 기형적인 정신문화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세태에 대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건강성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부유(浮遊)-Peace Peace, 캔버스에 유채, 91×73cm, 2014


이수형의 작업에서 중심화두가 되는 것은 내용과 형식의 관계성이라 할 것이다. 검법이 검도의 정신과 기술의 집합이듯 예술은 예술이념과 형식의 탄탄한 대립과 균형에 의해 가치를 지니게 된다. 물론 작가에 있어 정신과 기법이 융합된 법식은 무엇보다 자신과의 무한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형의 경우 자신이 채택한 다원주의에 대한 고찰은 특정 집단이 추구하는 이익이 타 집단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이율배반적 관계성에 대해 주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문명의 이기들과 인간에 의해 훈련된 동물을 등장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가령 그가 즐겨 그리는 비행기의 기종으로서 <스텔스기>는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진화된 것이지만 오히려 권력구조의 안정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기계다. 이 경우 스텔스는 평화와 전쟁이라는 양면의 얼굴을 대변하는 모순의 기호가 된다. 또한 작가가 즐겨 그리는 포크레인 시리즈 <몬스터>의 경우도 동일한 의미소로 화면에 등장한다. 건설장비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해 환경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발명된 것인데 그것이 야기하는 노동의 힘은 때로 자연과 생태를 파괴하고 서정적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괴물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이율배반과 모순의 현장에는 언제나 인간이 주체로 자리잡고 있으며 권력, 욕망, 투쟁, 담합, 음모, 전술, 전쟁과 같은 장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장치들은 다원주의라는 미명하에 자비, 이상, 화합, 배려, 질서, 사랑, 평화를 지향하는 야누스의 얼굴로 개인과 집단을 수호한다. 그리고 야누스의 약진은 때때로 사라져 버린 트랙을 질주하는 개처럼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 <로스트 트랙>과 <레이스>는 세상에서 목적을 상실한 채 어디론가 달려가는 군중의 상황을 트랙 없이 달리는 개의 이미지를 통해 그려냄으로서 우리사회의 구조와 윤리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물론 사라진 것은 트랙이라는 규칙과 규정뿐만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모순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목적을 상실하고 허공을 부유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이수형은 고찰 시리즈의 소재들을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해 채집한다. <미스터리 서클>은 어느날 집 근방의 서현동을 지나면서 발견한 아스팔트 위의 흔적을 채취해 그린 작품이다. 그것은 도로위 안전지대에 남겨진 스포츠카의 타이어 자국이다. 통칭 스퀴즈 마크로 불리는 이 바퀴자국은 고도의 운전법인 드리프트 기술을 도로 한복판에서 저지르고 사라진 익명의 자국인 것이다. 이수형은 때로 익명이 남긴 흔적을 나이브하게 제시하는 방식과는 반대로 실명을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명예의 전당>은 그 예이다.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학살을 자행한 자들이 영웅으로 추대 받는 세태를 상징하는 5인의 위인들을 그린 집단 초상이다. 모택동, 스탈린, 히틀러, 레오폴드 II세, 도조 히테키가 그들이다. 성공한 쿠테타는 혁명이며 실패한 쿠테타는 반역이라 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좋고 나쁜 것, 위대하고 천박한 것, 영웅과 테러범이 혼동되는 세태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이수형의 작품에는 특별히 과학기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과학기술문명을 상징하는 것이 기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긍정과 부정을 포괄하면서 상상과 서사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를 산출해 낸다. <보이저 2031>은 2031년에 수명을 다하는 것으로 결정된 우주선 보이저의 미래상황을 보여주는 그림으로서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폐물이 어린왕자의 혹성인 B612와 함께 놓임으로써 과학의 세계에서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전환되는 연극적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이른바 우주공간에서 보이저호가 맞게 되는 “개와 늑대의 시간”의 상징으로서 이수형의 수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상에서 보듯 이수형이 시도하는 다원주의에 대한 성찰은 기계와 동물에 이르는 다양한 소재들을 등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관건이 되는 대목이 바로 작가가 취하고 있는 형식논리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재의 특이성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라 볼 수 없으므로 문제는 특정한 소재를 예술작품으로 환치시키는 형식과의 일치가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수형은 자신이 선택한 주제들을 의미생산의 기호로 환치시키기 위해 환유와 알레고리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 가령 <레이스>는 방향을 잃고 사력을 다해 달리는 개들을 빌어 인간세태를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알레고리를 드러내기 위해 채택한 환유적 기법이 된다. 어떤 사물 혹은 상황을 다른 사물이나 상황과 대치시켜 이미지를 끌어냄으로서 보편적 상징성을 제시하는 기법은 <익숙한 풍경>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노르망디에 투하되었던 낙하산 부대의 사진 이미지를 차용해 낙하산 인사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풍경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유(浮遊)-Monster, 캔버스에 유채, 73×91cm, 2014


이수형이 채택하는 또 하나의 형식논리는 동어반복의 어법이다. 동어반복은 우선 제목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Culture Culture>, <Build Build>, <Peace Peace> 따위가 그것이다. 반복적 언어의 사용은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연유된 것이라는 점에서 세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라캉에 따르면 “반복은 분열”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작가는 자신이 사용하는 주제의 반복이나 이미지의 중첩에 숨겨진 심리적인 억압의 상황을 보이려는 것이다. 한편, 포크레인이나 불도저와 같은 중장비 이미지를 반복된 형상으로 한 화면 위에 배치하거나, <명중>에서 보듯이 타켓 이미지를 25개 중첩해 사용하는 것도 동어반복의 형식논리를 사용한 경우다. 작가는 동어반복의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혼돈과 모순 그리고 이율배반의 구조를 띤 현대인과 현대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는 것이다. 


의도된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구도와 구성 역시 이수형이 화면에 사용하는 세밀한 형식논리라 할 수 있다.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하는 요소들로서 불안정한 구도와 구성은 때로는 비대칭적 형상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때로는 화면의 일부를 가르는 날카로운 직선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형식들 역시 프랑스의 사회학자 들뢰즈의 “돌발표시” 이론에 근거하는 것들로서 무의식적 감정의 표시이자 혼돈의 실재를 드러내는 표시로 해석된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무의식이 의식으로 표현되는 순간의 불균형적 순간을 나타내는 시각적 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형식논리는 검도의 세메와 타메로 비유될 수 있다. 세메는 중단자세에서 오는 빈틈없고 흐트러짐 없는 품세를 지시하는 용어로서 화면형식에 비추어 말하자면 구도와 구성 그리고 통일, 조화, 균형, 대칭 따위의 전통적 미감을 유도하는 형식미와 비교된다 할 것이다. 타메는 때리는 찰나의 빈틈없음을 나타내는 용어로 공격의 순간에 흐트러지는 허점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이른바 검도 최고의 정점에 달하는 단계다. 화면형식에 비유해 ‘타메가 좋다’라 할 때 이는 화가로서 본능적인 기질을 발휘해 직관과 표상의 간극에서 자신의 능력을 빈틈없이 발휘하는 능력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수형이 채택한 불안정한 구도와 구성의 방식은 낯선 두 개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합성해 봉합적으로 표현함으로서 허점을 이해하고 간극에 대처하는 조형방식의 발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형식논리들은 다양한 형식을 혼용하는 작가의 다원주의에 대한 고찰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상에서 보듯 이수형의 작품에는 소재와 형식의 분리와 혼용을 시도하는 조형적 장치들이 뒤섞여 있다. 작가가 지향하는 다원주의에 대한 성찰이 기존의 관습과 윤리 그리고 시대상에 근거하는 만큼 의도성이 손쉽게 노출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형식논리는 극복해야 할 요소들을 동시에 품고 있다. 예술이 의미생산의 형식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생산의 구조가 보편화된 주제와 형식에 의존할 경우 거기에는 해석의 편파성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란 말 그대로 타자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지나친 의도성을 드러내는 표현방식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14.4)


김영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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